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기자가 해봤다] 빨간 패딩 입고 명동 한복판서 '딸랑~' 자선냄비 앞 구세군의 하루

입력 2018-12-14 14:06수정 2018-12-14 17: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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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말의 상징, 자선냄비를 운영하는 한국구세군이 90주년을 맞았다. 사진 속 명동 우리은행 앞에서 90년째 해마다 자선냄비의 종소리가 울려 퍼지고 있다. (김정웅 기자 cogito@)

연말의 상징은 뭘까? 크리스마스? 송년회 술자리?

지난 90년간 거리에서 종을 치며 연말의 상징이 된 단체가 있다. 거리에서 ‘딸랑’하는 소리에 생각나는 사람들. 자선냄비를 운영하는 한국구세군이다.

구세군 자선냄비의 거리모금은 매년 12월 1일부터 31일까지 한 달간 진행된다. 거리모금은 한국구세군에 전화로 신청하면 누구나 거주지 가까운 곳에서 참여할 수 있다. 자선냄비 거리모금은 만성적으로 일손이 부족하기 때문에 한국구세군은 일반 시민의 참여를 환영하고 있다.

그리고 12일. 기자가 서울 명동 우리은행 앞 자선냄비 앞에 섰다.

▲기자도 직접 자원봉사를 신청해 참여해봤다. 종이 무겁긴한데, 그보다는 종소리가 제대로 전달되고 있는지가 가장 신경쓰였다. (김정웅 기자 cogito@)

◇생각보다 무거웠던 종 "맑은소리 나야 하는데…"

명동 우리은행 앞 자선냄비는 한국 구세군이 처음으로 거리모금을 시작한 곳이다. 1928년부터 90년째 이어져 오는 자선냄비의 상징적 장소이기도 하다. 기자는 구세군사관대학원대학교의 사관학생과 함께 했다.

종은 생각보다 무거웠고, 생각보다 치기 어려웠다. 조금 시간이 지나자 들고 있는 팔이 아프고, 휘두르는 손목도 제법 쑤신다.

하지만 진짜 신경 쓰이는 것은 그게 아니었다. 지금 내가 치고 있는 종소리가 다른 봉사자들의 종소리만큼 깨끗하게 들릴지 걱정된다. 함께한 봉사자는 “잘 치고 있다”며 격려해 줬지만, ‘종을 못 쳐서 모금이 잘 안 되면 어쩌지?’하는 불안한 생각을 하며 맑은 종소리를 내기 위해 신중히 흔들고 흔들었다.

시간을 재본 것은 아니지만, 대략 10~15분에 한 명꼴로 기부자가 나타났다. “저기다 넣고 인사드려” 엄마에게 돈을 받아 넣는 꼬마, 연신 “아이고 참, 얼마 안 되서…”라며 돈을 넣던 30대 직장인, 이웃 나라에 관광을 와서까지 기부를 하던 일본인 모녀 등.

기부자들의 한 가지 공통적인 특징은 수줍음이 많은 사람이라는 점. 어찌 보면 당연하다. 이름을 알릴 수 없는 건 물론이고, 작은 세제 혜택조차 없는 ‘현찰 박치기’ 기부를 하는 사람들 아닌가. 목동에서 왔다는 73세 A 씨는 인터뷰를 청하자 “한 명씩 조금이라도 모으면 크게 되잖아요. 소중하게 쓰이길 바라요”라며 손을 내젓고 황급히 자리를 떴다.

▲구세군 자선냄비의 명동팀장을 맡고 있는 변종혁 씨. 구세군 사관학생들에게 자선냄비 봉사활동이란 당연한 것이자 자긍심을 느낄 수 있는 일이라고 말했다. (김정웅 기자 cogito@)

◇“구세군에겐 12월이 없죠”

구세군 자선냄비의 자원봉사자들은 어떤 이들일까? 우선 한국구세군에 대해서 알아야 한다. 구세군은 개신교의 교파 중 하나다. 현재 우리가 거리에서 보는 자선냄비 자원봉사자들의 상당수는 구세군 교인 중 자발적으로 나와 봉사하는 이들이다.

함께 명동 우리은행 앞에서 봉사했던 명동팀장 변종혁(38) 씨의 휴식 시간을 함께 따라가 보았다. 그는 구세군사관대학원대학교의 사관학생이다. 이해가 쉽게 다른 개신교 종파나 가톨릭에 비유하자면 변 씨는 구세군 신학교의 신학생인 셈이다.

구세군(救世軍ㆍSALVATION ARMY). ‘세상을 구원하는 군대’라는 의미에 맞춰, 전 세계 구세군은 군대식의 조직 구성을 채택하고 있다. 특히 국내 전파 시기였던 대한제국 때, 군에서 쓰던 용어를 사용한다. 그래서 목사는 ‘사관’, 신학교는 ‘사관학교’, 예비 사역자는 ‘사관학생’이라는 이름으로 부른다.

사관학생들 뿐 아니라 대부분의 자선냄비 봉사에 참여하는 구세군 교인들은 하루 8시간 정도의 자선냄비 자원봉사를 하며, 1시간 단위로 교대한다. 기자가 따라간 변 씨의 휴식 시간은 점심시간이었다. 명동 롯데백화점이 기부 차원에서 자선냄비 봉사자들에게 구내식당의 식사를 무상 제공하고 있었다.

변 씨가 잠시 짐을 두러 맡긴 승합차에는 또 다른 사관학생들이 있었다. 이들은 차량 좌석을 살짝 뉘어 쪽잠을 자고 있었다.

“하루 1시간씩 4번의 휴식시간마다 매번 카페 같은 곳을 갈 수는 없으니까요. 차에 누워서 잠시 구두를 벗고 젖은 발을 말리는 정도면 최고로 편안하게 쉬는 편이죠.”

변 씨와 같은 구세군 사관학생들은 반드시 사관학교 생활 내에 자선냄비 거리모금을 거쳐야만 사역자인 ‘사관’이 될 수 있다. 사관학생들은 12월 한 달간 200여 시간을 자선냄비 봉사활동으로 보낸다. “사실 구세군 교인에겐 언제나 12월이 없다고 생각하고 임하고 있습니다. 사역자가 되고 싶은 사람들로서 당연한 일이기도 하고요.”

구세군 ‘사관’은 대체로 부부가 함께 사역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부부가 함께한 자선냄비에서 봉사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한다. 이유를 물으니 변 씨는 “그렇게 하다보면…꼭 남편 쪽 사관학생이 자기가 더 봉사하겠다고 나서는 경우가 많아서요”라고 설명하며 멋쩍게 웃었다.

▲서울광장 앞 자선냄비 봉사자들. 이들은 구세군 교인이 아니라 구세군의 일반 직원이다. 구세군의 모든 직원 및 교인들은 이처럼 연말마다 자원해 거리모금을 지원하러 나온다. (김정웅 기자 cogito@)

기자는 변 씨와 헤어져 구세군 중앙회관으로 향하던 길에 다른 봉사자들을 만났다. 이들은 구세군 교인은 아니고, 한국구세군에서 일하는 직원들이었다. 이들은 구세군 내에서 자선냄비사업을 운영하는 자선냄비본부 소속인 것도 아니었다.

한 직원은 “구세군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순수하게 자원한 이들이 자선냄비 거리모금 봉사에 참여하는데, 교인이든 아니든 자선냄비본부 소속이든 아니든 상관없이 대부분 참여하고 있다”면서 “우리 같은 봉사자 중에는 바쁜 12월 한 달간 나눔을 행하는 데, 많은 시간을 보내는 것은 자부심을 느끼는 사람들이 많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지금이야 이렇게 좋은 빨간색 롱패딩을 주지만, 처음 거리모금에 나서본 80년대에는 그런 것도 없어서 특별히 거리모금을 위해 코트를 사 입었는데, 어찌나 추웠는지 모른다”며 “옛날엔 자선냄비 봉사하는 게 부담스럽고 힘들어서 일을 그만두는 직원까지 있었다”라고 웃었다.

▲우리가 낸 기부금은 어떻게 운영될까? 이를 묻기 위해 임효민 한국구세군 홍보부장을 만났다. (김정웅 기자 cogito@)

◇“자선냄비 볼 때마다 주변의 어려운 이들 생각해줬으면”

우리가 넣은 구세군 자선냄비에 넣은 돈은 어떻게 운용될까? 구세군 중앙회관을 찾아 임효민 한국구세군 홍보부장을 만났다.

구세군 사관학생들에게 실시하는 자선냄비 거리모금에 관한 교육 내용 중에 “기부자가 실수로 신용카드를 자선냄비에 빠뜨려도 꺼내줄 수가 없다. 받아가려면 한국구세군으로 찾아오게끔 안내해야한다”는 내용이 있다고 한다. 봉사자들에게는 자선냄비의 열쇠를 지급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렇게 철저히 보안을 유지한 냄비는 그날그날의 기부금을 한 데 모아 은행에 보관한다. 기부금의 진짜 여정인 ‘배분’은 여기서부터 시작이다.

구세군 자선냄비본부에서는 국회 예산 심의와 유사하게 배분심의 본부의 예산집행 계획에 맞추어 기부금을 분배한다. △아동·청소년 △노인·장애인 △여성·다문화 △긴급구호·위기가정 △사회적 소수자 △지역사회 역량 강화 △북한 및 해외 등 7대 과제에 따라 각각의 예산이 배정돼 있다.

이밖에도 구세군이 운영하는 지방의 복지시설 등에서의 필요한 사업에 대한 예산 청구가 있다. 이는 구세군 9개 지방본부에서 1차 심의를 거친 뒤 중앙의 배분심의 본부에서 2차 심의를 거쳐 여기서 통과된 사업만이 예산을 할당받을 수 있다.

이처럼 복잡한 심의 과정을 거치는 데도 일각에서는 구세군 자선냄비 기부금의 행방에 대해 불신하는 이들이 간혹 있다.

임 부장은 “그런 의구심을 가지는 분들이 있다는 것은 알지만, 구세군 자선냄비 거리모금은 90년 역사상 단 한 차례의 유용사례도 없었다”며 “단 10원도 승인 없이 반출될 수 없는 구조기 때문에 유용에 대한 걱정은 넣어두셔도 좋다”라고 자부했다.

한국구세군은 자선냄비본부에 대해 일차적으로 자체적인 감사를 매년 진행한다. 2차적으로는 구세군이 시작된 영국의 세계구세군본부에서도 역시 매년 한국구세군에 대한 감사를 진행한다. 마지막으로는 국가 부처인 행정안전부로부터의 감사도 매년 진행된다. 구세군 자선냄비는 ‘기부금품의 모집 및 사용에 관한 법률’의 저촉을 받는 사업이기 때문이다. 임 부장이 가지는 자선냄비의 투명성에 대한 확신은 몸담은 조직에 대한 신뢰가 아니라, 이같이 철저한 3중의 감시망으로부터 나온 것이다.

“사실 유용에 대한 우려도 이해합니다만 엄밀히 따지면 자선냄비본부, 그리고 구세군은 12월 거리모금으로 오히려 막대한 비용지출을 발생하고 있다고 보셔도 됩니다. 전국 440곳 자선냄비에 5만7000여 명의 자원봉사자들. 물론 나눔은 돈으로 환산할 수는 없겠지만, 이들이 봉사에 소요하는 시간을 구태여 돈으로 환산해본다면 과연 얼마일까요?”

임 부장은 길에서 자선냄비를 보는 시민들에게 꼭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며 한 마디 덧붙였다.

“자선냄비의 목적 자체가 모금이라고 생각하시겠지만, 모금 자체가 그렇게 중요한 것은 아닙니다. 자선냄비를 보며 ‘아! 맞아 그 친구 어렵다더니…잘 지내나?’라던가, ‘그러고 보니 올해 내가 어려운 사람을 도운 일이 있었던가’라고 나눔에 대해 주변을 환기할 수 있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저희만 보면 나눔이 생각날 수 있도록 말이죠. 나눔의 대명사, 자선냄비 아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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