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는 나의 오른팔”...라거펠트 후임자 버지니아 비아르드는 누구?
글로벌 패션업계의 거장이자 샤넬의 아이콘으로 불려온 칼 라거펠트가 타계하면서 향후 샤넬의 행보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고 있다. 샤넬은 라거펠트의 뒤를 이어 브랜드를 세계적인 패션 명가로 계속 이끌어갈 후임으로 비르지니 비아르를 바로 지명했다.
19일(현지시간)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라거펠트는 최근 몇 주간의 투병 끝에 이날 프랑스에서 생을 마감했다. 향년 85세다. 샤넬은 비아르를 비롯해 마크 제이콥스, 알베르 엘바즈, 에디 슬리먼 등 스타 디자이너 중 비아르를 라거펠트의 후임으로 지명했다고 발표했다. 이로써 비아르는 샤넬 역사상 두 번째 여성 수석 디자이너로 이름을 올리게 됐다. 비아르를 지명한 것은 그가 창업자인 가브리엘 샤넬과 라거펠트의 창의적 유산을 이어나갈 적임자로 보였기 때문이라고 샤넬 측은 밝혔다.
라거펠트는 생전 비아르에 대해 남다른 애정을 표현하기도 했다. 그는 동영상 스트리밍 서비스 업체인 넷플릭스의 다큐멘터리 ‘D-7 카운트다운’에 출연해 “비아르는 내 삶에 그리고 샤넬 작업실에 없어서는 안 될 사람이다. 그녀는 나의 오른팔로, 항상 전화 통화로 의견을 주고 받는다”고 말했다.
비아르는 1987년 샤넬의 인턴으로 패션업계에 발을 들였다. 1992년부터는 라거펠트와 함께 약 5년간 끌로에의 디자이너로 활동하다가 다시 샤넬로 돌아와 지금까지 라거펠트와 약 30년간 호흡을 맞춰왔다.
라거펠트의 존재감이 워낙 컸던 탓에 비아르가 느끼는 부담은 만만치 않을 것이라고 업계는 전망했다. 구찌, 루이뷔통 등 업계 라이벌들과의 치열한 경쟁에서 샤넬의 명성을 이어나가야 하기 때문이다. NYT는 현재 세계 명품산업은 전례 없이 긴 호황을 누리고 있는데, 비아르가 이를 더 연장할 수 있을지 업계의 시선이 집중되고 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비아르가 샤넬에 자신만의 족적을 남길지 아니면 조심스럽게 전임자의 뒤를 이을지 선택해야 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비아르의 스승인 라거펠트는 1982년 샤넬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발탁됐다. 당시 그는 명성을 잃어가는 샤넬을 살리겠다며 “이제부터 샤넬의 이미지를 현대 세계에 맞춰 나가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이후 데뷔 무대인 1983년 1월 오뜨꾸뛰르 컬렉션을 성공적으로 마치며 ‘죽은 샤넬을 환생시켰다’는 극찬을 받았다.
라거펠트는 창의적인 디자인으로 샤넬을 세계 최고의 럭셔리 브랜드로 키워내는 데 성공했다. 그는 알파벳 ‘C’ 2개가 겹쳐 있는 샤넬 로고를 만든 장본인이다. 라거펠트는 샤넬이 중년층 브랜드라는 이미지를 바꿔놓기도 했다. 그는 샤넬의 상징인 2.55 핸드백, 트위드 재킷, 검정 원피스 등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해 젊은 소비자들의 마음마저 사로잡았다.
비공개 기업인 샤넬이 지난해 108년 역사상 처음으로 재무 결과를 공개한 것도 라거펠트의 기여가 크다. 샤넬의 2017년 총매출은 96억2000만 달러(약 10조9000억 원)로 전년 대비 11.5% 증가했다. 영업이익은 27억 달러, 순이익은 17억9000만 달러를 기록했다.
미국 컨설팅업체 번스타인의 명품 시장 전문 애널리스트인 루카 솔카는 “작년에 샤넬이 엄청난 마케팅 덕에 탄탄한 실적을 거둘 수 있었다”며 “샤넬은 의류에서부터 뷰티 부문까지 폭넓은 사업 기반을 확보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이어 그는 “라거펠트가 커다란 족적을 남긴 건 사실이지만 샤넬은 내부적으로도 중요한 인력풀과 시장에서 큰 매력을 가진 강력한 브랜드”라고 낙관했다.
1933년 독일 함부르크에서 태어난 라거펠트는 22세가 되던 해에 피에르 발망 어시스턴트로 발탁되며 패션업계에 데뷔했다. 이후 실력을 인정받아 펜디의 여성복 라인 디자이너로 영입됐다. 그는 펜디를 가죽·모피 제조회사에서 이탈리아 럭셔리 패션 브랜드로 바꿔놓는 데 성공했다. 1964년에는 끌로에에 크리에이티브 디자이너로 합류했다.
라거펠트는 생전 샤넬 패션쇼만 연 6회 진행할 만큼 왕성한 활동을 펼쳤다. NYT는 “라거펠트는 눈을 감기 직전까지 오는 목요일에 진행되는 이탈리아 밀라노 패션 위크에 선보일 2019 컬렉션을 준비하고 있었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