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양한 경력 쌓기에 적합…시급 3만 원 파견직 일자리 80% 급증
10년 전 일본에서 방영된 드라마 ‘파견의 품격’은 꿈같은 이야기로 인기를 끌었다. 셀 수 없을 정도로 다양한 자격증을 가진 ‘슈퍼 파견직’ 주인공이 초인적인 활약으로 정규직의 코를 납작하게 만들고 회사를 위기에서 구한다는 내용이다. 일본에서의 인기에 힘입어 몇 년 전 국내에서도 ‘직장의 신’이라는 제목으로 리메이크됐다. 이제는 드라마가 현실이 됐다. 산업에 혁신이 잇따르고 일손 부족을 겪는 일본에서 고임금 파견직 일자리가 급증하고 있다. 정규직을 우선하던 상식도 파괴됐다고 최근 니혼게이자이신문이 소개했다.
일본에서 파견 직원은 정직원이 될 수 없는 사람이 어쩔 수 없이 선택하는 길이라는 인식이 강했다. 그러나 최근 파견직 구인공고를 보면 그렇지 않다. 채용서비스 기업 엔재팬에 따르면 일본서 시급 3000엔(약 3만 원) 이상 파견직 일자리는 1년 사이 80% 급증했다. 사물인터넷(IoT)과 같은 수요가 높은 기술을 갖추면 시급이 2~3배로 뛰기도 한다.
IT기업 파견직으로 일하는 한 IoT 엔지니어는 7년 동안 5곳의 기업에서 일해 현재 연봉이 1000만 엔에 달해 정규직보다도 높다. 그는 “기술 변화가 빠른 지금 단기간에 자유롭게 직장을 바꾸며 여러 기술을 습득하기에 파견직은 적합한 근무 방식”이라면서 “사내 로케이션에 따라 직무가 결정되는 정규직은 경험을 쌓기 어렵다”고 말했다. 파견업체 아데코는 “파견직과 정규직을 오가며 경력을 쌓는 사람이 늘고 있다”고 설명했다.
정해진 시간만 근무하는 파견직의 장점을 활용하기도 한다. 통신회사에서 컨설턴트로 일하는 한 파견 직원은 정규직처럼 잔업을 하지 않는 대신 여가시간에 해외 사례를 연구하며 공부를 계속한다. 그는 “고용이 안정적이지 않기 때문에 항상 배수진을 치고 공부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중요한 것은 다른 직장으로 옮길 때 절대 시급을 내리지 않고 경력을 키우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벤처기업을 경영하며 대기업에서 파견직으로 일하는 사례도 있다. 최신 동향을 익히고 시너지 효과를 창출하기 위해서다. 일본 사회의 일손 부족으로 주 5일 근무가 일반적이던 기조가 주3일 등으로 자유로워진 것도 영향을 미쳤다. 일주일의 절반은 자신의 기업에서, 나머지 절반은 파견 기업에서 일하는 게 가능하다.
관련 제도가 개선된 점도 파견직 증가에 영향을 줬다. 일부 직종에 한정됐던 파견직 일자리가 다양해지고 근로 환경도 향상됐다. 4월부터는 일정 조건을 만족하면 무기고용으로 전환하는 제도가 시작됐다. ‘동일노동 동일임금’을 담은 ‘일하는 방식 개혁’ 관련 법안도 곧 의회를 통과할 전망이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불안정한 비정규직을 보호하는 법규가 마련되면서 ‘슈퍼 파견’의 증가가 이어질 것이라고 전했다. 요시나가 류이치 파소나테크 사장은 “속도가 빠른 IT분야에 정규직을 능가하는 파견사원이 지금보다 20% 정도 더 늘어날 것”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