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금융당국이 정책 서민금융을 확대하겠다고 나섰다. 그러나 점점 비어가는 곳간에 정책 실효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목소리가 높다.
1일 금융당국에 따르면 금융위원회는 6월부터 '서민금융지원체계 개편 태스크포스(TF)팀'을 꾸려 서민금융 정책 방향과 재정 확보 방안을 마련하기 위해 막바지 논의를 이어가고 있다. 앞으로 1~2차례 추가 회의를 열어 다음 달 개편안을 내놓을 계획이다.
◇대기업·금융사 출연금에 의존...곳간 비어가
서민금융은 신용등급이 낮거나 담보가 없어 제도권 금융기관 이용이 어려운 서민들을 위한 제도다. 미소금융과 햇살론, 새희망홀씨, 바꿔드림론이 대표적인 상품이다. 미소금융과 햇살론, 새희망홀씨는 저소득층에게 돈을 빌려준다. 바꿔드림론은 고금리 대출을 저금리로 바꿔준다. 서민금융진흥원이 이들 상품을 관리·운용한다. 진흥원은 제각각 운영해온 서민금융업무를 통합해 다음 달 2주년을 맞는다.
금융위에 따르면 5월 기준 4대 정책 서민금융상품(미소금융·햇살론·새희망홀씨·바꿔드림론)에 2조8248억 원을 지원했다. 2010년 3조3000억 원 규모였던 공급액은 지난해 7조 원에 이르렀다. 올해도 비슷한 금액을 지원할 계획이다.
덩치는 매년 커지고 있는데, 문제는 재정구조다. 돈이 대부분 '출연금(기부금)'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우선 삼성·현대차·롯데·SK·포스코·LG 등 6대 기업이 2020년까지 1조 원을 약속했다. 이 돈은 미소금융에 사용한다. 올해까지 7000억 원을 주기로 했다. 나머지 지급 여부는 올해 논의에 들어간다. 그러나 '국정농단 사태'를 거치면서 기부금 문화가 얼어붙어 마냥 낙관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일부 대기업은 미르·K스포츠재단 출연을 예로 들며 문제가 불거질까 우려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또 다른 통로는 금융사다. 현재 KB국민·신한·KEB하나·농협·우리·IBK기업은행 등 6개 은행이 햇살론 상품에 2024년까지 출연금 9000억 원을 내기로 했다. 미소금융에 내기로 한 출연금 2530억 원은 이미 끝났다. 은행이 돌려받은 부실정리채권 기금 등을 미소금융에 내는 방식이다. 은행 등 다른 금융사들도 일부 출연금을 내고 있다. 그밖에 복권기금은 2020년까지다. 바꿔드림론 재원을 대는 국민행복기금 역시 더 이상 수익을 내기 어려운 상황으로 알려졌다.
◇'국가 예산' 등 근본 대책 필요...'모럴 해저드' 비판은 덫
금융당국 고민도 바로 이 지점이다. 현재 서민금융은 대기업과 금융사의 '선의'에 기대는 근본적인 한계가 있다. 애초 기업 출연금 등으로 재원을 조달해 정책을 만들었으나 더 이상 돈 줄 사람이 없는 것이다. 금융위 관계자는 "지속가능한 재원 체계를 위한 논의가 필요하다"며 "현재는 한 명 한 명 돈을 낼 사람들의 오케이 사인을 받아야 한다"고 전했다. 당국 입장에서는 예전처럼 기업에 돈을 달라고 요구하기도 어렵고, 기업은 혹시 모를 법적 문제에 걸려들까봐 조심스러운 상황이다.
근본 해결책은 국가 예산 지원이다. 서민금융진흥원 관계자는 "정부 예산을 받는 것이 가장 안정적인 재원 조달방법이지만 정부를 설득하기는 쉽지 않다"고 했다. 서민금융을 바라보는 부정적인 여론 탓이다.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모럴 해저드(도덕적 해이)'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여론을 극복해도 기획재정부를 설득해야 하는 난관에 놓인다. 일각에서는 정책 서민금융이 금융인지 복지인지 모르겠다며 의문을 제기하기도 한다. 최종구 금융위원장은 최근 이를 의식한 듯 "정책 서민금융은 원칙적으로 시장금융을 이용하기 어려운 분들을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부실률이 상대적으로 높은 것은 어느 정도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며 "그러나 이것이 채무자만의 책임인지는 다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금융위 태스크포스팀도 재정 확보 방안을 가장 중점적으로 논의 중이다. 아직 묘안은 없는 것으로 전해졌다.
윤창현 서울시립대 경영학부 교수는 "위험도가 높은 차주에게 낮은 금리로 지원하기 때문에 원금을 계속 훼손하는 상황"이라며 "기부금을 받아 운용할지, 정부 예산을 확보할지 등 큰 그림을 정해야 할 때가 왔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