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생명이 금융당국의 즉시연금 일괄구제 권고에 반기를 들었다. 지급 근거가 모호해 분쟁(배임)의 소지가 있다고 보고 법원에 그 판단을 맡기기로 한 것이다.
삼성생명은 26일 이사회를 열고 즉시연금 가입자 5만5000명에게 미지급금으로 언급되는 4300억 원 중 일부를 지급하기로 했다. 사실상 부결이다.
이사회는 의결 문건에서 "이 사안은 법적 쟁점이 크고 지급할 근거가 명확하지 않아 이사회가 결정할 수 있는 범위를 벗어났다"며 "법원 판단에 따라 지급 여부를 결정하는 것이 타당하다는 결정을 내렸다"고 밝혔다.
전일 윤석헌 금감원장이 국회 정무위원회 업무보고에서 "일괄구제로 가는 것이 사회적 비용을 최소화하는 방법"이라고 압박수위를 높이며 일괄구제를 유도했지만, 이사진들은 보험 원리와 법적 다툼 가능성을 더 중요하게 다뤘다.
다만 삼성생명은 법원 판단과는 별개로 고객 보호 차원에서 4300억 원 중 일부는 지급하기로 했다.
이사회는 "해당 상품 가입 고객에게 제시된 '가입설계서 상의 최저보증이율 시 예시 금액'을 지급하는 방안을 신속하게 검토·집행할 것을 경영진에게 권고했다"고 전했다.
즉시연금은 가입자가 한꺼번에 목돈(보험료)을 내면 보험사가 이를 운용해 매달 이자를 생활연금으로 지급하고 만기 때 원금을 돌려받는 상품이다. 문제가 된 삼성생명 즉시연금의 최저보증이율은 2.5%다.
삼성생명 관계자는 금감원 분쟁조정위원회에 민원을 넣었던 A씨의 사례를 언급하며 "원금 10억원이 아닌 순보험료 9억4000만원에 2.5%를 곱해 12로 나눈 196만 원을 기준으로, 실제 연금 지급액이 이보다 적었던 달을 찾아내 차액을 주겠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삼성생명의 반기에 업계 시선은 한화ㆍ교보생명 등 즉시연금을 판매한 나머지 회사들로 향하고 있다. 미지급금 규모는 삼성생명 4300억 원, 한화생명 850억 원, 교보생명 700억 원 등 최대 1조 원에 달할 것으로 추정된다.
우선 교보생명은 오는 27일 정기이사회를 열 예정이다. 교보생명의 즉시연금 약관은 삼성생명과 유사하다.
교보생명 관계자는 "당국의 일괄구제 방침만 있을 뿐, 분쟁조정위 조정 대상이 아니기 때문에 이사회서 정식으로 논의하기 어렵다"며 "일단 내일 이사회 안건으로는 상정돼 있지 않다"고 말했다.
분쟁조정위 조정 결정을 받은 한화생명은 "법리적 검토가 필요하다"며 의견 제출 시한을 다음 달 10일로 미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