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경제연구원이 GM, 델파이, 르노, PSA 등 해외 자동차 4사의 구조조정 사례를 통해 “‘고인건비, 저생산성’ 구조가 위기를 불러왔으며, 협력적 노사관계가 구조조정 성패를 가르는 요소”라고 11일 강조했다.
한경연은 4개사가 공통적으로 ‘고인건비, 저생산성’ 구조를 갖고 있어, 경영환경이 나빠지자 단기에 혹독한 구조조정이 필요했다고 설명했다.
구조조정 과정에서 노사가 서로 양보하고 생산성 향상에 힘을 모은 GM, 르노는 조기 정상화돼 고용이 다시 늘었지만, 발전적 노사관계가 정립되지 않은 델파이, PSA는 국내 생산기반이 줄어 노사 모두가 패자로 끝났다고 평가했다.
◇“노사 강경입장 고수”美 델파이…생산기반을 대폭 정리 = 델파이는 2000년대 초반 자동차부품산업 매출액 세계 1위, 기술력 1위로 독보적인 경쟁력을 유지했다.
다만 미국 고용 근로자의 인건비가 높아 고정비 부담이 컸다. 이에 델파이는 거래선을 GM 중심에서 다변화로 매출을 늘렸고 멕시코·중국 등 저비용 국가에서 제조를 확대, 고노동비용을 감당했다.
그러나 이후 델파이는 주고객인 미국 완성차들의 북미판매 부진, GM의 부품 해외조달 본격화로 매출이 2003년부터 정체됐다. 철강·레진 가격인상으로 생산비 부담도 가중됐다.
델파이는 수익성 확보를 위해 2004년 비용을 매출액의 3%만큼 줄였지만 판매가 하락, 임금·복지비 증가, 원재료가 상승으로 영업손실이 4억8000만 달러 발생했다. 인건비가 높은 미국공장의 영업손실이 16억달러였다.
2005년 상반기 영업손실이 6억1000만 달러로 불어나자 사측은 노조에게 임금 60% 삭감 및 의료·연금혜택 축소를 요청했으나 노조는 협상에서 혜택 축소에 대해 계속 부정적 입장을 고수했다.
협상이 결렬되자 사측은 경쟁력을 훼손하는 미국 내 고인건비와 경직적 근로계약 문제는 법정 밖에서 해결이 불가능하다*고 판단, 2005년 10월 법원에 파산보호신청을 했다.
델파이는 미국 내 저부가가치 제품 생산공장을 대거 폐쇄·매각하거나 GM에 반환했다. 고부가가치 또는 로지스틱스 차원에서 이점이 있는 제품만 국내 생산하는 방향으로 강도 높게 구조조정을 했다.
파산보호 졸업 후 델파이의 매출액과 영업이익은 수직 반등했다*. 다만 파산 전 미국 내 근로자는 4만7400명, 제조공장은 37개였으나, 파산 졸업 후 근로자는 5000명, 공장은 5개만 남았다. 특히 미국 내 생산·숙련직은 파산 전 3만3100명에서 파산 졸업 후 1000명만 남았고, 생산·숙련직의 91%가 저임금 국가에 있는 고용구조로 바뀌었다.
◇ 佛 PSA, 강성노조 파업으로 공장 조기 폐쇄 = 유럽의 자동차 제조 10개국 중 프랑스의 생산성은 5위로 중위권이나 제조업 노동비용은 독일에 이어 두 번째로 높았다.
2011~2012년 유럽 국가 부채위기와 경기침체로 수요가 위축되자 프랑스 PSA와 르노는 구조조정을 더 이상 미룰 수 없게 되자 PSA는 2012년 6월 오네이 공장을 폐쇄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사측은 기업정상화를 위해 본사건물, 자회사를 매각하고 경쟁사 GM과 제휴해 구매비용, 차량개발비용을 절감하는 등 자구노력을 다했고, 폐쇄 공장 근로자는 한명도 강제해고하지 않겠다며 이들의 일자리 대책 마련을 약속*했다.
오네이 공장 노조는 사측이 제시한 조건을 거절했다. 근무지를 파리 북부외곽(오네이)에서 서부외곽(포이시)으로 이전하는데 다수가 반대했다.
프랑스 제1노조 CFDT는 사측이 판매를 늘려 공장유지가 가능한데 생산문제를 과장한다고 비판했고, 제2노조 CGT는 2013년 1월부터 오네이 공장에서 파업을 4개월간 지속했다.
공장 생산능력은 1일 250대에서 파업 후 40~50대로 하락했고, 파업노조가 장비를 파손하여 생산이 중단됐다. 경영진과 파업노조는 서로 형사고발도 했다.
결국 오네이 공장은 계획보다 1년 빨리 공장을 폐쇄됐다. PSA는 공장 폐쇄 과정에서 노사갈등이 심각했고 유휴 설비·인력을 충분히 구조조정하지 못했다.
◇ 美 GM , 노사 상호 양보로 경영 정상화 = 델파이의 모기업 GM도 고인건비, 높은 고정비 문제를 겪고 있었으나 노사의 상호 양보로 경영 정상화에 성공해다.
2006~2007년 GM의 시간당 노동비용은 70.5달러로 도요타(47.6달러), 혼다(43.0달러) 등 경쟁사 보다 1.5배 높았다. GM이 수익을 내려면 미국에서 1200만대를 팔아야 했다.
하지만 미국 자동차시장이 줄고 GM의 미국 시장점유율마저 하락하자 GM은 2005년부터 매년 대규모 적자*를 냈다. 결국 GM은 2008년 정부에 구제금융을 신청했고 2009년 법적 구조조정 절차를 밟았다.
구조조정안은 GM의 손익분기점을 1천만대로 낮추도록 공장을 47개에서 34개로 줄이고 근로자를 8만8000명에서 6만8000명으로 감원하는 내용을 포함했다.
이에 노조는 신입사원 임금을 기존직원의 절반으로 낮추는 ‘이중임금제’를 도입했다. 또 퇴직자 연금·의료혜택 축소, 해고 시 평균임금의 95%를 지급하는 ‘잡뱅크제’ 폐지, 기업성과와 관계없이 임금 인상하는 ‘생계비 연동 임금인상’ 중단에 동의하고, 향후 6년간 파업하지 않기로 했다.
사측은 향후 미국시장 회복과 경영 개선으로 생산량이 늘면 미국에 물량을 우선배정하고 해고자를 우선 고용하겠다고 약속했다. 또 경영손실에 대한 책임분담 차원에서 경영진을 교체하고 기존 주주의 주식을 전액감자했다.
GM은 노사양보에 기초한 고강도 구조조정을 통해 2010년 흑자로 전환했다. 이 과정에서 사측은 2011년까지 미국에 46억달러를 투자하고 해고직원 중 1만1000명을 재고용하며 약속을 이행했다. 2011년 단체협약 협상 때도 노조는 고임금 직원의 임금을 동결해 인건비 경쟁력을 유지하고 사측은 미국공장 투자와 고용창출을 약속하며 협력관계를 이어갔다. GM은 2013~2015년 최고실적을 냈다.
◇ 佛 르노 … 노사 협력으로 일자리 창출 = 르노는 노사 협력으로 일자리를 창출하는 결과를 냈다. 르노는 2012년 유럽매출액이 전년 대비 11.0% 줄었고, 영업이익은 10분의 1로 급감했다.
노사는 9개월간 협의해 경쟁력 강화 합의안을 도출했다. 노조는 고용 7500명 순축소(프랑스 인력의 17%), 3년간 임금 동결, 근로시간 연장 및 근무지 변경 유연성 향상 등을 양보했다.
사측은 닛산·다임러·피아트 등 제3자 생산물량을 끌어와 르노 프랑스 생산량을 2013년 53만대에서 2016년 71만대로 늘리고 국내공장을 전부 유지하기로 했다.
이후 르노의 프랑스 생산량이 2014년 31%, 2015년 24%씩 늘었다. 사측은 2015~2016년 정규직 3000명을 신규채용했다. 사측이 당초 약속한 760명의 4배 수준이다.
추광호 한국경제연구원 일자리전략실장은 “한국 대기업은 생산성 정체와 높은 인건비, 대립적 노사관계란 3중고를 겪고 있다”며 “미중 무역분쟁 위험, 한국 성장률 전망 하향조정 등 대내외 여건이 악화되는데 노사가 서로 협력해 선제적으로 기업 생산성을 높이고 비용구조를 개선해야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