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이 넘는 공백에 ‘청와대 사전개입’ 논란까지 겪은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장(CIO) 선출 과정이 또다시 혼탁해질 양상을 보이고 있다. 아직 면접심사도 치러지지 않았지만 청와대 국민청원에 특정 후보에 대한 반대의견까지 등장했다.
10일 청와대 국민청원 및 제안 페이지에는 ‘주진형 씨 국민연금 CIO 후보 반대합니다’라는 글이 게재됐다. 현재 청원 동의 인원은 1000명을 넘겼다.
작성자는 주진형 씨가 한화투자증권 사장이던 시절 해당 회사에 근무했다고 밝히며 주 전 사장이 국민연금의 CIO로 적합하지 않다고 주장했다. 내부적으로 노조를 와해시키는 정책과 인사를 단행했고 직원 구조조정도 거칠게 밀어붙이는 등 당시 경영인으로서의 자질이 부족했음을 질책하는 내용이다. 다만 국민연금 기금운용정책의 방향성이나 주 전 사장의 CIO 직무 적합성에 대한 구체적인 언급은 없었다.
작성자는 “서민들의 마지막 희망 줄인 국민연금을 주진형 씨에게 맡긴다면 유능한 매니저들의 이탈과 조직의 와해는 불 보듯 뻔하다”며 “주진형 씨가 지나간 회사들의 내부 의견을 듣고 인사를 하길 바란다”고 밝혔다.
국민연금 기금이사추천위원회는 최근 CIO 공개모집에 지원한 30명 중 서류심사를 통과한 13명에 대해 21일 면접 심사를 한다. 면접심사는 물론 숏리스트(최종 후보자 명단)가 추려지기 전인데도 특정 후보에 대한 반대 여론이 적극적으로 등장하는 데는 지난번 청와대 사전개입 논란의 영향이 큰 것으로 분석된다.
올해 초 CIO 공모에서 숏리스트 명단에 들었던 곽태선 전 베어링자산운용 대표가 사실상 내정된 것으로 알려진 후에 최종 탈락하면서 CIO 인사에 청와대가 개입했다는 의혹을 제기한 바 있다. 국민연금은 당시 적임자를 찾지 못했을 뿐이라고 해명했다.
주 전 사장은 2016년 더불어민주당 총선정책공약단 부단장과 국민경제상황실 부실장을 지냈다. 경력은 물론 개혁적인 성향 등이 현 정권의 인사 코드에 부합한다는 평판을 얻으면서 지난 금융위원장과 금융감독원장 인선 당시에도 수차례 후보군에 등장했다.
이에 주 전 사장의 이번 CIO 지원 소식만으로도 ‘유력’ 또는 ‘내정’ 가능성까지 등장한 상황이다. 지난번 첫 CIO 공모 당시와 같은 인사 개입이 재현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에 여론이 더욱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으로 풀이된다.
특히 주 전 사장의 알려진 이력에서는 직접 운용·투자 경력을 일컫는 ‘바이사이드’는 물론 평가와 분석 위주인 ‘셀사이드’ 경력도 없다는 점에서 서류통과 타당성에 대한 의문까지 더해졌다. 국민연금 CIO 지원자는 은행, 보험사, 집합투자업자 또는 투자일임자 등 금융기관의 단위 부서장 이상 경력을 보유해야 하고 자산운용 경험이 3년 이상 있어야 한다. 특히 최근 CIO 공모에서는 해외운용 경험을 집중적으로 본다고 언급됐다. 그러나 주 전 대표는 삼성증권과 우리투자증권 등에서 경영, 전략기획 등을 맡아온 ‘구조조정 전문가’로 알려져 있다.
주 전 사장은 물론이고 이번 공모에 참여한 다른 후보자들 역시 언론을 통해 약력 일부만 공개되는 데 그치고 있다. 현재 국민연금 상황 진단과 방향성에 대한 후보들의 견해 등은 기금이사추천위원회 내부에서만 공유된다.
한 자산운용사 대표는 “635조 원 규모 연금의 운용책임자를 선발하는 과정에서 후보자들이 가진 연금 운용의 방향성이나 비전의 현실성, 전문성 등이 얼마나 고려되는지 보이지 않는다”며 “투표로 뽑을 일은 아니지만 주요 경력이나 공약 등은 국민들도 알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