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사람들은 현명해지려면 나이를 먹어야 한다고 입버릇처럼 말한다. 하지만 사람은 나이가 들면 두뇌가 나빠져, 예전과 같은 현명함을 유지하기란 매우 어렵다.”
괴테의 ‘팩폭’이다. 나이가 들면 신체에 노화가 찾아온다. 신체를 구성하는 요소 중 정신을 지배하는 두뇌 역시 노화를 맞이하면서, 정신적‧신체적 노화는 한꺼번에 다가온다. 설상가상으로 노화로 인한 인지능력 감퇴는 일상생활에 많은 불편함을 초래한다. 하지만, 사람이 먼거리를 직접 이동하기 위한 운전 능력은 대부분이 죽기 전까지 간직하고 싶어 하는 게 사실이다.
이런 사람들의 바람과 달리, 일정 나이를 넘어선 고령운전자의 면허를 정지하자는 목소리가 거세다. 최근 연달아 일어나고 있는 고령운전자의 교통사고 때문이다. 지난 달 10일 96세 남성이 서울 한 호텔에서 주차를 하던 중 벽을 들이받고, 이어 보행하던 30대 여성을 치어 숨지게 했다. 같은 달 24일에는 72세 여성이 최저 속도 제한이 있는 고속도로에서 30km로 운전을 하다, 뒤에 있던 화물차 운전자가 변을 당했다.
통계자료도 이를 증명한다. 도로교통공사 자료에 따르면 65세 이상 고령운전자가 낸 교통사고 발생 건수는 2013년 1만7590건에서 2014년 2만275건, 2015년 2만3063건, 2016년 2만4429건, 2017년 2만6713건으로 매년 꾸준히 증가했다. 전체 교통사고 중 고령운전자 사고 점유율은 2014년 9%, 2015년 9.9%로 10%를 밑돌다가 2016년 11%를 기록하며 처음 10%대에 진입했고, 2017년에는 12.3%로 높아졌다.
특히, 75세 이상의 교통사고 증가율이 가파른 상승세다. 2012년부터 2017년까지 교통사고 증감률을 보면, 75∼79세 운전자가 낸 교통사고는 14.3%, 그에 따른 사망자는 4.4% 증가했다.
그렇다면, 고령운전자 교통사고 해법은 고령자 운전 제한으로 가야 할까. 아니면 고령운전자가 운전하기 좋은 환경을 조성해 주는 것이 우선일까. 본지 기자가 운전 경력이 50년인 경기도민 최명환(76) 씨와 현실적인 이야기를 나눠봤다.
◇만 70세 기준 운전면허증 반납, 합리적일까?
나경연 기자(이하 나): 최근 인구구조의 변화 탓도 있겠지만, 유독 고령운전자에 의한 교통사고가 많이 보도되는 것 같아요. 좀 극단적일 수도 있지만 가장 효율적인 방법은 일정 나이를 넘은 사람들의 운전을 막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최근에는 평균 연령이 높아졌으니, 만 65세보다 높은 만 70세를 기준으로 하면 적당할 것 같아요.
최명훈 씨(이하 최): 그건 너무 극단적인 방법 같은데요? 나이가 든다고 모든 사람의 인지능력이 똑같은 수준으로 감퇴하는 것은 아니에요. 노화의 정도는 개인별로 차이가 매우 크죠. 물론, 나이가 들면서 행동이 둔화하고 인식체계가 바뀌는 것은 과학적으로 증명된 사실이에요. 하지만 그 변화를 개인별로 검사해야죠. 일방적으로 모든 사람에게 같은 기준을 적용하는 것은 현명하지 않아요.
나: 개인별로 차이가 있을 것 같긴 해요. 하지만 대부분 고령자가 운전 능력 감퇴를 경험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니까요. 그러면 개인별 차이를 어떤 식으로 검사해야 할까요? 우리나라는 운전면허 갱신 시 꼼꼼하거나 전문적인 검사를 하고 있다는 느낌은 들지 않아요.
최: 나는 그 운전면허 갱신 시험이 정말 중요하다고 봐요. 나이가 80세가 넘어도 젊은 사람보다 운전을 잘하는 사람이 있는데, 무조건 나이만 가지고 운전하지 말라고 강요할 순 없으니까요. 그래서 고령자가 운전면허를 갱신할 때 통상적인 시험이 아닌, 축적된 통계나 실험 결과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전문화된 시험을 치르게 하는 것이 중요할 것 같아요. 나 같은 경우도 운전한 지 50년 정도가 됐지만, 아직 액셀과 브레이크를 헷갈려 하는 것같은 터무니없는 실수 없이 운전을 잘 해오고 있어요.
나: 무조건적인 운전면허증 중지보다는 운전면허 갱신 시험의 전문성이 중요하다는 말씀이시네요. 그러면 그 기간은 어느 정도로 해야 할까요? 최근 65세 이상 운전자들은 운전면허증 갱신 기간이 5년에서 3년으로 강화됐어요.
최: 1년 혹은 6개월 정도로 갱신 기간을 짧게 만드는 것이 효과가 있을 것 같아요. 이런 종류의 제도적 보완이 필요한데, 현재 대안으로 제시되는 도로판 글씨 확대 등의 정책은 실효성이 없어 보여요. 전 세계적으로 쓰는 표지판을 노인을 위해서 노인 맞춤형 표지판으로 바꾼다? 노인이 사회에 피해를 주고 있다는 인식만 강해질 것 같거든요. 이런 1차원적 해법은 노인으로서 반대하고 싶네요.
◇자발적 반납 유도하려면?
나: 우리나라 60세 이상 택시 기사 숫자가 전국 기사 26만 명 중 14만 명이에요. 택시 기사 절반이 넘는 분이 60세 이상이라는 것이죠. 90세 이상 택시 기사도 많아요. 당장 이분들은 운전면허증을 반납하면 생계에 위협을 받으시는 분들이죠. 그래서 일본이나 유럽 국가의 경우에는 고령자가 운전면허증을 반납할 경우 한 달에 일정 금액의 생계비를 지원해 주고 있어요.
최: 그런 식의 유도가 강제보다 훨씬 나은 것 같네요. 부산도 지금 면허 자진 반납제를 운용하고 있는데 인기가 많다고 들었어요. 면허증을 반납한 고령 운전자들은 병원, 목욕탕, 안경점 같이 노인들이 주로 방문하는 상점들에서 할인 혜택을 받을 수 있다고 하네요.
나: 네 맞아요. 반응이 굉장히 좋아서 4달 만에 4800명이 면허를 자진 반납했어요. 이런 추세라면 전국적으로 자진 반납제 제도가 자리 잡을 수도 있겠네요. 중요한 점은 자진 반납을 원치 않는 사람도 분명히 있다는 점이에요.
최: 노인의 입장에서 운전하고 싶은 이유는 딱 한 가지에요. 이동이 편리하다는 것. 만약 운전면허가 정지돼 운전을 못 한다면, 충분한 택시비가 필요해요. 노인들도 24시간 자식들에게 목적지까지 태워다 달라고 부탁할 수 있거나, 풍족한 교통비를 받는다면 굳이 위험한 고령운전을 주장하지 않겠죠? 하지만 요새 자식과 부모가 같이 사는 집이 있나요. 그렇지 못하니까 운전을 통해 이동하는 것이죠.
나: 최근 자식과 부모 간에 운전 여부를 놓고 다툼하는 집도 많다고 해요. 자식은 부모가 교통사고가 날까 봐 운전을 그만하라고 하고, 부모는 이동해야 하는데 운전 말고는 방법이 없으니 그럴 수 없다고 얘기하고. 일단 부모와 자식 간 적극적 소통이 해법인 것 같아요.
◇‘초보운전’처럼 ‘고령운전자 마크’…어떨까?
나: 고령운전자의 운전면허증 반납을 반대하시는 분들이 가장 많이 하는 말이 “너네도 다 늙는다”에요. 모든 사람은 다 늙기 마련이고, 그걸 피할 수는 없겠죠. 그래서 더 합리적인 대안 도출을 위한 사회적 공론화가 필요한 것이기도 하고요. 그 과정에서 제시된 대안 중 하나가 ‘초보운전’처럼 고령운전자 차량에 ‘고령운전자’ 마크를 달자는 것인데, 어떻게 보세요?
최: 초보운전 마크를 단다고 초보운전자가 능숙해지는 것도 아닌 것처럼, 고령운전자 마크를 단다고 고령운전자 인지 능력이 30대로 상승하는 것도 아니에요. 주위 차량이 그 차를 더 소외시키게 만드는 장치일 뿐이죠. 오히려 노인을 위한다고 시행하고 있는 정책들이 노인을 그 사회에서 외롭게 만드는 것이 많아요. 행정 편의적 정책들의 폐해죠.
나: 말씀을 듣다 보니, 저도 모르게 편견을 갖고 있는 것 같아요, 고령운전자는 인지 능력이 떨어져 사회가 배려하고 보호해야 한다는 편견이요.
최: 노인들도 자신들의 인지 능력을 비롯한 신체 기능이 저하되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있어요. 그런 노인들을 설득해서 어떻게 교통사고율 감소라는 긍정적인 결과로 이끌어 걸 것인지는 국가의 역량이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