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쁜 사마리아인들’ 10주년 특별판 출간
“한국경제는 지금 위태로운 상황이다. 지금 한국경제의 위기는 단순히 세계 경제 분위기가 안 좋아서 그런 게 아니고, 20여 년 동안 꾸준히 추구해 온 신자유주의 정책 속에서 발생한 것이다. 지금이라도 빨리 사회적 합의를 도출해서 제도를 도입하고 틀을 바꾸지 않으면 정말 큰일이 난다.”
장하준 영국 케임브리지대학교 경제학과 교수는 17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도서 ‘나쁜 사마리아인들’ 10주년 특별판 발매 기자간담회에서 “한국은 신자유주의와 개방의 희생자”라며 당면한 경제 위기의 뿌리가 1990년대 금융자유화에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한국은 1990년대 초반부터 추진한 금융자유화가 잘못되는 바람에 1997년 외환위기를 맞았지만, 원인을 금융자유화가 아닌 국가 주도의 개발 모델에서 찾으면서 기업 투자가 급감하고 경제성장률이 둔화하는 급격한 변화를 겪고 경제 성격도 바뀌었다”라고 언급했다.
장 교수는 한국경제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해법으로 산업정책의 부활과 획기적인 복지의 확대, 대기업의 역할을 강조했다. 그는 글로벌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선 경제 성장기 때처럼 정부 주도의 사회적 합의를 통해 전략 사업을 지속해서 육성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미국이 정부 주도로 컴퓨터, 인터넷, 반도체, GPS, 생명공학 산업을 일으킨 것처럼, 우리나라도 이런 정부 주도의 전략 사업 추진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장 교수는 지난 20년간 정부가 제대로 된 산업 하나 키우지 못했다며 전통 먹거리인 자동차, 조선은 중국에 따라 잡혔고 반도체 홀로 분투하는 상황에서 우리 경제의 미래는 없다고 역설했다. 이 때문에 대기업의 역할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고 밝혔다.
장 교수는 “반도체나 제약 같은 것은 벤처기업이나 중소기업은 절대 못 한다. 엄청난 액수의 연구비를 투자해야 하는데, 이는 대기업밖에 할 수 없다”면서 “정부는 대기업에는 규제를 과감히 풀되 세금을 무겁게 물리고, 이렇게 늘어난 세수로 복지 망을 강화해야만 성장과 분배의 선순환에 들어갈 수 있다”고 강조했다.
한편, 장 교수가 2007년 10월 출간한 ‘나쁜 사마리아인들’은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의 위험성을 일반 독자의 눈높이에 맞춰 소개한 대중 경제서다. 이 책은 글로벌 스탠더드라는 근사한 구호 아래 펼쳐진 신자유주의가 가난한 나라에는 더욱 안 좋다는 점을 역설하면서 지금의 부자나라가 경제 발전을 할 당시에는 그들이 현재 가난한 나라에 강요하는 신자유주의 정책을 쓴 적이 없다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하지만 국방부는 2008년 ‘나쁜 사마리아인들’이 반미·반자본주의를 주장하는 반정부적 내용을 담고 있다는 이유로 다른 22종의 도서와 함께 불온도서로 지정, 논란을 낳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