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그룹 경영 비리로 재판에 넘겨진 신격호(95) 총괄회장이 1심에서 징역 4년을 선고받았으나 건강상 이유로 법정구속은 면했다. 신동빈(62) 회장은 집행유예를 선고받았다.
서울중앙지법 형사24부(재판장 김상동 부장판사)는 22일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상 횡령 등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신 총괄회장에게 징역 4년에 벌금 35억 원, 신 회장에게 징역 1년 8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다만 신 총괄회장의 경우 고령에 건강상 이유 등으로 법정구속을 하지 않았다.
함께 기소된 신영자(75) 롯데장학재단 이사장에게는 징역 2년을, 신 총괄회장 셋째 부인 서미경(58) 씨에게는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했다. 신동주(63) 전 일본 롯데홀딩스 부회장은 무죄를 선고받았다.
◇롯데시네마 매점 임대·서 씨 모녀 공짜급여 혐의 '유죄'
재판부는 신 총괄회장과 신 회장이 롯데시네마 매점을 신 이사장과 서 씨에게 임대한 혐의를 유죄로 판단했다. 재판부는 "신 총괄회장은 서 씨와 신 이사장 등을 경제적으로 지원할 목적에서 영화관 매점 임대를 지원했다"며 "당시 업무를 처리한 임직원들도 경영상 판단이 아닌 신 총괄회장 등의 사적 이익을 위한 결정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이어 "신 총괄회장이 영화관 매점 임대를 직접 지시했고 신 회장은 이를 보고받아 그대로 실행했다"고 지적했다. 다만 구체적인 손해액을 특정하기 어려워 검찰이 주장한 특경법상 배임이 아닌 업무상 배임죄를 적용했다.
신 총괄회장이 서 씨 모녀에게 부당하게 임금을 준 혐의에 대해서도 유죄로 봤다. 재판부는 "서 씨 모녀가 받은 돈은 계열사 임원 임금 수준을 넘었다"며 "일하지 않고도 급여를 받아가는 것은 정당하지 않다"고 했다. 신 회장의 책임도 일부 인정했다. 재판부는 "2011년 롯데건설 세무조사 이후에는 신 회장이 계열사 인건비를 직접 보고받고 상당 규모의 회사 자금이 지속적으로 집행되는 걸 확인했다"고 설명했다.
다만 신 전 부회장에게 '공짜 급여'를 준 혐의는 무죄로 결론내렸다. 재판부는 "신 총괄회장 아들인 신 전 부회장은 후계자의 지휘에서 각 그룹 경영의 전반에 실제로 관여한 경영진이었다"며 "계열사 이사로 등기돼 경영상 책임을 직접 부담했다"고 했다.
◇ 증여세 포탈과 롯데피에스넷 배임 혐의는 '무죄'
신 총괄회장이 서 씨와 신 이사장에게 차명주식을 증여하면서 증여세를 포탈했다는 혐의에 대해서는 무죄로 판단했다. 신 이사장의 경우 이미 공소시효(10년)가 끝나 처벌이 어렵다고 봤다. 서 씨에 대해서는 국내 거주자가 아니라 증여세 납부 의무가 없다고 했다. 재판부는 "서 씨는 2000~2006년까지 연평균 62.4일만 국내에 머무르고 나머지 대부분의 기간을 일본에서 체류했다"고 설명했다.
신 회장 등이 롯데ATM 도입 과정에서 롯데기공을 끼워넣고 롯데피에스넷을 무리하게 인수, 유상증자해 회사에 손해를 끼친 혐의도 무죄로 봤다. 재판부는 "주주와 경영진 간 갈등을 정리하기 위해 롯데피에스넷 지분을 인수한 것"이라며 "유상증자 결정도 합리적인 경영판단의 재량범위를 벗어났다고 단정하기 어렵다"고 했다.
재판부는 "이번 사건은 대규모 기업 집단이 계열사 이익을 총수 일가에게 막대한 이익을 주도록 한 횡령·배임 사건"이라고 규정했다. 이어 "총수 일가가 기업을 사유물로 여겨 독단적인 경영방식으로 사적 이익을 추구했고 계열사에 피해를 입혔다"며 "그룹과 계열사를 위해 일한 임직원에게 자괴감과 박탈감을 주고 기업의 신용을 훼손했다"고 꾸짖었다.
재판부는 다만 신 총괄회장의 경우 그룹 발전에 기여한 점 등을 양형에 고려했다. 신 회장에 대해서는 "현재 롯데가 처한 어려운 상황을 고려할 때 기업 활동을 금지하는 것보다 행태를 바로잡아 국민 눈높이에 맞는 건전한 경제활동을 하도록 기회를 부여하는 게 적절하다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신 회장은 신 이사장과 서 씨 모녀에게 일감을 몰아주거나 부실화한 롯데피에스넷 유상증자에 계열사를 동원하는 방식 등으로 회사에 1249억 원대 손해를 끼친 혐의로 기소됐다. 신 총괄회장과 함께 신 전 부회장 등에게 500억 원 상당의 급여를 부당하게 급여를 준 혐의도 있다.
신 총괄회장은 858억 원 상당 탈세와 508억 원 횡령, 872억 원의 배임 혐의 등을 받고 있다. 그는 롯데피에스넷 비상장 주식을 30% 비싸게 호텔롯데 등에 넘겨 총 94억여 원의 이익을 얻은 것으로 조사됐다.
앞서 검찰은 신 총괄회장과 신 회장에게 각각 징역 10년, 신 전 부회장에게 징역 5년을 구형했다. 신 이사장과 서 씨에게도 각각 징역 7년을 선고해달라고 요청했다. 검찰은 결심 공판에서 "재계 5위 기업인 롯데그룹 총수 일가가 장시간에 걸쳐 상상 가능한 모든 방법을 동원해 기업을 사유화한 전모가 드러났다"며 엄한 처벌을 주장했다.
재판부는 이날 함께 기소된 채정병(66) 전 롯데카드 대표에게 징역 10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소진세(67) 사회공헌위원회 위원장, 황각규(62) 경영혁신실장, 강현구(57) 롯데홈쇼핑 사장은 모두 무죄를 선고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