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일 경제정책과 차별화…시장 늘고 북한산 점유율 증가, 남북 기술집약적 제조업 분야 협력 필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2012년 집권한 이후 북한경제에 적지 않은 변화들이 나타나고 있다.
김정은 정권이 시장 허용과 제품 국산화 강화 등 종전 김정일 정권과 차별된 경제정책을 적극 추진하면서 북한 제조업이 기계공업을 중심으로 부분적인 회복세를 보이고 있다. 이러한 북한 제조업의 회복세는 향후 대북(對北) 제재 해제 후 곧바로 전개될 남북 경제협력에 긍정적으로 작용할 것이란 분석이 나왔다
최근 산업연구원이 발표한 ‘김정은 시대 북한 산업 및 산업정책과 남북경협에 대한 시사점’이라는 보고서에 따르면 김정은 집권 이후 북한 제조업 생산 역량이 회복되는 조짐이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다.
한국은행의 북한 국민총소득(GNI) 추정치를 보면 김정은 집권 이후인 2012~2016년 기간 중 제조업의 평균성장률은 여전히 전기가스·수도업이나 광업에 비해 낮지만 김정일 정권 제조업의 평균성장률보다는 높은 것으로 추산됐다.
특히 기계공업의 경우 김정은 위원장 집권 이후 성과가 두드러진다. 그중에서도 발전소 건설을 위한 중전기 등 설비를 비롯해 그동안 거의 침묵을 지키고 있던 수송기계나 농기계 등에서의 성과가 눈에 띈다. 대표적으로 승리자동차연합기업소와 금성뜨락또르공장이 2015년 각각 신형 5톤 트럭과 80마력 트랙터를 생산하기 시작해 2017년에는 생산량이 수백 대에 이른다.
북한 기계공업의 또 다른 특징은 최근 국산설비에 의한 설비 현대화가 폭 넓게 추진되고 있다는 점이다. 2010년께까지 북한에서 설비의 현대화는 중국 등으로부터 설비를 수입하는 방식으로 이뤄졌는데, 최근에는 내부에서 제작한 설비를 통한 현대화가 추진되고 있다. 김정은 위원장이 농업과 함께 ‘인민생활 개선의 최전선’으로 규정한 경공업 부문은 식품가공 등 일부 소비재에서 중국 제품과의 경쟁 가능성을 확보했다.
여전히 중국산 수입품이 북한 소비재 시장을 장악하고 있지만 가공식품, 신발, 약품 및 건강식품 등에서 북한산 제품의 점유율이 증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저가의 중국산 제품에 대한 만족도가 떨어지고 있고, 중간계층의 고급소비재에 대한 수요 급증이 국산 제품의 공급과 소비를 늘리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정보통신기술(ICT) 등 기술 집약적 산업도 수입 의존에서 일부 제조로 발전하는 모습이다. 실제 중국에 의존해온 스마트폰이나 태블릿 PC, 평판 TV나 태양광발전 설비 등 다양한 기술 제품들이 북한에서 생산되고 있다. 기술제품의 공급은 김책공업대학 등 기술 개발을 주도하는 대학에서 설립한 기술 교류소가 자체 기술 및 인력을 활용해 제품을 개발 및 생산·공급하는 형태로 이뤄진다. 또 기술 제품을 수입·판매하는 회사가 과학기술 부문과 결합, 제품을 생산해 판매하는 방식도 있다.
이 같은 성과의 밑바탕에는 △시장 용인 및 국영기업의 시장경제 활동 공식 보장 △기존 설비의 안정화와 현대화를 통한 소재공급 역량 확충 △원료·자재, 설비, 제품의 국산화 강화 △과학기술과 인력 양성 중심의 전략 모색 등 김정일 정권과 다른 ‘김정은식 경제정책’이 자리 잡고 있다는 분석이다. 다만 에너지 부문은 1990년대 이후 발전능력 제고와 함께 기존 산업설비의 에너지 절약 및 에너지원 전환(전기·중유 사용 공정을 석탄으로 전환)을 위한 투자가 지속되고 있지만 그 성과는 제한적인 상황이다.
금속 및 화학도 설비 현대화나 새로운 기술개발 등을 통해 공급 능력 확충을 도모하고 있으나 아직 큰 성과는 없는 상태다.
이처럼 전반적으로 북한 제조업이 회복세를 보이고 있다는 점은 향후 남북한 산업협력 전반에 긍정적인 효과를 가져다 줄 것이라고 보고서는 분석했다.
이석기 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비핵화가 진전되면 남북한 산업협력을 가로막는 장애요인들이 제거돼 여러 분야에서 남북한 산업협력의 기회가 열릴 것으로 전망된다”면서 “단기적으로는 봉제의류나 생활용품 등 노동집약적인 경공업 분야의 위탁가공 교역이 늘어날 가능성이 가장 높다”고 진단했다. 이어 “북한에서 수요가 빠르게 증가하고, 산업기반을 갖추고 있는 광업, 농업, 건설, 섬유 등 산업용 기계분야에서도 남북한 산업협력의 잠재력이 큰 것으로 판단되며 ICT 및 가전제품 등의 제조업과 소프트웨어 등의 분야도 협력이 본격화될 수 있다”고 말했다.
북한이 가장 큰 어려움을 겪고 있는 금속 및 화학 등 소재산업의 경우 남북한 산업협력의 필요성이 큰 산업이라고 이 선임연구위원은 강조했다. 그는 또 “김정은 위원장이 집권 이후 지속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과학기술 중시 정책과 인력 양성 정책도 긍정적인 대목”이라며 “이를 남북 간 기술집약적 제조업 및 연구개발 (R&D) 분야 협력 추진에 적극 활용할 필요가 있다”고 주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