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장님, 이거 화분 5개 주문할게요. 미세먼지 거르는 거 확실하죠?"
고3 자녀를 둔 주부 김모(45) 씨는 공기정화에 좋다는 고무나무, 스투키, 아레카야자, 수염틸란드시아, 해피트리 화분을 한꺼번에 구매했다. 김 씨는 "요새 미세먼지 때문에 딸이 계속 콜록콜록 거리는 게 너무 신경이 쓰였다"면서 "책상이랑 침대, 거실에 두려고 집이 경기도인데 마음 먹고 양재 꽃시장까지 왔다"고 말했다.
원래 가장 큰 벵갈고무나무 하나만 구매하려고 했던 김 씨는 화훼시장 상점 사장의 설명을 듣고 마음을 바꿨다. 화훼시장 내 지혜농원 사장 윤모(37) 씨는 "크기가 크다고 무조건 좋은 것은 아니다"며 "크기가 10배 크다고 효과가 10배인 것이 아니라, 작은 화분을 여러 곳에 한 개씩 두는 것이 공기 정화에 더 효율적"이라고 설명했다.
7일 오후 양재꽃시장에는 공기정화식물을 구매하려는 사람들이 곳곳에 보였다. 대부분의 방문객은 인터넷에서 조사해 온 식물 리스트를 체크하면서 상점들을 둘러봤다. 평소 기관지가 약한 친구의 집들이 선물을 찾고 있다는 신모(31) 씨는 무엇을 구매해야 할지 몰라 상점 사장에게 추천을 부탁했다. 이에 햇살농원 사장 한모(65) 씨는 손님의 요청에 망설임 없이 식물의 효능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자, 옷에 유행이 있듯이 나무도 유행이 있어. 최근 트렌드는 아레카야자 같은 야자 종류야. 책상 위에 간단하게 둘 수 있는 미니 사이즈 스투키도 인기가 많아. 기관지가 약한 친구에게는 여인초나 고무나무가 좋아. 이렇게 잎이 넒은 식물들이 주로 공기정화에 탁월하거든. 잎이 얇은 야자 종류는 가습 효과는 있지만, 공기청정 효과는 약해. 내가 손님들에게 설명해 주려고 연구결과 이런 것 열심히 찾아본다고."
연일 초미세먼지 주의보가 내리면서 공기정화식물이 불티나게 팔리고 있다. 인터넷 쇼핑몰 11번가 관계자는 공기 정화 및 유해물질 제거에 탁월한 산세베리아, 스투키, 금전수 등의 매출이 급증하고 있다고 밝혔다. 미세먼지 농도가 '나쁨'을 보였던 이번 달 1일부터 6일까지 공기정화식물의 판매량은 전월 동기보다 33% 증가했다.
봄 황사와 미세먼지가 심했던 올해 초에도 공기정화식물에 대한 관심은 매우 높았다. 이마트에 따르면 3월 말 진행한 원예대전에서 공기정화식물의 판매량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5% 증가했다. 특히 공기정화에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진 고무나무, 홍콩야자, 아이비 등이 인기를 끌었다. 같은 기간 부산, 경남지역의 경우 2주간 매출이 전년 동기보다 23.8% 늘어났다.
인터넷 커뮤니티에서도 집안 공간별 공기정화식물을 정리한 게시글이 높은 조회수를 기록하고 있다. 이 게시글은 농촌진흥청 국립원예특작과학원이 만든 자료로 거실에는 아레카야자, 현관에는 벤자민고무나무, 화장실에는 스파티필룸, 주방에는 산호수, 침실에는 선인장, 베란다에는 시클라멘, 공부방에는 로즈마리가 어울린다고 추천하고 있다.
앞서 2016년 농촌진흥청 연구팀은 실내에 산호수와 벵갈고무나무를 놓을 경우 초미세먼지가 크게 줄어든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공기정화에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진 산호수를 들여놓은 방에 미세먼지를 투입하고 4시간이 지난 뒤 측정해보니, 초미세먼지 농도가 70%가량 줄어들었다는 것. 미세먼지는 산호수나 벵갈고무나무 잎에 윤택이 나게 하는 왁스 층에 달라붙거나, 잎 뒷면 기공 속으로 흡수돼 사라진다는 설명이다.
네이버 데이터랩 검색어트렌드를 살펴보면 미세먼지가 심한 날 앞뒤로 공기정화식물 검색 빈도가 높아지는 것을 볼 수 있다. 미세먼지 '나쁨' 농도를 보였던 5일 공기정화식물 검색 빈도는 전날 대비 53.8% 증가했고, 아레카야자 검색 빈도는 전날 대비 112.7% 늘었다.
지혜농원 사장 윤 씨와 햇살농원 사장 한 씨 모두 미세먼지 농도가 나쁜 기간에는 공기정화식물 판매가 늘어난다고 답했다. 윤 씨는 "미세먼지가 없는 게 당연히 사람들한테는 좋은 일이긴 하지만 미세먼지 농도가 높아야 우리 매출이 늘어나니 참, 뭐라고 말하기가 애매하네"라며 너털웃음을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