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형두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이전 정부의 12·28 위안부 합의는 1965년 한일협정의 축소판이라 할 수 있다. “피해 당사자들의 배상청구권을 국가가 무슨 권한으로 포기할 수 있는가”라는 지적은 위안부 합의에도 그대로 적용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와 같은 국제법적 문제는 차치(且置)하고 소녀상 이전·철거 합의는 또 다른 문제다.
소녀상의 정확한 명칭인 ‘평화의 소녀상’은 김운성·김서경 부부 조형예술가의 작품이다. 소유권은 정대협(挺對協·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에 있지만, 저작권은 이들 부부에게 있다. 저작권자는 ‘저작물의 내용·형식 및 제호의 동일성을 유지할 권리’, 즉 동일성유지권이라는 저작인격권을 갖는다.
소녀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시선(視線)이다. 시선은 대상을 전제로 하므로 소녀상의 가장 중요한 예술적 가치는 일본대사관 건너편인 바로 현재의 장소에 있는 셈이다. 장소를 떠나 존재할 수 없는 작품을 장소 특정적 예술(site specific art)이라 한다. 소녀상은 일본대사관 앞을 떠나 미술관 등 다른 장소로 옮겨지는 순간 생명을 잃게 된다. 따라서 소녀상 작가는 소녀상이 현 위치에서 이전당하지 않을 권리를 인격권으로서 갖는다고 할 수 있다.
천경자 화백의 붓을 꺾게 만든 ‘미인도’ 위작 논란은 천 화백 사후에도 지속되고 있는데, 그 핵심은 ‘내 작품이 아닌 것에 내 이름을 붙이지 말게 할 권리’ 침해 문제로서 작가의 인격권과 관련된다. 이렇듯 예술가에게 인격권은 재산권과 비교할 수 없는 매우 중요한 것이다. 배상청구권 같은 재산권과 달리 인격권을 제3자인 한·일 양국 정부가 함부로 결정할 수는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박근혜 정부는 정부가 처분할 수 없는 것을 처분할 수 있음을 전제로 합의한 것이니, 이면 합의는 법적으로 말하면 불능(不能) 계약인 셈이다. 예컨대 하늘의 별을 따 주겠다고 한 것이나 노예가 되겠다고 한 것은 물리적 또는 법적으로 불가능한 약속으로, 이런 합의는 애초에 무효인 계약이다. 따라서 이행하지 않는다 해서 합의 위반이라고 할 수 없다. 이전 요청에 작가가 거부하면 정부는 이를 강제할 수 없고, 일본 정부 또한 우리 정부에 불이행 책임을 물을 수 없는 것은 당연한 이치다.
소녀상 문제로 양국 간 첨예한 갈등이 있을 때 일본 정부는 ‘평화의 소녀상’이 아닌 ‘위안부상’으로 부르겠다고 발표한 적이 있다. 그러나 예술작품의 이름을 유지하는 것은 저작인격권의 한 내용으로, 일본 저작권법에도 동일한 것이 있다. 거북하다 하여 작품 이름을 함부로 바꿔 부르는 것은 법 위반이며 일국의 정부가 공식적으로 할 일은 아니다.
심지어 일본에서 소녀상을 음란물로 둔갑시킨 사례가 있었다. 야만의 극치다. 미키마우스가 담배를 피우는 장면이나 백설공주와 일곱 난쟁이가 한 침대에서 혼음(混淫)하는 장면 같은 것은 디즈니사가 철저하게 법적으로 막아내고 있다. 동심(童心)에 상처를 줄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소녀상에 대해 공감은 못할망정 외설스러운 것으로 만드는 것에 대해서는 현지 소송을 통해서라도 막아야 하며, 일본 내 주의를 환기할 필요가 있다.
국민적 공분을 낳은 위안부 협상의 이면 합의는 잘못된 것이다. 그러나 소녀상 작가의 동의 없는 이전 합의는 그 자체가 무효이므로 파기한다는 것이 오히려 이상할 수 있다. 일본의 진정한 사과만이 소녀상을 움직일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