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영호 공정거래위원회 경쟁정책국장
그러나 기업들은 종종 서로 담합해 가격을 인상하거나 독과점적 지위를 남용해 소비자에게 피해를 끼친다. 공정거래법은 이러한 행위들을 방지하고 경쟁의 규칙을 확립하기 위해 1980년 12월 31일 제정됐다.
약 38년이 지난 지금, 우리의 경제 환경은 크게 변화했다. 1980년대 고도성장 가도를 달리던 우리 경제는 최근 저성장·양극화를 겪고 있다. 이에 따라 재벌개혁과 갑질근절 등 공정경제에 대한 요구는 한층 높아졌으며, 4차 산업혁명 등 기존 법체계로는 대응하기 어려운 경제현상도 새롭게 나타나고 있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이와 같이 변화된 21세기 경제여건을 반영하고, 공정한 시장경쟁의 규칙을 재정립하기 위해 공정거래법 전면개편을 추진해오고 있다. 앞서 전면개편 특별위원회, 각종 토론회·간담회 등 의견수렴 과정을 거쳐 공정거래법 전부 개정안을 마련했으며, 지난해 12월 말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우선 개정안은 행정·민사·형사적 수단 간의 상호 보완과 균형을 이루는 법집행 체계를 마련해 법 위반 억지력을 높이고자 했다. 이를 위해 불필요한 형벌규정은 삭제하는 대신, 민사적 구제수단은 확충하고 과징금 부과율 등 행정제재 수준을 보다 강화했다.
대표적으로 피해자가 법원에 직접 불공정행위의 금지나 예방을 청구할 수 있도록 하는 사인의 금지청구제가 도입되면 피해구제가 보다 신속하게 이뤄질 수 있을 것이다. 특히 가격담합, 입찰담합 등 경성담합에 대해 전속고발제가 폐지되면 막대한 소비자 피해나 국가 재정 낭비를 초래하는 담합에 보다 효과적인 형사제재가 가능해 질 것으로 기대된다.
기업집단과 관련해서는 기업집단 규율의 사각지대를 해소하는 데 주안점을 뒀다.
먼저 사익편취 규제 적용 대상을 확대해 소액주주의 부가 불합리하게 총수일가로 이전되는 행태를 방지하고, 중소기업에 공정한 사업 기회가 제공될 수 있도록 했다. 또한 금융·보험사와 공익법인이 가진 계열사 주식의 의결권을 제한해 고객자금 등이 편법적 지배력 확대에 활용되는 것을 방지토록 했다.
개정안에는 벤처기업 인수·합병(M&A) 저변이 실질적으로 확대될 수 있도록 벤처지주회사의 설립기준과 행위제한 규제를 완화하는 등 혁신성장 생태계 구축을 뒷받침하는 내용도 담겼다.
여기에 자산총액·매출액을 기준으로 한 현행 기업결합 신고기준을 거래금액 기준으로 보완했다. 작지만 성장 가능성이 큰 스타트업을 고액에 인수해 잠재적 경쟁자를 제거하거나, 진입장벽을 형성하는 등 경쟁을 제한할 우려에 적극적으로 대처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다.
최근 경쟁사업자 간에 가격, 생산량 등에 관한 정보를 교환해 은밀하게 담합이 이뤄지는 사례가 많다는 점을 고려해 이러한 형태의 담합을 제재할 수 있는 규정도 개정안에 담았다.
마지막으로, 공정위 법집행의 신뢰성을 높이기 위해 조사 및 심의절차를 개선했으며 피심인이 열람·복사할 수 있는 자료의 범위를 넓히는 등 기업의 방어권 보장도 확대했다. 이와 함께 현장조사 시 조사공문 교부를 의무화하고 심의단계부터는 현장조사를 금지하는 등 조사 공무원이 준수해야 할 법적 의무를 강화함으로써 공정위 결정의 절차적 정당성을 높였다.
공정위는 향후 국회에서 공정거래법 개정 논의가 신속하게 이뤄질 수 있도록 적극 지원할 계획이다. 공정거래법이 개정된다면 시장 경쟁을 든든하게 지탱해주는 버팀목이 되어 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