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만 원권 발행 8년반 만에 총 잔액대비 80% 돌파..장수기준으로도 1만 원권 앞질러
화폐도 여성시대인가보다. 조선 중기 화가이자 문인이며 율곡 이이의 어머니인 신사임당이 그려진 5만 원권이 날로 확대되고 있어서다. 발행 8년반 만에 1인당 33장이 넘는 꼴로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아울러 발행 장수로도 세종대왕이 그려진 1만 원권을 넘어섰다.
최근 박근혜정부 시절 국가정보원이 특수활동비를 박 전 대통령에게 상납하는 과정에서 5만 원권 뭉칫돈이 사용됐다는 점이 알려졌다. 고액권 발행 때부터 논란이 됐던 뇌물 등 지하경제에 대한 우려가 여전하지만 환수율이 확대되는 등 안착조짐도 보이는 중이다.
주요 선진국들의 경우 각 국가 통화대비 고액권 비중이 90%를 넘어가는 게 통상이라 5만 원권 발행도 꾸준히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편리성에 확산 10만 원권 수표 사용량 10분의 1토막 = 19일 한국은행에 따르면 11월말 현재 5만 원권 발행 잔액은 85조5996억2100만 원어치를 기록했다. 이는 총 화폐발행 잔액 106조8560억4500만 원 대비 80.11%에 해당하는 금액이다. 기념주화를 제외한 화폐발행 잔액(106조7266억3300만 원)과 비교해서는 80.20%에 달하는 규모다. 2009년 6월23일 첫 발행을 개시한 이래 8년5개월 만에 처음으로 80%대를 돌파한 것이다.
화폐발행잔액이 110조7000억 원에 육박하며 사상최고치를 경신했던 9월말에는 87조1754억400만 원어치(17억4400만장)까지 발행된 바 있다.
장수기준으로는 17억1200만장을 기록했다. 이는 1만 원권(15억7600만장) 발행보다 1억3600만장이 많은 것이다. 장수기준으로 5만 원권과 1만 원권간 역전이 발생하기 시작한 때는 5월(5만 원권 16억장, 1만 원권 15억9400만장)부터다. 9월 한때 재역전을 허용하기도 했지만 점차 격차를 벌리는 분위기다.
통계청에 따르면 2016년 현재 총인구는 5126만9554명. 이를 감안하면 1인당 33장(33.4장), 165만 원(166만9599원)어치의 5만 원권을 갖고 있는 셈이다.
한은은 고액권인 5만 원권 발행 추세가 당분간 이어질 것으로 봤다. 사용편의성이 높아 상거래 등에서 수표를 빠르게 대체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 개인들의 비상금으로 애용된 10만 원권 자기앞수표 일평균 사용량은 올 11월 현재 36만3486건(363억4900만 원)에 그치고 있다. 이는 5만 원권 발행직전인 2009년 5월 일평균 사용량 336만8071건(3368억1200만 원) 대비 10분의 1(10.79%)로 줄어든 것이다. 다만 한은은 신용카드 등이 확산하며 지급수단이 다양화하고 있는 점도 수표발행이 줄어든 원인으로 꼽았다.
또, 2016년말 현재 미 달러화대비 100달러 비중은 78.9%며, 일본 엔화대비 1만엔 비중은 92.4%에 달하고 있다. 한은 관계자는 “선진국의 경우 고액권 화폐 비중이 90%를 넘어가는 경우도 있다. 우리도 그 수준까지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고 예상했다.
◇환수율 3년8개월만 최고, 증가요인 3가지 꼽아 = 11월말 현재 5만 원권의 누적환수율은 46.07회를 기록해 2014년 3월 46.12% 이후 3년8개월 만에 최고치를 경신했다.
환수율이란 시중에 풀린 발행액 대비 한은에 돌아온 환수액 비율을 의미한다. 환수율이 높다는 것은 그만큼 돈의 회전율이 높다는 것을 의미한다. 반면 환수율이 낮다는 것은 돈이 지하경제로 흘러들어가는 등 요인에 따라 회전율이 떨어졌음을 뜻한다.
연도별 환수율도 3년째 증가세다. 실제 한은이 2017년도 국정감사를 위해 박광온·박준영 의원실에 제출한 요구자료에 따르면 올 1월부터 8월까지 5만 원권 환수율은 61.4%를 기록했다. 이는 5만 원권 발행 이후 환수율이 가장 높았던 2012년(61.7%) 수준에 육박하는 것이다. 5만 원권 환수율은 2014년 25.8%를 저점으로 2015년 40.1%, 2016년 49.9% 등 3년째 증가추세를 기록 중이다.
한은은 이같은 증가 요인을 세 가지로 꼽고 있다. 우선 2014년 하반기 이후 5만 원권을 충분히 공급해 민간 수요가 어느 정도 충족된데다 공급 부족을 우려한 가수요도 줄었기 때문이다. 2015년부터 1만 원권 제조화폐 배정시 5만 원권 입금실적을 반영하는 조치를 취한 것도 영향을 미쳤다.
다만 5만 원권 환수율은 1만 원권 환수율(2016년 기준 107.3%) 대비 절반에 그치는 등 아직 낮은 수준에 머물고 있다. 이와 관련해 한은 관계자는 “5만 원권 발행이 늘고 편의성이 제고되면서 환수율도 꾸준히 높아지고 있다”면서 “장기적으로는 1만원권 환수율까지 오를 것”이라고 기대했다.
반면 5만 원권의 낮은 환수율과 지하경제 강화 간 상관관계에 대해서는 입장을 유보했다. 또 다른 한은 관계자는 “화폐의 익명성 등으로 5만 원권 유통경로 파악에 한계가 있다. 관련한 국내외 연구자료도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5만 원권의 지하경제 유입 가능성에 대해 계속 유의해 나갈 계획이다. 5만 원권 환수율 추이를 지속적으로 모니터링하고 필요시 적절한 조치를 취해 나가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