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지운 뉴스랩부장
18일 ‘고용형태별 근로실태조사’ 결과를 발표하면서 한국경제연구원이 가장 힘주어 말한 내용이다. 지난해 중소기업 정규직 연봉이 2.9% 상승한 반면, 대기업 정규직 연봉은 0.9% 감소하면서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임금 격차가 완화됐다는 것이다.
하지만 더 눈이 머문 대목은 정규직 평균연봉이 대기업은 6460만 원, 중소기업은 3595만 원으로, 2865만 원이나 차이 났다는 부분이다. 이는 중소기업에 다닌다면 대기업의 56% 수준밖에 돈을 벌 수 없다는 것을 뜻한다. 격차가 줄고 있을지 몰라도 당장 숫자로 나타나는 격차는 적지 않다.
지난해 신고된 근로소득 상위 1%만 놓고 보면 격차의 폭은 더욱 커진다. 지난해 소득 천분위 자료에 따르면, 근로소득 상위 0.1%에 해당하는 1만7740명은 1인당 평균 6억6000만 원의 근로소득을 국세청에 신고했다. 매달 5500만 원씩 벌어들인 셈이다. 이는 하위 10%의 1인당 평균 근로소득 69만 원보다 1000배 가까이 많은 것으로 심각한 소득 양극화의 단면을 드러낸다. 2만 명이 채 되지 않는 상위 0.1%가 하위 25%에 해당하는 443만5025명의 총근로소득(11조7257억 원)과 거의 맞먹은 수치다.
근로소득만 본다면 차라리 낫다. 어쨌든 근로소득은 개인의 능력을 통해 돈을 버는 것 아닌가. ‘돈이 돈을 버는’ 이자·배당소득의 격차는 근로소득보다 훨씬 더 심하다. 작년 상위 0.1%에 해당하는 5만2083명의 이자소득 총액은 2조5078억 원으로 전체의 17.79%를 차지했다. 주식 보유 등 기업 투자에 따라 받는 돈인 배당소득의 경우, 상위 0.1%인 8915명의 총액은 7조2896억 원으로 전체의 51.75%를 각각 차지했다. 국내 모든 배당소득의 절반 이상을 싹쓸이할 정도로 상위 0.1%에 집중된 이자·배당소득은 극심한 금융자산의 불평등을 보여주는 사례다.
이는 부자와 가난한 사람의 경제 격차가 세대를 거쳐도 변하지 않고 신분제도처럼 고착화하고 있다는 것을 방증한다. 과거 신분제도로 이뤄진 중세사회는 산업혁명을 통해 폭넓은 계층 이동이 가능했지만, 100여 년이 지나면서 다시 계층 고착이 일어나고 있는 셈이다.
격차에 따른 상실감은 사회에 이미 깊숙이 스며들고 있으며, 특히 사회 초년생인 20대가 느끼는 체감의 골은 40~50대가 느끼는 것보다 더욱더 가파르다. 온라인상에서 최근 극에 달하고 있는 세대 간 갈등과 성별 간 갈등 역시 공정하지 않다고 생각되는 경쟁이 주는 불만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하지만 정책은 반대로 가고 있다. 이명박·박근혜 정부 시절에는 이른바 ‘부자 감세’로 대기업 법인세율과 초고소득자 소득세율을 낮췄다. 이후 새로운 정부가 들어섰지만, 올해 7월에 발표된 세법개정안 역시 감세 기조를 유지했다. 2023년 이후까지 5년간의 세수 감소치를 모두 합치면 12조 6000억 원에 달한다. 시장과 기업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기 위함이라는 설명이 뒤따랐지만, 부자 감세의 주인공으로 불렸던 법인세, 종부세 개편 강도는 세간의 기대와 거리가 있는 게 사실이다. 특히 종부세의 경우 일반 국민들이 가진 주택분은 권고안보다 세율을 더 올린 반면, 주로 기업이 보유한 별도합산토지는 건드리지도 않았다. “금융소득 종합과세 기준금액을 현행 2000만 원에서 1000만 원으로 인하하자”는 재정특위의 권고도 기재부 반대에 밀려 세법개정안 추진 과정에서 검토조차 되지 않았다.
3% 성장, 사상 최대 수출이라는 뉴스 속에서도 경제가 나아지는 것을 피부로 체감하기 어려운 이유는 경제적 격차 우위가 만들어 낸 ‘부의 독식’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런 ‘경제적 격차’가 ‘기회의 차별’로 이어진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다.
함께 성장하는 사회는 허상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공정한 기회와 경쟁은 현실이 되어야만 한다. 불만과 상실감은 오늘 버는 돈이 많고 적음에 따라 생기는 게 아니라, 오늘의 노력을 내일 답해 주지 못하는 사회에서 생겨난다. ‘경기가 어려우니 모두 열심히 노력하자’라는 구호는 이제 그만할 때가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