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점 멀어져 가는 ‘창업 천국의 꿈’
“이봐, 해보기나 했어?”
성공에 대한 집념과 포기를 모르는 열정을 이보다 더 잘 담아낸 질문이 또 있을까. 현대그룹을 일궈 낸 고(故) 아산 정주영 회장의 이 시그니처 질문은 한국의 기업가 정신을 대표한다. 열여섯 나이에 소 판 돈 70원을 들고 상경한 아산은 쌀을 팔고, 땅을 개간해 다리를 놓고, 그 위에 포니를 만들어 굴렸다. 성공 신화의 원조인 아산이 자신을 ‘부유한 노동자’라고 불리길 고집한 데는, 꺼지지 않는 일 욕심이 있다.
아산이 우직하게 차례차례 일궈 나가는 스타일이었다면, 고 김철호 명성그룹 회장은 ‘트렌드세터’다. 한국 관광산업을 20년 앞당겼다는 평가를 듣는 김 회장도 1980년대 대표적인 ‘개척자’다. 그는 명성콘도를 통해 콘도미니엄을 국내에 처음 소개하면서 ‘새 시장’을 개척했다. 5공화국 정권의 칼부림에 고꾸라졌으나 미래 트렌드를 읽는 김 회장의 감각은 현재 한화리조트로 전국 휴양지 곳곳에 남아 있다.
한국뿐 아니라 세계 경제는 이런 개척자들의 줄 잇는 등장으로 발전해왔다. 미국의 실리콘밸리는 실패의 무덤이자 창업의 요새다. 아마존 창업자인 제프 베조스는 “실패하더라도 안정에 집착하다가 원하는 일을 시도하지 않은 것을 더 후회하게 될 것 같다”며 100만 달러(약 11억 원) 연봉의 직장을 버리고 나와 아마존을 만들었다. 세계 최고 부호인 베조스이지만, 22년간 70개 사업 중 18개를 ‘말아먹었다’. 우버 창업자인 트래비스 캘러닉도 네 번의 큰 좌절과 파산을 딛고 우뚝 섰다.
중국에는 8전 9기의 마윈 회장도 있다. “작은 일을 시작해야 위대한 일이 생긴다”는 신념으로 버텨 알리바바그룹을 중국 최대 전자상거래업체로 세운 마 회장은 중국을 대표하는 개척자로 귀감이 되고 있다.
이들은 기업가 정신의 맥이 미약해진 현재 한국 경제에 울림을 준다. 현대 경영학의 대가인 피터 드러커는 1996년 전 세계에서 기업가 정신이 가장 왕성한 나라가 어디라고 생각하냐는 질문에 “의심할 바 없이 한국이다”라고 답했다. 1950년 전쟁으로 폐허가 된 땅에서 40여 년 만에 괄목할 성장을 이뤄낸 원동력을 높은 기업가 정신으로 꼽은 것이다.
한때 ‘세계 최고’라는 평가를 받은 한국의 기업가 정신은 2000년대 들어 계속 약화하고 있다. 암웨이가 지난해 발간한 글로벌기업가정신보고서(AGER)에 따르면 한국의 기업가정신지수(AESI)는 39점으로 전년보다 9점 하락했다. 44개국 조사 대상국 중 33위에 그쳤다.
‘창조경제’와 ‘혁신성장’ 등 정부마다 기치를 내걸어 이들의 기업가 정신을 이어받을 창업가를 발굴하고자 노력하고 있지만 잘 먹히지 않는다. 실패 후 재기할 수 없다는 두려움, 새싹을 밟는 공룡들의 시장이 ‘잠재적 개척가’들을 안정적인 밥벌이라는 한 방향을 향해 뛰게 하고 있기 때문이다.
조지프 슘페터의 말처럼 경제 성장은 ‘창조적 파괴’를 실현하는 기업가들이 등장할 때라야 가능하다. 한국의 창업자 비율은 0.8%, 중국은 8.0%. 10배 차이다. 미 실리콘밸리의 창업가들은 평균 2.8회의 실패 경험이 있다. 한국 창업가들은 평균 1.3회에 그친다. 중국과 미국에서는 실패를 딛고 재창업하거나 재기할 수 있다. 창업 실패의 책임을 정부가 나눠 안아주기 때문이다. 반면 한국에서 실패는 곧 재기불능이다.
한국이 국민소득 4만 달러 시대를 열고 창업 천국이 되려면 실패를 용인하고, 새싹이 바닥을 비집어 뚫고 올라올 기회를 마련하는 게 중요하다. 마침 정부가 지난달 14~16일 광화문에서 ‘2018 실패박람회’를 열었다. 기업과 민간 등 사회구성원들이 실패 경험을 공유하고, 도전을 응원하며 실패에서 배울 점을 나눌 자리를 마련하기 위해 기획했다. 당시 홍종학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은 “재기하는 걸 지원하는 게 가장 좋은 창업 지원책”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