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훈 시인, BCT 감사
해외에서도 한글 열풍이 대단하다. 중국에서 지난 10년간 한국어학과를 신설한 대학이 60개를 넘었으며, 69개국의 750개 대학이 한국어과나 한국어 강좌를 개설하고 있다고 한다. 1997년부터 미국의 대학수학능력시험인 SATⅡ에 한국어가 포함되었고, 약 500개 고등학교에서 제2외국어로 한국어를 가르치고 있다. 교포 어린이나 현지인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치는 한글학교도 전 세계에 2000곳 이상이라고 한다. 모두 경제발전과 한류문화 덕분이다.
우리나라를 방문하는 외국인 관광객이 2016년 1700만 명을 넘었다. 외국인들의 한국에 대한 관심, 한글에 대한 열정은 가히 폭발적이다. 한국에서 일하기 위해 한글을 배우고, 한국에서 공부하기 위해 한글을 익히고 있다. 한국 영화를 보고 한국 드라마를 시청하기 위해, K-팝을 듣고 노래하기 위해 한글을 배운다. 이들이 한류스타를 만나기 위해 한국을 방문한다. 작년 우리의 해외 관광객은 2650만 명, 우리나라를 방문하는 관광객이 이를 넘길 때가 머지않아 올 것이다. 여기에 K-푸드, K-패션까지 가세하여 한류는 무한 진화하고 있다.
그런데 한글을 배우는 외국인의 이구동성이 우리 한글이 너무 어렵다는 점이다. 기실 외국어 배우기가 왜 어렵지 않겠는가. 우리가 10여 년간 영어를 배우지만 제대로 말하지 못하는 것만 보아도 외국어 학습의 어려움을 짐작할 만하다. 외국인들이 토로하는 한글 배우기의 어려운 점은 첫째가 어순(語順)에 있다. 영어와 중국어는 어순이 주어, 동사, 목적어로 같다. 중국인이 영어를 쉽게 익히는 이유이다. 한글의 어순은 주어, 목적어, 동사로 되어 있다. 우리말은 끝까지 들어봐야 한다는 말은 여기, 동사의 위치에 그 이유가 있다. 어순은 어쩔 수 없다.
가장 어려운 것은 높임말이다. 우리말의 높임말은 특별하다. 젊은 외국인이 어른에게 “밥 먹으세요”라고 하면 우리는 웃는다. 어색한 것이다. 한글의 어법과 문법에 맞지 않는 것이다. 우리말의 동사와 형용사에 소위 보조어간이라는 것이 있다. 높임말의 경우 ‘-(으)시-’가 그것이다. 예를 들어 ‘하다’는 ‘하시다’, ‘먹다’는 ‘먹으시다’, ‘있다’는 ‘있으시다’ 등이다. 한글맞춤법은 이러한 보조어간의 활용을 기본 규칙으로 하고 있다.
그런데 우리 높임말은 일부에서 단어가 변한다. 다른 단어를 쓴다. ‘밥 먹다’라는 말은 ‘진지 잡수시다’로 바뀐다. ‘잠자다’는 ‘주무시다’, ‘주다’는 ‘드리다’, ‘있다’는 ‘계시다’로, 단어 자체가 변해 버린다. 이 때문에 우리말을 배우기 어렵다고 외국인들은 한목소리를 낸다.
한글의 우수성은 과학성에 있다. 과학성이란 규칙성이다. 낮춤말의 경우는 규칙성이 있는데 높임말의 경우 일부 표현에서 규칙성이 깨진다. 문법과 어법에서 규칙성이 온전히 적용되는 언어는 없을 것이다. 영어의 그 수많은 예외 때문에 얼마나 고생했는가. 달리 표현방법이 없을 때는 규칙을 벗어날 수밖에 없다. 그런데 규칙에 맞는 표현법이 있다면?
높임말의 경우 보조어간으로 존경의 의미를 담을 수 있다면 어떨까? 굳이 ‘주무시고 계시다’, ‘진지 잡수시다’로 하지 말고 ‘자고 있으시다’, ‘밥 먹으시다’로 했으면 한다. 요즘 젊은 세대는 이런 높임말을 거의 쓰지 않는다. ‘잡수세요’는 껄끄럽고 ‘먹으세요’는 경칭이 아니라고 생각해 ‘식사하세요’를 많이 쓴다. 의미로 보면 ‘식사하세요’는 ‘먹으세요’보다 더 낮춤말이 아닌가.
세종대왕은 많은 백성이 쉽게 익히고 편하게 쓸 수 있도록 규칙성 있는 한글을 만들었다. 지구촌 시대, 외국인도 한글을 배우고 사용하면 세종대왕이 말한 ‘백셩’에 속하지 않을까. 우리말의 장점인 높임말, 굳이 단어를 바꾸지 않아도 보조어간을 사용하면 충분하지 않겠는가.
어제 한글날에, 한글의 세계화에 대한 단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