박근혜(65) 전 대통령에게 뇌물을 건넨 혐의로 기소된 이재용(49) 삼성전자 부회장 측과 박영수 특별검사팀이 항소심 첫 재판에서 '부정한 청탁'을 놓고 공방을 벌였다.
서울고법 형사13부(재판장 정형식 부장판사)는 12일 뇌물공여 등 혐의로 기소된 이 부회장 등 삼성 전·현직 임원 등 5명의 1차 공판을 열었다.
특검은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등 개별현안에 대한 이 부회장 측의 묵시적·명시적 청탁을 인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경영권 승계작업이라는 포괄적 현안에 대해 박 전 대통령에게 묵시적 청탁을 했다고 본 1심 판결은 잘못됐다는 것이다. 앞서 1심은 묵시적 청탁을 인정해 뇌물 혐의를 유죄로 인정하면서도 개별현안에 대한 청탁이 있었다는 점은 인정하지 않았다.
특검은 "삼성물산 합병이나 삼성생명 금융지주회사 전환 등 개별 현안에 대해 대통령 단독면담 말씀자료와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 수첩 등에 명확히 기재돼있다"라며 "이 부분에 대해 명시적 청탁을 인정하지 않은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고 했다. 이어 "개별 현안에 대한 명시적 청탁을 인정한다면 총합인 포괄 현안, 즉 경영권 승계 문제에 대해서도 명시적 청탁이 인정되는 게 논리적 귀결"이라고 했다.
특검은 특히 1심에서 무죄로 판단한 미르·K스포츠재단에 출연금 204억 원을 건넨 혐의를 집중적으로 파고들었다. 앞서 1심은 제3자 뇌물죄가 적용된 미르·K스포츠재단 출연금에 대해 '부정한 청탁'을 인정할 수 없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삼성 외 다른 대기업도 재단에 출연한 점, 삼성이 공익재단인 줄 알고 지원한 점 등을 판단 근거로 들었다.
특검은 이에 대해 "이미 2014년 9월 15일 1차 단독면담 때 이 부회장과 박 전 대통령 사이에 경영권 승계 지원 대가로 정유라 씨 승마지원을 하겠다는 약속이 이뤄졌다"라며 "이미 유착관계 형성된 상태에서 재단을 지원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대통령이 공익적 명분을 내세웠더라도 '뇌물'로 볼 수 있다는 점도 지적했다. 특검은 "전두환, 노태우 전 대통령도 정치발전 명목으로 기업인한테서 돈을 받았다"라며 "내세운 명분만으로 실제 자금 지원 성격을 판단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했다. 특검은 또 이 부회장 등이 1심에서 허위 진술했다며 이를 양형에 반영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부회장 변호인 법무법인 태평양 이인재 변호사는 "1심 판결을 보면 형사재판 기본 원칙인 엄격 해석과 증거재판주의 원칙이 슬그머니 밀려났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라며 무죄를 주장했다. 이 변호사는 "1심은 개별 현안에 대한 명시적·묵시적 청탁은 인정 안 하면서도 포괄적 현안인 승계작업에 대한 묵시적 청탁을 인정했다"며 "개별 현안을 떠난 포괄 현안이 어떻게 가능할지 의문"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대통령의 적극적인 지원 요구에 수동적으로 응했다"라며 "일방적인 관계를 두고 어떻게 '정경유착'을 말할 수 있겠느냐"고 했다.
이 부회장 측은 1심에서 인정한 승계작업은 "팩트가 아닌 가공"이라고 주장했다. 이 변호사는 "원심은 엄격한 증명이 필요한데도 공소사실과 다른 또하나의 승계작업을 설계해 묵시적 청탁을 인정했다"라며 "박 전 대통령과 이 부회장이 임의적이고 기계적으로 구성한 청탁 대상에 대해 공통으로 인식하는 게 현실세계에서 가능한지 의문"이라고 했다.
그는 또 "1심은 공무원이 아닌 사람(최순실 씨)이 박 전 대통령과 공동정범으로 돈을 받은 단순수뢰죄로 확대 해석했다"며 "이는 제3자 뇌물죄와 단순수뢰죄를 구분하는 대법원 판례에 정면으로 반한다"고 지적했다. 최 씨가 받은 돈을 박 전 대통령이 받은 것과 마찬가지라고 본 1심 판결이 잘못됐다는 취지다.
이 부회장은 지난 8월 1심 선고 이후 처음 모습을 드러냈다. 남색 정장 차림에 짧게 머리를 자른 채였다. 그는 1심 때와 마찬가지로 A4용지 크기의 노란색 서류봉투를 들었다. 다소 피곤한 기색이었으나 담담한 표정으로 재판에 임했다. 재판부가 출석을 확인하자 이 부회장은 자리에서 일어나 고개를 끄덕였다. 생년월일과 주소 등을 묻는 인정신문에도 또렷한 목소리로 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