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훈 시인·BCT 감사
연환계는 상대로 하여금 자신의 역량을 스스로 옭아매도록 만드는 고난도의 계책이다. 연환(連環)이란 ‘고리를 잇는다’는 뜻, 2개 이상의 대상을 하나의 고리를 이용하여 연결시키는 것이다.
적벽대전에서의 연환계는 유명하다. 조조는 유비의 첩자 방통의 계략에 말려들어 전선들을 쇠사슬로 엮는다. 수전(水戰)에 익숙지 못한 병사들 때문이었다. 하지만 주유가 화공(火攻)을 펼치자 조조군은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만다. 그 많은 수군과 병선이 연환의 고리가 된 것이다. 잘 묶여 있던 배들은 병선이 아니라 불쏘시개에 불과한 것이었다. 거기에 황개의 고육계와 사항계가 단단히 한몫을 했다.
서서(徐庶)는 유랑객 유비에게 보물과 같은 존재였다. 형주를 공격하다 실패한 조조는 유비에게 책사 서서가 있다는 것을 알고는 서서를 회유한다. 서서의 노모를 찾아 허도로 데려온 뒤 필체를 모방하여 거짓 편지로 서서를 부른 것이다. 효성이 지극한 서서는 노모의 말을 좇아 유비를 떠나 노모가 있는 조조에게로 간다. 서서의 효심과 인의를 중시하는 유비의 약점을 고리로 한 연환계에 유비가 당한 것이다.
절세미녀 초선(貂蟬)도 연환계에 동원된다. 초선은 사도 왕윤(王允)의 집 가기(歌妓)였다. 사도란 태자의 스승이자 최고위 대신인 삼공(三公)의 하나. 왕윤은 아리따운 초선을 동탁에게 바침과 동시에 여포에게 시집보낼 것을 약속한다. 동탁과 여포 사이를 이간하려는 왕윤의 계략에 초선은 자신을 기꺼이 희생한다. ‘폐월(閉月) 초선’, 달마저 수줍어하여 구름 뒤에 숨을 정도인 초선의 미모에 혼을 빼앗긴 여포가 결국 동탁을 제거한다. 초선이 연환계의 고리가 된 것이다.
북한과 미국의 비핵화 협상은 연환계를 떠올리게 한다.
북한이 먼저 계략을 걸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작년 말 핵무력 완성을 천명했다. 올핸 집권 초기 내세웠던 ‘핵·경제 병진노선’에서 ‘경제건설 총력집중’ 노선으로 전환했다. 노선 전환의 실마리는 평창 동계올림픽이 제공했다. 세 차례의 남북정상회담과 미국 트럼프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는 비핵화를 약속했다. 후속조치로는 생색만 냈다. 풍계리 핵실험장을 파괴한 것이다. 그러고는 현 단계에 맞는 미국의 제재 해제를 요구하고 있다. 핵 전력의 일부만을 매개로 미국의 제재 해제를 노린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미국의 되치기 연환계에 북한이 난관에 봉착한 모양새다.
미국은 제재와 대화 양면전략으로 완전한 비핵화를 요구하고 있다. 북미회담에 응해 주었지만 조금도 양보의 기색이 없다. 북한의 몇 가지 선심성 조치에도 모르쇠 태도다. 김정은 위원장의 초조와 곤경을 즐기는 모양새다. 세계 각국도 제재 유지를 천명하고 있다.
현재 북한의 대화국면은 김정은 위원장이 주도하고 있다. 얻는 것 없이 미국의 요구만 수용하면 지도력에 금이 간다. 그렇다고 이전으로 돌아갈 수도 없다. 지금까지 지불한 기회비용이 너무 크다. 게다가 올해 식량 작황마저 좋지 않다. 현재 상황이 미국에 유리한 연환계의 고리가 되어버린 것이다.
미국도 이 상황을 즐길 수만은 없다. 양보 없는 제재가 김정은 위원장의 경제 재건 결단을 물거품으로 만들어 버릴 수 있다. 김정은 위원장의 권력입지가 불안해지겠지만 미국의 정책도 실패가 된다. 시뮬레이션에 의하면 무력 사용도 성공하지 못한다.
이 두 연환계의 고리는 ‘신뢰’에 있다. 신뢰를 강화하면 계책은 성공한다. 이 신뢰의 고리를 누가, 어떻게 잡아당길 것인가. 문 대통령의 역할이 필요하다. 왜? 우리는 양쪽 모두에 연환(連環)되어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