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공정거래행위, 이른바 갑(甲)질을 규제하는 공정거래법은 분야별로 특별법을 두고 있다. 대규모유통업법은 백화점, 대형마트, 홈쇼핑, 편의점 등에 적용되는 특별법이다. 대규모유통업자가 납품업자에게 경영정보를 얻으려면 반드시 서면으로 요청해야 하고, 그 서면에는 요구목적을 밝히고 비밀유지 약정을 해주어야 한다. 그러한 절차를 지키지 않고 예컨대 구두로 경영정보를 요구하면 위법한 갑(甲)질이 된다.
그런데 위법 여부가 다소 애매한 사례가 최근에 있었다. A백화점은 신규점포를 짓기 전 시장조사 차원에서 납품업자 후보들로부터 '입점의향서'를 받았다. '입점의향서'에는 납품업자가 입점한 다른 아웃렛별로 매장면적, 입점일, 계약형태, 월별 매출액 및 마진 등을 적는 곳이 있었다. 하단에는 'A백화점 신규점포 내부상품군 구성을 위한 내부 기초자료로만 활용되고, 제3자에게 그 정보를 유출하지 않을 것이며 유출 시 납품업자의 손해를 배상한다. 위 정보는 입점 희망자의 자율적 의사에 따라 기재한다'는 고지 문구가 있었다. 이 때문에 일부 입점 희망자들은 경영정보 기재란을 공란으로 두거나 '공유 불가'라고 적었다. 상당수의 납품업자는 입점 의향서에 경영정보를 적어서 내기는 했지만, 그 작성 당시 기억에 의존해서 대략 적느라 정보의 정확성이 떨어지는 경우도 있었다. 입점의향서에 쓴 경영정보 때문에 불이익을 당했다고 주장하는 납품업자는 없었다. 공정위는 이것이 대규모유통업법에서 금지하는 경영정보 요구행위라고 보고 과징금을 부과했다.
서울고등법원은 A백화점의 행위가 위법한 갑(甲)질이 아니라고 보았다. 실제 피해를 본 납품업자가 없었으니, 공정한 시장질서를 저해하는 정도에 이르지 않았다는 것이 주된 이유였다.
그러나 대법원은 다르게 판단했다. 법은 대규모유통업자의 경영정보 제공요구행위 자체를 금지하고 있으므로, 실제 납품업자의 피해가 발생하지 않더라도 위법하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대법원은 입점희망자들이 자발적으로 경영정보를 넘겨줄 이유가 없는 점, 향후 입점에 지장을 초래할까 봐 입점의향서에 경영정보를 기재했을 여지가 있는 점 등의 이유를 들었다.
이번 A백화점 대법원 판결에 대해서는 '바이어들을 모두 범법자로 만드는 과도한 규제다'라고 생각하는 이도 분명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간 대규모유통업자들은 납품업자들에게 영업비밀일 수도 있는 경영정보를 거리낌 없이 물어보는 경향이 있었고, 이것이 사회적 문제가 되자 법으로 경영정보 요구행위를 금지한 것이다. 대법원은 규제를 예외 없이 집행해야만 과거의 관행이 바뀔 수 있다고 여겼던 듯하다. 사업자로서는 변화하는 규제 환경에 적응하는 것도 하나의 경쟁력이다. 납품업자에 대한 경영정보 제공요청 공문 양식부터 정비하는 것이 첫 실천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