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중앙은행 장(長) 발언으로 정리하는 주요국 통화정책
올 한해도 주요국의 통화정책은 시장을 움직이는 최대의 재료였다. 각국 중앙은행의 통화정책 결정 회의가 열릴 때면 전 세계 투자자들은 중앙은행 수장들의 입에 주목했고, 그들의 말은 신문의 헤드라인을 장식했다. 미국 경제전문방송 CNBC는 2017년 중앙은행장들의 의미 있는 발언을 되짚어보고, 전문가들의 의견을 수렴해 내년 주요국의 통화정책을 가늠해 봤다.
◇미국=재닛 옐런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은 지난 9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를 마친 뒤 기자회견에서 “낮은 인플레이션은 수수께끼”라고 말했다. 동시에 2%를 밑도는 인플레이션이 미스터리한 현상이며 그 원인이 분명히 무엇인지 이해하지 못했다고 시인했다. 지난 11월 뉴욕대학교에서는 “매년 인플레이션은 우리가 원했던 것보다 낮았지만 그다지 놀랍지는 않았다”며 “그런데 올해는 분명히 놀랍다”고 밝혔다. 즉 미국은 경제성장률이나 고용 지표 등에서 호조를 보이고 있는데 인플레이션만은 예외인 상황이다. 시장은 연준이 긴축 횟수를 늘릴 것을 우려했으나 연준은 예상대로 올해 12월까지 총 3번의 금리 인상을 단행했다.
내년 2월 제롬 파월 차기 연준 의장이 정식 취임한다. 파월 차기 의장은 비둘기파로 현 옐런 의장의 정책 기조를 이어갈 것으로 보이지만 12명으로 구성되는 FOMC는 매파 인사들이 우세해 통화정책을 예단하긴 어렵다. 이런 상황에서 전문가들은 내년에 연준이 최소 3회 이상 금리를 인상할 것으로 전망했다. 27일(현지시간) CNBC에 따르면 노무라의 앤디 케이츠 이코노미스트는 “기업의 수익률을 근거로 했을 때 기업들이 더 많은 투자를 할 것으로 보이며 이는 연준의 금리 인상 근거를 마련해줄 것”이라고 분석했다. JP모건자산운용의 닉 가츠사이드 애널리스트는 “미국 경제의 펀더멘털은 매우 견고해 보인다”고 평가했다. 그는 “구매관리자지수(PMI), 내구재 주문 등이 계속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고, 노동시장 환경도 강한 자신감을 보인다”고 밝혔다.
◇유로존=올해 상반기 유로존(유로화 사용 19개국)의 정치적 리스크가 완화하면서 유럽중앙은행(ECB)이 자산매입 규모를 축소할지 여부에 투자자들은 집중했다. 지난 6월 마리오 드라기 ECB 총재는 포르투갈 신트라에서 열린 ECB 회의에서 유로존 경기 회복에 대한 낙관적인 견해를 밝혔고, 시장은 이를 사실상 ECB가 테이퍼링에 나설 수 있다는 신호로 해석했다. 당시 드라기 총재는 “유로존의 경기 회복 신호가 강해졌다”며 “디플레이션 압력을 리플레이션 신호로 바뀌었다”고 설명했다. 리플레이션은 심하지 않은 인플레이션 상태를 뜻한다.
ECB는 내년 1월부터 9월까지 매달 600억 유로(약 76조5774억 원) 규모의 자산매입 규모를 매달 300억 유로 규모로 줄인다. 시장은 양적완화를 끝내기 전 ECB가 내년에 금리를 인상할지에 관심을 두고 있다. 현재 유로존의 경제 지표는 미국을 능가하고 있다. 올해 3분기 미국의 GDP 성장률은 2.3%였으나 유로존 19개국의 평균은 2.5%를 기록했다. 가츠사이드 애널리스트는 “이처럼 매우 강력한 경제 지표를 고려하면 ECB는 금리 인상을 시장 예상보다 더 빨리 시작할 수 있다”고 관측했다. 다만 케이츠 이코노미스트는 정치적 불안이 걸림돌로 작용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시장은 내년 상반기에 시행되는 이탈리아 총선에서 극우정당이 약진하는 현상을 우려한다”고 말했다.
◇영국=브렉시트에도 불구하고 2018년 영국은 두 차례의 금리 인상이 예상된다. 마크 카니 영란은행(BoE) 총재는 본래 비둘기파였다. 그는 6월 BoE 통화정책위원회 8명 중 3명의 위원이 금리 인상에 찬성했음에도 “여전히 약한 임금 상승세와 브렉시트 협상이 경제에 끼칠 영향 등을 고려하면 금리 인상은 시기상조”라고 밝혔다. 그러나 같은 달 ECB가 양적 완화 철회를 시사하는 ‘신트라 협약’을 발표하면서 카니 총재는 매파로 전환했다. 드라기 ECB 총재의 양적 완화 발언 이후 그는 “영국의 소비지출이 약하더라도 임금상승률과 기업투자 같은 문제의 균형이 잡히면 통화완화 정책 일부를 제거할 필요가 있다”는 정반대의 기조를 밝혔다. 지난달에는 10년 만에 기준금리를 0.25%에서 0.5%로 0.25%포인트 인상했다.
전문가들은 내년에 BoE가 금리를 추가로 두 차례 인상할 것으로 보고 있다. 브렉시트가 금리 인상에 미칠 영향에 대해서는 상반된 의견이 제시됐다. 케이츠 이코노미스트는 “브렉시트 협상이 2018년 내내 진행될 것으로 예상되면서 단기적인 불확실성을 유발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반면 가츠사이드 애널리스트는 “브렉시트 상황을 지켜볼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일본=일본의 양적완화 기조는 내년에도 이어질 전망이다. 다른 나라 중앙은행들이 양적 완화에서 벗어나는 동안 일본은 관망세로 2017년을 보냈다. 구로다 하루히코 일본은행(BoJ) 총재는 11월 초 저금리가 은행 산업에 타격을 줘 통화부양책이 제 효과를 내지 못하는 상황인 ‘금리효과의 반전’을 언급했다. 이에 투자자들이 일본의 금리 인상을 점치기도 했다. 그러나 구로다 총재는 내년에도 정책 방향을 쉽게 바꾸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구로다 총재는 12월 20~21일 소집된 금융정책결정회의에서 물가상승률이 안정적으로 2%를 넘을 때까지 현재의 완화 정책을 지속할 것이라고 언급했다. 10월에 발표된 보고서에 따르면 일본의 핵심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2017~2018회계연도 기준 0.8%로 전망치인 1.1%보다 낮다.
전문가들도 BoJ의 정책 유지를 예상했다. 가츠사이드 애널리스트는 “현재의 인플레이션 환경이 유지되는 한 엔화 절상을 피하기 위해 BoJ가 경기 부양책을 철회하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케이츠 이코노미스트도 “BoJ는 2018년에 무엇을 할지 예측하기 가장 쉬운 중앙은행”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