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기획-여성기관&단체를 찾아] 나윤경 "지적이지 않은 사회, '혐오민국' 만들었다"

입력 2018-09-04 10:00수정 2018-09-04 1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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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양성평등교육진흥원장…"질적 측면 확장된 양평원 고려할 때"

▲나윤경 한국양성평등교육진흥원장이 서울 은평구에 위치한 한국양성평등교육진흥원에서 이투데이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고이란 기자 photoeran@
"청년들은 엄마의 관리를 끊임없이 받고, 남편들은 아내의 콘트롤 아래에 있죠. 월급을 부인에게 주고, 아내의 취향에 넥타이 색을 맞춰요. 일상에서 '여성의 파워'를 강하게 경험하는 남성들은 여성이 자신보다 우월한 위치에 있다고 착각을 하게 되죠. 남성의 지위가 여성보다 더 낮다는 착각이요. 그러면서 데이트 비용은 왜 굳이 남성들이 내려고 하죠?"

나윤경(52) 한국양성평등교육진흥원장은 한국 사회에서 양성평등이 이뤄지기 위해서는 구조적인 측면에서 남녀의 힘을 비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나 원장은 '엄마'의 관리, '아내'의 선택은 '문화적인 힘'으로, 고등교육을 받은 여성이 사회의 의사결정 시스템 안으로 들어갔는지 여부는 '구조적 파워'로 봤다.

우리나라의 양성평등 지수는 어느 수준일까. 국제사회는 경제참여·기회, 교육성과, 보건, 정치권한 등 4개 부문을 기준으로 양성평등 지수를 측정한다. 나 원장이 말한 '구조적 파워'가 여기에 해당한다. 지난해 11월 세계경제포럼(WEF)이 발표한 연례 '세계 성격차 보고서 2017'을 보면 한국은 성격차지수 0.650로 118위에 머물렀다. 2006년에는 92위였는데, 10년 후 오히려 후퇴했다.

낮은 양성평등 지수로 볼 수 있듯 우리 사회는 '갈등'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국민 80.7%가 성별을 기반으로 한 혐오표현이 '심각하다'고 봤다. 한국언론진흥재단 미디어연구센터는 지난달 20일부터 25일까지 20~50대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온라인 설문조사를 한 결과, 여성(85.8%)이 남성(75.6%)에 비해 혐오 표현 문제가 더욱 심각하다고 인식했다.

나 원장은 이에 대해 "우리 사회가 지적으로 나아가고 있지 않은 것"이라고 진단했다. 남녀 혐오 외에도 난민 혐오, 노인 혐오 등 각종 혐오로 사회가 얼룩져 있지만, 뚜렷한 명분이나 이성적인 이유, 근거 없이 감각적으로 서로를 증오하고 있는 것에 대한 지적이다.

"혐오는 상대방에 대한 정보가 없기 때문에 일어나는 것이에요. 예를 들어 예맨 난민을 왜 싫어하냐고 물으면 '이슬람은 테러리스트이기 때문'이라는 대답이 돌아와요. 편견이에요. 이슬람은 곧 테러리스트가 아닙니다. 이슬람국을 여행한 이들은 그곳에선 여행객이 굶어죽을 수 없다고 입을 모아 말해요. 누구든 만나면 밥주고 궁금해 하고 물어보니까요. 이슬람이 모두 '안전하다'는 것도 아닙니다. 하지만 '안전하지 않다'와 '위험하다' 사이에는 엄청난 스펙트럼이 있어요. 혐오가 난무하는 사회는 이 간극에 대한 지적인 설명 체계가 삭제돼 버린 상태인 거죠."

나 원장은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페미니스트이자 여성학 전문가다. 연세대 교육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위스콘신주립대에서 성인여성교육 석사, 페미니스트 페다고지 박사를 받았다. 2002년부터는 연세대학교에서 문화인류학 교수로 학생들을 가르쳤고, 학교 성평등센터 소장도 역임했다. 현재 범정부 성희롱·성폭력 근절 추진협의회 위원으로 참여 중이다. 지난 6월 25일 제8대 양평원장으로 취임했다.

학생들을 가르치다 국가단체장으로 오게 된 나 원장이 사회 문제를 절실하게 느낀 순간은 언제일까. "최근 법무부 전수조사 결과에 따르면 검사의 70퍼센트가 성추행을 당한 경험이 있다고 답했습니다. 최고의 지위에 있는 여성들이 일상적인 성추행에 노출돼 있어요. 이는 우리 사회에서 성평등 논의가 시작도 하지 않았다는 것을 말하죠. 그런데 사람들은 벌써 지겨워하기 시작했어요. 너무나도 지겨워 하는 이 현상이 문제입니다. 시작도 하지 않았는데, '그만하라. 지겹다'라는 이 지점을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입니다."

우리 사회에 젠더 갈등 문제가 수면 위로 떠오른 것은 올해 초 '미투(Metoo·나도 당했다)' 운동이 시작되면서다. 이후 '홍익대 누드모델 몰카'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여성이 징역 10개월을 받은 반면, 같은 날 여자친구의 알몸 사진을 37회에 걸쳐 몰래 찍은 20대 남성은 집행유예를 받은 사실이 알려지자 여성들은 공동행동을 시작했다.

하지만 '혜화역 시위'에 대한 지지 여부는 성별에 따라 갈린다. 한국언론진흥재단 조사 결과, 여성 응답자의 50.8%가 지지의사를 표명한 것에 반해, 남성은 21.8%만이 지지한다고 답했다. 같은 맥락으로 '편파 판결'이라는 주장과 '정당하다'는 주장이 대립각을 이뤘다. 나 원장에게 이에 대한 의견을 묻자 "편파 수사나 편파 판결이 아니라고 하는 생각이 놀랍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나 원장은 우리 사회에서 '혐오'가 난무하고 있는 것에 대해 "지적이지 않은 사회임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진단했다. 고이란 기자 photoeran@

"여성의 몸이 찍힌 사진은 한 장에 10원, 100원, 200원으로 수천만 장이 팔립니다. 수조 원 아니, 수십조 원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돈으로 환산할 수 없을 정도예요. 이 시장에 일조한 남성들은 지금까지 어떠한 처벌을 받았나요? '홍대 몰카'를 올린 여성이 사진을 유포했다는 사실도 중요합니다. 다만, 이 여성은 사진 유포로 단 1원도 벌지 못했죠. 놀라운 리비도 경제 앞에서 사진 한 장을 유포한 그녀에게 10개월의 판결을 내리고도 편파적이지 않다고 말하는 건 정말 창피한 일입니다. 경찰 쪽에서 교육을 요청해 왔습니다. 그러면서 '왜 편파 수사인지 말해달라'고 하더라고요. 저는 '왜 편파 수사가 아닌지 말해보라'고 할 작정입니다."

최근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가 1심에서 무죄 판결을 받은 것에 대해서도 뜨거운 논쟁이 이어졌다. 여성계와 정치권에서는 안 전 지사에 대한 무죄 선고는 미투 운동에 대한 '사형 선고'라는 비판이 터져 나왔다.

"1심 이후 사법연수원 연락을 받았습니다. 성 인지 교육을 해달라는 요청을 받았죠. 본인들이 보기에도 말이 안 되는 선고인 거죠. '위력은 있었으나 위력행사가 없다'는 것은 무슨 말인가요? 법은 남성 중심적입니다. 법 체계에서 여성은 절대 유리할 수 없어요. 지적이지 않은 판결이 나온 이유죠. 일부 남성들은 성폭력 피해자에게 '싫으면 왜 그곳에 갔느냐'고 말합니다. 싫으면 싫다고 말하라는 것이죠. 저는 거짓말 하지 말라고 말합니다. '당신도 상사가 말하면 꿈쩍없이 해야 하지 않나요? 밥 먹고 있어도 상사가 이삿짐 도와달라고 전화하면 바로 가야 하지 않나요?'라고요. 본인은 상사의 말을 무조건 다 따라놓고, '나 같으면 거절했겠다'고 말해요. 사람들은 모두 약자의 맥락이 있어요. 누구든 누구에게는 약자고, 누구에게는 강자예요. 그렇다면 누굴 위해 변호해야 될까요?"

양평원에서 시행하고 있는 성 인지 교육을 연령별, 맥락별, 직군별로 체계화 하고 싶다는 게 나 원장의 바람이다. '맥락적 표준화'라는 명칭을 붙였다. 지금까지 양평원은 초·중·고·대학생, 공무원 등에게 일률적인 교육을 해왔다. 나 원장은 "초등학생들에게는 '왕따' 관련 등 그들에게 필요한 성 인지 교육을 해야 하고, 대학생에게는 데이트 폭력, 리벤지 폭력 등을 가르쳐야 한다"며 "맥락적 표준화를 갖춘 교육을 실시함으로써 성 인지 교육을 질적으로 한 단계 높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나 원장은 인터뷰 내내 거침없이 주장을 개진했다. 그가 이끌어 가게 될 여성가족부 산하기관인 양평원은 우리사회의 양성평등 문화 정착 및 의식 확산을 위해 다양한 방식의 평등문화 활동을 펼치고 있다. 나 원장은 취임 두달여 밖에 되지 않았지만, 양평원 내부에서 '열정적이다'라는 평가와 '기대된다'는 반응이 나오고 있다.

"제 의지가 남달라 보이는 이유는 지금까지 양평원장을 민무숙 원장님을 비롯해 초대 몇 분을 제외하고 전문가가 맡지 않았기 때문이에요. 양평원의 비극이었죠. 국가단체를 전문가가 맡지 않았다는 것은 여성, 성평등 문제 등에 대해 정부가 진지하지 않았다는 거예요. 전문 지식이 필요없다고 생각하는 거죠. 저는 바깥에서 활동하고 있는 페미니스트 보다 의지가 투철하지 않아요. 제가 갖고 있는 전문지식을 시행하는 것 뿐이에요. 다만, 양평원이 지금까지 양적인 측면으로 확장됐다면, 질적으로 제고하고 싶습니다."

▲나 원장은 "사람들은 모두 약자의 맥락이 있다"며 피해자의 의사표현을 지적하는 이들을 비판했다. 고이란 기자 photoer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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