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랜드가 박성경 부회장의 퇴진을 결정했다. 경영 일선에 합류한 지 24년, 그룹 부회장에 오른지 12년 만이다.
이랜드는 3일 부회장 인사를 포함한 조직 및 인사 개편안을 발표했다. 이랜드 관계자는 “박 부회장은 부회장직에서 물러나 이랜드재단 이사장을 맡게 되고, 박성수 회장은 경영 전반에 손을 떼고 미래 먹거리 발굴에 전념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이랜드 창업주인 박성수 회장의 동생인 박 부회장은 1984년 이랜드에 입사한 후 여성복 사업부와 생산총괄사업부 대표를 거쳤다. 1994년에는 이랜드월드 대표이사와 디자인 총괄 진두지휘했고 2006년부터 이랜드그룹의 부회장에 올랐다.
그는 부회장으로서 중국 거대 그룹, 아시아·유럽·미국 등 주요 그룹 회장들과 유대 관계를 맺으며 글로벌 사업을 확장하는 등 그룹의 대외활동을 주로 맡아왔다.
트렌드세터로 불리는 박 부회장은 2013년 SPA(제조·유통 일괄화)브랜드로의 전환을 주문해 글로벌 SPA의 공세 속에서도 ‘스파오’, ‘미쏘’, ‘미쏘시크릿’ 등 패션 브랜드뿐 아니라 국내 최초로 신발 SPA 브랜드인 ‘슈펜’을 잇달아 론칭, 성공 반열에 올려놨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공격적인 경영만큼 부채도 커졌다. 2013년 말 이랜드의 부채비율은 399%에 달했다. 유동성 위기에 직면한 이랜드는 전문경영인의 책임경영을 강화하는 것으로 위기극복에 나섰다. 2013년 8월 박 부회장은 이랜드그룹의 외식 레저 계열사인 이랜드파크 대표이사에서 물러났고, 같은 해 11월에는 이랜드월드 대표이사직을 사임했다. 오너 일가가 일찌감치 계열사 대표이사에서 물러나면서 이랜드그룹은 오랜 기간 전문경영인 체제를 유지했지만, 박 회장의 영향력 탓에 전문경영인이 주도적인 결정을 하기 어렵다는 평가가 끊이지 않았다.
이랜드는 2017년 재무구조 개선 작업과 1조 원 자본 유치 작업을 동시에 마무리하는 목표를 세웠으나 투자자 중 일부가 투자금 회수에 나서면서 상환 압박에 시달렸다.
더욱이 이랜드 입장에서는 당장 차입금 해결을 위해 이랜드리테일의 상장이 시급한 상황이다. 이랜드는 올해 이랜드리테일의 재상장을 본격 추진할 방침이다. 상장 성공을 위한 승부수로 오너의 퇴진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한 셈이다.
경영 전반의 변화가 필요했던 이랜드는 박 부회장을 경영 일선에서 제외하고 박 회장도 경영에 관여하지 않기로 했다. 이랜드 관계자는 “이번 경영 체제 개편의 핵심은 계열사별 이사회 중심의 운영 체제를 강화하고 독립경영 체제를 확고히 하는 것”이라며 “앞으로 박성수 회장은 경영에 전혀 관여하지 않고, 미래 먹거리 발굴과 차세대 경영자 육성에 전념하게 될 것” 이라고 밝혔다.
이랜드는 이번 인사를 통해 주력 계열사 대표이사 직급을 부회장과 사장으로 격상해 경영상 전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했다. 또 주요 사업 부문별 대표이사를 30, 40대의 참신한 CEO로 대거 발탁해 공동 대표 체제를 만들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