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문점 선언, 트럼프 덕” VS “트럼프가 주연은 아냐”
남북 정상이 ‘판문점 선언’을 발표한 가운데 세계의 이목은 이제 5월 중으로 열릴 북미정상회담에 쏠려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진정한 협상 실력이 드러날 것으로 보인다고 28일(현지시간) 뉴욕타임스(NYT)가 보도했다.
남북정상회담 직후 발표된 판문점 선언에는 ‘완전한 비핵화’라는 문구가 명문화됐다. 트럼프 대통령은 문재인 대통령과 전화 통화에서 이를 두고 “판문점 선언에서 완전한 비핵화를 통한 핵 없는 한반도 실현 목표를 확인한 것은 전 세계에 반가운 소식”이라고 평가했다. 이날 트럼프 대통령은 북미 정상회담의 개최 일시를 3~4주 내라고 못 박고, 전날 개최 장소는 2~3곳으로 압축됐다고 밝혔다.
그런데 종전 선언에 관한 합의와 비핵화 문구가 남북정상회담의 성과로 나타나면서 트럼프의 어깨가 무거워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빅터 차 조지타운대 한국 석좌교수는 “남북정상회담은 북미정상회담을 향한 기대를 키우는 동시에 큰 압력을 줬다”며 “모든 초점은 이제 트럼프의 협상 기량에 집중돼 있다”고 말했다. 또 “이제는 트럼프 대통령이 모든 것을 홀로 만들어야 하는 순간”이라며 공이 북미정상회담으로 넘어갔음을 시사했다.
커트 캠벨 전 미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 차관보는 “트럼프는 자신이 닉슨 전 대통령이 되길 꿈꾸는 것 같다”고 진단했다. 리처드 닉슨 전 대통령은 1972년 중국 베이징으로 날아가 미국과 적대관계였던 중국과의 긴장 완화를 꾀했다. 당시 닉슨 전 대통령은 ‘상하이 공동성명’을 발표했고 이를 통해 양국 관계는 정상화됐다.
미국 내에서는 트럼프가 이미 노벨평화상을 받을 정도로 업적을 세웠다는 평가도 있다. 미 정치매체 폴리티코에 따르면 루크 메서 미 공화당 하원의원은 판문점 선언을 두고 “이 역사적인 선언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노벨평화상을 받아야 한다”고 밝혔다. 그는 성명을 통해 “우리는 전례 없이 진전된 평화를 목격하고 있다”며 “그것은 트럼프 대통령이 강력한 리더십을 보여준 결과”라고 평가했다. 그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한국 땅에 첫발을 내디딘 순간 한반도 비핵화를 담은 선언문이 나왔다며 이에 큰 의미를 부여했다. 미국국가이익센터의 해리 카지아니스 연구원도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이번 회담이 트럼프 대통령이 아니었다면 성사되지 못했을 것이라는 점”이라며 “더군다나 이 같은 성과를 낸 것을 보면 트럼프는 노벨 평화상을 탈 자격이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NYT는 트럼프가 한반도를 둘러싼 드라마에서 주연 셋 중 한 명인 것은 맞지만 가장 중요한 주연은 아니라고 지적했다. NYT는 “문재인 대통령은 북한과의 대화를 대선 공약 때부터 주장했고, 자신의 약속을 이행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움직였다”며 “34세의 독재자인 김정은은 어찌 됐든 세계 무대에서 주목할 만한 강자가 됐다”고 설명했다.
부담이 늘어난 트럼프와 달리 김 위원장은 어떠한 출혈도 없이 성과를 냈다고 전문가들은 분석했다. 중앙정보국(CIA) 출신인 박정 브루킹스연구소 연구원은 “김 위원장은 양보 없이 세계 지도자들과 이 모든 회담을 이뤘다”며 “지금까지 김 위원장이 낸 비용은 없다”고 말했다.
북한이 남한과 외교, 경제적 관계를 재건할 뜻을 적극적으로 보인 만큼 트럼프가 다시 ‘화염과 분노’와 같은 표현을 쓰며 적대적인 태도로 돌아가기는 힘들 전망이다. 제프리 A. 베이더 전 국가안보회의(NSC) 아시아 담당 선임보좌관은 “트럼프가 취임 첫해에 썼던 ‘화염과 분노’ 카드를 쓸 수는 없을 것”이라고 관측했다.
김 위원장과 문 대통령의 회담 분위기와 성과를 볼 때 전문가들은 북미정상회담이 냉랭한 분위기를 연출하진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은 이날 ABC뉴스와 인터뷰에서 최근 방북에서 김 위원장과 “좋은 대화를 나눴다”며 “김 위원장은 우리가 비핵화를 달성하도록 지도를 펼쳐줄 준비가 됐다”고 밝혔다. 다만 폼페이오와 최근 취임한 존 볼튼 국가안보보좌관이 매파인 점을 끝까지 유념해야 할 요소라고 NYT는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