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점선(1946~2009) 화백을 만난 것은 어느 회사의 연수원에서 강의를 하는 자리였다. 1000명 정도의 직원들을 나누어 강사 다섯 명을 불러 같은 시간에 강의를 끝내고 강사 다섯 명이 강 부장이라는 분과 차를 마시는 자리에서 그녀를 만났다.
인상부터가 답답함이 없고 시원시원했던 기억이 있다. 그 인연으로 다섯 명의 강사는 두세 차례 만나게 되었고, 여자끼리라 대화가 잘 어울렸고,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도 비슷하게 분위기가 맞았다. 드디어 김 화백이 동아리를 만들자고 제안을 했다. 그리고 동아리 이름을 자신이 작명하겠다고 후끈 달아오른 열의를 보였다. 모두 귀를 모으게 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거기 시인도 하나 섞여 있었지만 자신 있게 본인이 해야 한다고 하면서 누구도 막을 수 없는 당당함으로 기막힌 이름 하나를 제안했다.
“가위가 어때요, 가위클럽?”
나는 놀랐다. 모두 그렇게 놀라는 표정이었다. 그 누구도 따를 수 없는 탁월한 이름이었다고 나는 생각했다. 놀라는 회원들에게 김 화백은 한마디 더 덧붙였다.
“우리 다섯 가위로 세상의 불의를 다 잘라 내기로 합시다.”
우리는 모두 박수를 쳤고 김 화백의 제의에 순응했다. 그리고 야한 성적 농담이 뒤를 따르기도 했지만 무엇인가 위기감이 감도는 가위가 무엇이라도 이 사회에 할 일이 있을 것 같은 공감을 자아냈고 갑자기 민중적 열의가 끓어올랐다. 우린 다섯 손을 합쳐 “파이팅!”을 외치고 돌아섰다. 그렇게 헤어졌다.
그리고 우리는 그다음 모임을 하지 못했다. 가위 화백은 건강에 이상신호가 왔고, 그리고 그는 세상이라는 무대를 떠났다. 가위클럽은 그 한 사람의 이별로 사라졌다. 참 아쉬운 일이었지만 가끔 나는 그가 무엇을 자르고 싶었을까 의문이 들 때가 있다.
그는 솔직한 여성이었다. 어떤 남자가 좋았고 그래서 결혼했고 결혼생활은 이렇다고 보통 상식선을 벗어난 이야기를 아무렇지도 않게 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의 그림은 사람을 꿈꾸게 한다. 그가 이 세상에서 자르고 싶은 핵심을 잊게 하면서 보는 이들을 행복하게 만들어 내는 것이 그의 작품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의 그림처럼 이 세상을 아름답게 만들어 보고 싶어 그는 가위가 필요했을까. “강렬한 색채로 표현 대상이 풍기는 아리까리한 위선을 걷어내고 직통으로 본질을 포착하는 것이 그의 의도”라고 누군가 말했던 것 같다.
그렇다. 그에겐 위선이라는 것이 없다. 사람도 그렇고 그림도 그렇다. 적어도 내가 몇 번 만난 김점선 화백은 엉큼하지가 않았다. 오히려 선을 넘는 진실을 이 세상을 향해 쏘아붙임으로써 스스로 조성하는 아슬아슬한 위기가 있을 뿐이었다. 그는 이 세상이 가지고 있는 위선을 자르고 싶었는지 모른다. 재벌사회 지식사회 권력사회 미모 으뜸사회가 가지고 있는 미묘한 술래잡기식 얼굴 가리기의 위선을 진정성의 가위로 타다탁 자르고 싶었으리라 생각된다.
나는 왜 그의 가위론에 손을 들었을까. 신나는 박수를 친 내 본심은 무엇이었을까. 나도 가끔은 시퍼런 가위를 들고 세상의 그 무엇을 자르고 싶은 욕구가 일어날 때가 있었다 .그래서 오늘 강렬하게 김점선의 가위를 그리워하는 게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