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대 석유기업, 기후변화 책임 소송에서 면피 목적으로 탄소세 지지
탄소세는 1991년 도입된 후 스웨덴과 핀란드 등 북유럽을 중심으로 시행되고 있다. 미국은 전 세계 탄소 배출량의 약 20%를 차지하면서도 탄소세를 도입하지 않았다. 그러나 최근 미국에서도 탄소세 적용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탄소세 도입을 위한 비영리 단체인 AFCD가 지난달 시행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81%는 정부가 탄소 감축 정책을 펴야 한다고 답했다.
탄소세가 석유기업들에 손해를 입히기 때문에 도입에 반대할 것이란 편견과 달리, AFCD를 지원하는 것은 거대 석유기업들이다. 엑손모빌과 쉘 등 거대 석유 기업은 탄소세 부과 운동을 벌이는 트렌트 로트 전 공화당 상원의원과 존 브로 전 민주당 상원의원 등에게 금전적인 지원을 하고 있다.
기업들이 환경보호에 모범을 보인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실상을 들여다보면 이들의 탄소세 도입 목적은 환경보호가 아닌 책임 면피다. 쉘을 포함한 37개 석유기업들은 현재 여러 개의 기후변화 책임 소송에 직면해있다. 대부분은 환경단체가 제기한 소송이다. 뉴욕시도 올 1월 세계 5대 석유기업에 기후변화로 인한 피해보상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만약 기업들이 탄소세를 내게 되면 현재 진행 중인 기후변화 소송에서 책임을 덜 수 있다.
석유업체들은 이미 화석연료가 기후 변화에 악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다. 1980년대 엑손모빌은 내부 조사에서 “계속해서 화석연료를 사용하는 일은 전 세계 많은 사람에게 치명적인 해를 끼칠 수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 쉘은 1998년 기후 변화 시나리오를 작성해 “미국 동부에 강력한 폭풍우가 닥쳐 석유기업에 대한 여론을 악화시킬 수 있다”고 내다봤다. 2012년 허리케인 샌디가 미국 동부 해안에 상륙해 630억 달러(약 70조6734억 원)의 피해를 주면서 이 시나리오는 현실이 됐다.
하지만 석유업체들은 기후변화가 가져올 위험을 알면서도 사업 모델을 바꾸는 대신 탄소세로 기업 이미지를 바꾸고 책임을 회피하는 데 집중했다. 엑손모빌은 탄소세를 지지하는 동시에 2025년까지 석유 생산량을 25% 늘릴 계획을 세웠다.
NYT는 탄소세 도입을 위한 석유업체들의 노력은 환경이 아닌 자신들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라며 기업들이 법정에서 기후 변화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