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직의 부정과 비리를 외부에 알리는 공익제보자. 영어로는 '휘슬블로어(whistle-blower)'다. 영국 경찰관이 호루라기를 불어 시민의 위법행위와 동료의 비리를 경계하던 것에서 유래됐다. 즉, '공익'을 위해 용기 있게 '정의의 호루라기'를 부는 사람을 뜻한다.
신재민 전 사무관 폭로에 대한 논란은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그의 목적이 공익인지 '사익'인지, 폭로의 형태가 정의의 호루라기 인지 '후원금 모금을 위한 종소리'인지 의견이 분분하다.
전직 공무원으로서 청와대의 결정에 가지는 정당한 비판 의식이었는지, 공무원 학원 수강생을 모집하기 위한 노이즈 마케팅이었는지 정답은 알 수 없다. 다만, 그의 폭로가 한 국가의 모든 이슈를 덮어버린 것만큼은 확실하다.
폭로 내용의 진실 여부와 상관없이, 신 전 사무관의 폭로가 이토록 커다란 영향력을 가지는 것은 그만큼 우리 사회에서 내부고발자의 역할이 미미했음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생경하기까지 한 공무원의 제보에 정치권은 물론이거니와 청와대마저 우왕좌왕하는 모습을 보인 것도 사실.
청와대가 기재부의 적자 국채 발행에 압력을 넣었다는 그의 주장은 단순한 팩트체크의 문제를 넘어, 공익제보자를 어느 범위까지 인정하고 보호해야 하는지, 보다 근본적인 논의를 끌어내고 있다.
비(非) 정치부 기자 두 명이 오직 뉴스를 통해 보고 들은 신 전 사무관 폭로에 대한 생각을 일반적인 시민의 관점에서 나눴다. 그의 행위는 공익제보일까? 아니면 자신을 알리기 위한 마케팅일까?
◇퇴직 기재부 사무관의 폭로…공익과 사익의 갈림길
나경연 기자(이하 나): 일단 신재민은 2014년부터 공무원 일을 시작해서 기획재정부 사무관으로 일하다가, 2018년 7월 퇴직했어. 4개월이 지난 12월 30일, 자신이 왜 기재부를 그만뒀는지에 대한 글과 영상을 올려 큰 스포트라이트를 받았지.
곽진산 기자(이하 곽): 바로 그 지점에서 한국 사회의 문제가 드러나. 왜 스포트라이트를 받았을까? 사람들은 신기했던 거야. 이제까지 한국 사회에서 공무원은 공익제보와 거리가 멀었어. 다들 공직사회의 보신주의에 어떻게든 정년까지 살아남는 것이 중요했고. 그래서 부정부패를 봐도 의식적으로 눈을 감았다고나 할까.
나: 신기한 것은 사실이야. 이렇게 젊은 공무원이 행정고시에 합격한 지 몇 년 되지도 않아서 퇴직을 결정했고, 그 이유로 '관료사회'의 문제를 언급했으니까. 그리고 구체적 예로 정부의 적자 국채 발행 압력과 KT&G의 사장 교체 개입을 언급했지. 그런데 그 이후 행보는 모순덩어리야. 폭로 동영상에 자신이 강의하게 될 '메가스터디' 공무원 학원 배너를 달고, 자신의 후원 계좌를 자막으로 입히고.
곽: 그 부분은 나도 어이가 없긴 했어. 하지만 모든 발언은 공적인 성격과 사적인 성격을 동시에 내포한다고 생각해. 정치인들의 "국민을 위해서"라는 말이 사실은 그들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한 변명인 경우가 많고, 피해자 유족들의 "우리 애 억울함 좀 풀어주세요"라는 말이 사회 전체의 구조를 바꾸는 공익적 발언인 경우도 있어. 신 전 사무관 발언이나 행보도 분명 사적인 이익을 추구하는 내용이 있지만, 그 목적만큼은 공적 성격을 가질 수 있다고 봐.
나: 물론, 나도 꼬리가 몸통을 흔드는 본말전도 같은 현상은 일어나선 안 된다고 생각해. 후원금 모집이라는 요소 하나가 공익제보라는 본질적인 이익을 훼손해서는 안 되겠지. 그런데 사람들이 의심스러워 하는 사적인 부분들이 작은 꼬리 그 이상이야. 일반적으로 공익제보는 자신이 직장을 잃을 각오를 하고, 현직에 있을 때 하는 제보를 말하잖아? 그런데 신 전 사무관은 직장을 그만둔 지 몇 개월이 지나서야 폭로를 했고, 유튜브에서는 "먹고 살기 힘들어서 동영상을 시작했다"라고 자기 입으로 고백해.
곽: 맞아. 그런 부분들이 그 사람 폭로의 순수성을 훼손하고 있긴 하지. 하지만, 그의 발언에 비합리적인 관료사회를 고발한다는 공적인 의도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적인 의도에만 집중한다면 더는 어떠한 공익제보자가 나타나지 않을 거야. 그 사람이 말한 워딩보다, 그 워딩에 깔려있는 의도에 주목해야 한다고 생각해. 그 공적인 의도만 봤을 때 그는 공익제보자가 되는 거지.
나: 하지만 사적인 의도가 공적인 의도보다 더 커 보이는 것은 사실이야. 나는 지금까지 뉴스에 나온 것만으로 판단했을 때는 그가 학원 강사로서 수강생을 모집하기 위한 목적에 가까웠다고 생각이 들거든. 그렇지만 공적인 의도까지 부정하는 것은 아냐. 어쨌든 그의 폭로로 공익제보자에 대한 보다 근본적인 논의가 활발해졌으니까.
◇언론은…팩트 체크였나 황색 저널리즘이었나
곽: 의도치 않게 신 전 사무관 발언이 제고한 공적 이익이 하나 있어. 언론의 '팩트 체크' 능력이야. 당시 적자 국채 비율부터, 적자 국채 발행 시 일어날 수 있는 포트폴리오 등 이렇게 분석적인 기사들은 오랜만이었어. 평소에도 이런 식으로 정치인들의 발언을 하나하나 다 따지고 들어갔으면, 정치인들 꽤 골치 아플걸?
나: 팩트 체크? 오히려 나는 언론의 '자극적' 면모를 제대로 체감했는데. 온 국민이 사용하는 초록색 포털사이트 검색창에 '신재민' 이름을 치면 연관 검색어에 비트코인과 암호화폐가 걸려. 신 전 사무관이 암호화폐 투자를 했다가 몇십 억 빚을 져서, 그 빚을 갚으려고 공무원을 그만두고 학원 강사로 전향했다는 소문이 기정사실처럼 퍼졌더라고. 심지어 이런 뜬소문을 그대로 받아서 기사로 쓴 곳도 많고.
곽: 물론 신 전 사무관의 자살 소동을 비롯해서 사건의 본질보다는 주변부에 치중한 언론들도 있긴 있었지. 하지만 그런 황색 언론들을 제외하고는 언론들이 그의 발언과 관련된 팩트 체크에 공을 들인 것이 보이더라고. 물론, 신 전 사무관의 발언과 관련된 팩트 체크에 한해서 말이야. 비트코인 투자 실패 소문은 나도 들었는데, 취재로 확인된 건 아니라고 하던데.
나: 나는 이번 사건을 통해 공익제보자와 관련된 주류 언론들의 기획 기사를 기대했어. 이때처럼 공익제보에 대한 논의가 활발했던 적이 없잖아. 공익제보의 범위를 어디까지 넓히고, 공익제보자의 보호를 위한 장치는 어느 수준까지 마련해야 하는지. 외국은 어떤 식으로 공익제보자를 관리하고 있는지에 대한 심층적인 보도를 찾아보기 힘들더라고.
곽: 그건 맞는 것 같아. 현재 제보자 관련 기사를 찾아보면 범죄 행위에 대한 제보, 그리고 그 제보자와 관련된 보복범죄를 다룬 기사들이 많이 나와. 그럼 그 기획 기사를 우리가 한 번?
◇폭로의 '긍정적 효과'는? 공익제보 관련 논의 수면 위로
나: 신 전 사무관 폭로가 거의 두 달 동안 나라 전체 이슈를 잡아먹고 있어. 이 사건을 그냥 흐지부지 종결시키기보다는 더 나은 민주주의 사회로 갈 수 있는 계기로 삼아야겠지.
곽: 공직사회에서 공익제보가 많이 나올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 아울러, 공익제보자의 범위를 넓혀서 누구나 정당한 제도 안에서 보호받을 수 있게 만드는 것. 이런 것들이 필요하지 않을까.
나: 청와대와 정부 부처 간 경직된 관계에 대해 그들 스스로가 다시금 고찰하는 것 또한 중요한 지점인 것 같아. 어쨌든 신 전 사무관이 퇴사 이유로 비합리적인 관료사회의 결정 과정을 언급했으니까, 이것이 핵심이겠지.
곽: 그렇게 되면 결국은 신 전 사무관의 뜻에 동의한다는 건데, 이렇게 그를 공익제보자로 인정한다는 건가?
나: 그에 대한 대답은 김동연 전 부총리 말로 마무리할게. "그의 충정과 소신은 인정하되, 소신과 정책 과정은 다른 문제다." 자신이 본 정책 과정의 일부를 전체인 것으로 확대 해석한 것은 끝까지 받아들일 수 없는 부분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