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습 中企 기술탈취”…현대차, 홍종학 ‘1호 정책’ 칼끝 향하나

입력 2017-12-05 13:49수정 2017-12-05 1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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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제이씨ㆍ오에씨엔지니어링 등 현대차의 기술탈취 폭로…"수사기관 조사 필요" 호소

#비제이씨는 2004년부터 현대자동차 설비에서 발생하는 독성유기화합물을 자체 개발한 특허기술인 미생물을 이용해 처리하는 업무를 해왔다. 현대자동차는 2013년 그동안 거래해오던 비제이씨 측에 5개월동안 8차례에 걸쳐 기술 자료를 요구했고, 경북대와 힘을 합쳐 비제이씨의 특허기술과 70% 유사한 기술을 만들어 특허 출원 후 거래 계약을 해지했다. 이런 기술탈취를 주도한 현대차 직원은 기술탈취 회사의 자료를 이용해 학위를 취득하기도 했다.

#오엔씨엔지니어링은 박재국 대표가 20년 동안 일본과 독일에서 배우고 온 선진기술로 2009년 설립한 회사다. 박 대표는 귀국 직후 현대차의 의뢰를 받고 수개월의 연구 끝에 부품을 개발해 무료 샘플을 줬지만 이후 연락을 받지 못했다. 이후 박 대표는 현대차가 다른 제조업체로부터 유사 제품을 납품받아 울산공장에 설치했다는 사실을 전해들었다. 박 대표는 2014년에도 비슷한 방식으로 현대차로부터 기술을 탈취당했다고 말했다.

현대자동차로부터 기술탈취를 당했다는 중소기업들의 폭로가 잇따르면서 취임 ‘1호 정책’으로 중소기업 기술탈취 근절을 내세운 홍종학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의 첫번째 타깃이 현대차가 될지 이목이 집중된다.

현대자동차로부터 기술탈취를 당한 두 중소기업 비제이씨와 오엔씨엔지니어링은 5일 서울 여의도 중소기업중앙회 기자실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정부가 중소기업 기술탈취 피해 사건을 제대로 해결하고 있지 못하다며 수사기관의 조사와 이행 제재 수단이 절실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날 피해 기업들은 특허심판원이나 공정위, 기술분쟁조정위 등 기술탈취를 구제할 정부 기관이 피해 중소기업에 과도한 피해 사실 입증 부담을 지우거나, 피해 보상에 대한 강제 권한이 없어 대기업의 ‘시간끌기’ 전략에 속수무책이라고 지적했다. 최용설 비제이씨 대표는 “특허심판원이나 법원 같은 사법기관, 공정위, 기술분쟁조정위 등이 있지만 기술탈취 피해 중소기업에게는 실질적인 해결책이 되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비제이씨의 경우 중기부 산하 중소기업 기술분쟁 조정‧중재위원회와 특허심판원 모두 현대차의 기술탈취를 인정했다. 민사소송은 내년 1월 1심 판결을 앞두고 있다. 그럼에도 현대차는 특허심판원에 재심을 청구하고 중기 위원회의 권고를 무시하면서 버티고 있다. 최 대표는 “2년간의 특허무효심판 끝에 승소했지만 이튿날 재심을 청구한 현대차 때문에 앞으로 5년간 더 싸워야 하는 상황”이라며 “대기업으로부터 기술을 뺏기고 계약을 해지당해 매출이 전무한 상태에서 대기업과 대형로펌을 상대로 한 싸움을 도저히 버텨낼 여력이 없다”고 울분을 토로했다. 또 “현대차가 특허를 모방해 새로운 특허를 등록했기 때문에 대법원 결정 전에는 일을 할 수도 없다”고 덧붙였다.

▲최용설 비제이씨 대표와 박재국 오엔씨엔지니어링 대표가 5일 서울 여의도 중기중앙회에서 기술탈취 피해 기자회견문을 낭독하고 있다.(사진=이투데이DB)

공정위의 유명무실도 큰 문제라는 게 최 대표의 지적이다. 최 대표는 “공정위는 ‘하도급법’과 같은 거래관계에만 치중돼 있어 기술탈취와 같은 형사적 사실 관계를 밝혀낼 역량과 업무 권한이 부족하다”며 “공정위에서 ‘하도급법 위반’에 대한 사실규명이 부족하다며 무혐의 결정을 내리게 되면 대기업에게 면죄부를 주는 꼴이 된다”고 말했다. 기술탈취 증거와 탈취당한 기술이 고도의 기술인지를 피해기업에게 입증하라는 것도 공정하지 못한 가혹한 조사방식이라는 지적이다.

박재국 오엔씨엔지니어링 대표는 “올해 초에 공정위에 피해 접수를 했는데 담당자로부터 소송 중일 때는 공정위 접수가 안 된다는 말을 들었다. 행정부와 사법부는 엄연히 다른데 왜 안되냐고 물으니 제대로 된 답변을 못해줬다”며 “지난 행적을 보면 공정위를 믿을 수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중기부 산하 중소기업 기술분쟁 조정‧중재위원회의 조정 결정도 가해기업이 거부하면 그만이고, 불이행시 어떠한 강제 제재도 없다는 점에서 한계가 있는 것은 마찬가지다. 위원회는 이미 현대자동차에게 비제이씨의 기술을 탈취했다며 3억 원 배상 결정을 내렸지만 현대차는 이를 이행하지 않고 있다.

두 대표는 “유일한 해결방안은 수사기관의 조사”라고 말했다. 그는 “피해자인 중소기업에게 7년의 소송기간, 수십 번의 재판을 통해 피해사실을 입증하라는 것은 너무 가혹하다”며 “기술탈취는 절도나 상해사건처럼 피해가 발생하면 가해자인 대기업을 조사해야 하는 문제”라고 지적했다. 최 대표는 “정부에서 공정위와 수사기관이 기술탈취 사건을 함께 담당하고, 초기 수사만 제대로 해준다면 많은 기술탈취 사건이 해소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중기부가 발표한 기술탈취 실태 조사에 따르면 최근 5년간 중소기업 8219개 중 7.8%에 해당하는 644개사가 기술 탈취 경험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피해 금액만 1조에 달한다.

이에 홍종학 중기부 장관은 지난달 취임식 직후부터 1호 정책으로 기술탈취 문제 해결을 내세우고 구체적인 방법론으로 ‘기술 임치제’ 등을 제시하며 의지를 보이고 있다. 이어 김상조 공정위원장도 대기업의 중소기업 기술유용(기술탈취) 문제에 대해 직권조사를 선언하며 문제 해결에 의지를 보이고 있어 귀추가 주목된다.

중소기업들은 반신반의하고 있다. 박 대표는 “중소기업들은 기술임치제도가 매우 생소하다. 제도 취지는 좋지만 이해가 되지 않는 측면이 많다”며 “제도 설치 이전에 대기업이 중소기업의 기술을 탈취하는 관행 자체를 바꿔야 한다. 중소기업 기술과 불공정 행위에 대한 사회적 인식도 크게 개선돼야 한다”고 밝혔다.

최 대표는 “우리와 같은 기술탈취 피해 기업이 엄청나게 많아서 정부에서 조금 더 관심을 가져달라고 청와대 청원을 진행 중”이라면서 “이번 새 정부가 우리 같은 기업을 구제해준다고 해서 한 줄기 희망이 보이는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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