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풀이엔 삼겹살과 맥주다. 부끄러운 실수 뒤엔 김치찌개에 소주다. 생각 없이 즐기고 싶을 땐 수영장과 바비큐다. 20대 평범한 대학생들의 공식이 방탄소년단 멤버들에게 그대로 적용된다. 영화 '번 더 스테이지: 더 무비(Burn the Stage: the Movie)'는 빌보드 스타 방탄소년단이 아닌, 일상 속 사소함 속에서 일희일비하는 풋풋한 청년들의 모습을 조명한다.
방탄소년단의 다큐멘터리 영화 '번 더 스테이지'가 16~18일(현지시간) 기준 미국 박스오피스 10위에 올랐다. 한국 영화가 북미 박스오피스 10위에 오른 것은 사상 처음이다. '신비한 동물들과 그린델왈드의 범죄'와 '보헤미안 랩소디' 같은 영화가 수천 개의 스크린에서 상영되고 있는 것과 달리 몇백 개 상영관에서만 제한적으로 상영되는 것을 감안하면, 괄목할만한 성적이다.
국내 개봉 첫날, 아이돌 다큐멘터리 역대 흥행 신기록인 7만7263명의 관람객을 모은 '번 더 스테이지'는 개봉 후 일주일이 지났지만, 그 열풍은 계속되고 있다.
21일 오후 2시, 여의도 CGV 티켓판매기 앞에는 여성 관람객이 줄지어 자기 순서를 기다리고 있었다. 스마트폰 티켓만으로 입장할 수 있지만, 이들이 티켓 판매기에서 뽑는 것은 '포토티켓'이다. CGV 앱을 통해 자신이 원하는 사진을 키오스크 기계로 전송하면, 영화 표 뒤에 해당 사진이 삽입된 포토티켓을 출력할 수 있다. 포토티켓을 기다리는 관람객 대부분은 '번 더 스테이지' 티켓 뒤에 방탄소년단 멤버들 사진을 출력하려는 팬들.
이번 영화 관람이 두 번째라는 이화여대 학생 김모(20) 씨는 "포토티켓으로 멤버들 사진을 출력할 수 있어서, 멤버 '진' 사진을 출력했다"면서 "멤버 7명 사진을 모두 포토티켓으로 모으는 팬들도 있는데 일종의 컬렉션 같은 개념"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대학교 친구들 4명과 함께 보러왔다"며 "여대생 사이에서 방탄소년단 인기가 굉장하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포토티켓을 뽑으려는 관람객 대부분은 '번 더 스테이지' 관람객이었다. 이들은 같이 온 일행끼리 키오스크로 전송할 사진을 보여주거나 골라주면서 영화 시작을 기다렸다. 엄마와 같이 영화관을 방문한 고등학생 유모(17) 양은 "내가 먼저 방탄소년단을 좋아했는데 엄마한테 계속 동영상도 보여주고, 차에서 방탄소년단 노래를 틀어줬더니 엄마가 더 팬이 됐다"라고 웃었다.
영화관은 평일 오후였음에도 맨 앞 좌석까지 매진이었다. '번 더 스테이지'는 여의도 CGV 기준 하루에 한 번 혹은 두 번만 상영할 정도로 상영관 수가 많지 않다. 게다가 CGV 독점 상영이다 보니 모든 상영 회차에 관람 수요가 높다. 이날 청주에서 올라온 대학생 신모(24) 씨는 "청주 서문 CGV에서 영화를 관람했는데, 서울에 올라온 김에 한 번 더 보려고 한다"면서 "지방이나 작은 도시에서는 상영관이 많지 않아 팬클럽이 상영관을 대관해 단체로 관람하는 경우도 많다"라고 전했다.
'번 더 스테이지'는 방탄소년단의 지난해 월드투어인 '2017 방탄소년단 라이브 트릴로지 에피소드3 윙스 투어' 모습과 무대 뒷이야기를 담은 영화다. 방탄소년단 소속사 빅히트엔터테인먼트와 유튜브 공동 제작으로, 유튜브가 올해 상반기 유료채널 '유튜브 레드'에 '번 더 스테이지' 제목으로 공개한 오리지널 시리즈를 편집하고, 미공개 영상을 더해 극장판으로 만들었다.
제한적인 러닝타임 때문일까. 감독은 방탄소년단의 '스타'적인 모습을 과감하게 덜어냈다. 무대 퍼포먼스와 칼군무 영상 대신 미국 생방송 무대를 앞두고 두려움에 떠는 모습, 부담감에 위축된 모습을 날것 그대로 보여준다. 무대 뒤 대기실에서는 부상으로 인한 앓는 소리가 끊이질 않고, 무대 의상을 벗은 멤버들의 몸에는 붕대가 겹겹이 감겨있다.
화려한 호텔 방 바닥에 멤버들이 둘러 앉아 일회용 수저로 김치찌개 국물을 떠먹는 모습은 생경한 느낌마저 든다. 전날 무대의 실수를 되돌아보며 "질질 짤 뻔 했다"라고 울상 짓고, 치킨 닭 다리를 뜯으며 "너 아이큐 몇이냐"며 아이큐 대결을 펼치는 청춘들의 모습은 이토록 평범한 이들이 어떻게 월드스타가 됐을까 하는 의문마저 들게 한다.
감독은 영화 말미에 멤버들의 입을 통해 그 답을 전한다. "모르겠다."
멤버들은 "수많은 인터뷰를 통해 어떻게 방탄소년단이 월드스타가 됐느냐는 질문을 많이 받았고, 팬들과 음악을 사랑하는 우리의 열정 덕분이라고 대답했지만, 사실은 잘 모르겠다"라고 솔직한 심정을 밝힌다.
하지만 관객들은 영화를 통해 그 답을 찾는다. 음악에 대한 '의지'다. 멤버들은 월드투어 도중에도 숙소에서 끊임없이 곡 작업을 한다. 늦은 밤에도 작곡은 계속되고, 랩 연습은 이어진다. 날이 밝으면 공연을 앞둔 국가의 언어를 공부한다. 단순히 음악에 대한 '열정'으로 그들의 성공 요인을 결론짓기에는 열정을 현실로 만들어내려는 그들의 끈기와 노력이 너무 큼을, 팬들은 영화를 통해 느낀다.
국내에서 아이돌 가수를 주인공으로 한 다큐멘터리 영화는 젝스키스의 '세븐틴(1998)'과 H.O.T의 '평화의 시대(2000)'가 그 시초다. 다만, 해외 록스타들과 달리 국내 가수들의 해외 투어 공연 기회가 제한적이었던 시기라 콘텐츠 부족으로 제작에 한계가 많았다.
이후 2000년대 후반부터 한국 아이돌 가수들이 아시아권을 넘어 유럽과 남미·북미까지 진출하면서, 가수들의 해외 투어를 영화화하려는 시도가 많아졌다. '번 더 스테이지' 이전에 개봉했던 빅뱅의 '빅뱅 메이드' 역시 월드투어 '메이드'의 340일 간 여정을 밀착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담아내 팬들의 호응을 받았다.
업계에서는 팬들이 스타의 음반을 구매하고 콘서트를 관람한 뒤, 영화를 통해 '바이오그래피'를 소장하려는 수요가 계속해서 높아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김성수 대중문화 평론가는 "음악영화에 관한 관심이 계속해서 높아지고 있는데, 이는 음악을 소비하는 형태가 점점 다양화되고 있다는 것"이라며 "내가 좋아하는 스타를 인간적으로 더 깊게 알고 싶은 팬들의 욕구가 '번 더 스테이지' 같은 다큐멘터리 영화 관람으로 이어지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영화의 흥행 요인에 대해 "방탄소년단 팬 ARMY는 자신을 스스로 방탄을 지키는 군대로 명명하기 때문에 멤버들의 나약한 인간적인 모습에 더 호응한다"면서 "요즘 팬들은 스타를 신격화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은 나와 비슷한 결핍된 존재이고, 팬들과 함께함으로써 완성이 되는 존재로 본다"라고 덧붙였다.
극장가를 휩쓸고 있는 '보헤미안 랩소디'와 '번 더 스테이지'. 두 영화 모두 스타의 개인적인 고뇌와 갈등을 포장하거나 미화하지 않고, 그대로 담아낸다. 이들이 보여주는 개개인의 인간적인 부족함을 팬들은 영화를 관람함으로써 함께 채워가는 것이다. 앞으로의 목표에 대해서 "더 이상의 목표가 있다면 욕심"이라면서 7명이 함께 활동을 이어가는 것만으로도 행복할 것 같다는 방탄소년단.
영화 이름은 무대를 태운다는 '번 더 스테이지(Burn the Stage)'다. 하지만, 팬들은 영화 속 그들의 모습에서 무대를 위해 태어난 듯한 '본 투 더 스테이지(Born to the Stage)'의 모습을 발견하지 않았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