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통업계는 지금 '새벽배송' 열풍
“벗지 마세요.”
냉장창고에 들어가기 직전, 기자가 롱패딩을 벗으려고 하자 직원이 만류했다. 물건을 나르고 포장을 하다 보면 자연스레 땀이 나고 더워지겠거니 생각했지만, 그런 생각은 오산이었다. 창고에 들어가자마자 희미한 입김이 나왔다. 창고 직원들은 모두 롱패딩을 입고 마스크까지 착용하고 있었다.
지금 유통가는 새벽배송 전성시대다. 기자가 일일 배송직원이 되어 찾아간 '마켓컬리'는 2015년 국내에서 처음으로 새벽배송을 시작한 곳이다.
25일 밤 12시. 모두가 잠든 시간, 서울 송파구에 위치한 마켓컬리 냉장창고는 눈코 뜰 새 없어 보였다. 새벽 1시에 모든 택배 차량이 상품을 싣고 고객의 집으로 출발해야 하기 때문에, 밤 12시는 가장 손이 바쁜 시간이다. 패딩 위에 보라색 조끼를 입은 직원들은 창고 내부를 분주히 오가며 당일 출고 작업을 마무리하고 있었다.
기자의 체험에 동행한 강재규 마켓컬리 팀장은 "창고 내 모든 공간이 4도에 맞춰져 있다"면서 "온도가 너무 낮으면 채소가 얼고, 너무 높으면 유제품과 육류 품질이 변질될 수 있어 온도 유지에 신경을 많이 쓰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이리저리 뛰어다녔지만…삼십 분도 안 돼 실수연발
“바코드를 찍고, 빨간 불이 들어오는 바구니에 하나씩 넣어주세요.”
두부 상품의 바코드를 찍자, 일렬로 나열된 바구니 칸에 듬성듬성 빨간 불이 들어왔다. 두부를 주문한 고객의 바구니만 골라, 해당 상품을 넣는 작업이었다. 처음에는 ‘두더지 잡기’ 게임 같은 느낌이 들어, 빨간 불이 들어오자마자 잽싸게 바구니로 달려가서 상품을 넣었다. 하지만 바구니 사이를 몇 번 왔다 갔다 하다 보니 금세 다리가 아파졌다. 혹여나 빨간 불을 못 보고 지나칠까 봐 긴장은 점점 더해졌다.
삼십 분도 채 지나지 않아 실수를 연발했다. 바구니에 상품을 넣은 뒤 빨간 불을 끄지 않고 지나쳐, 같은 상품을 한 바구니에 두 번 담았다. 욕심을 부려 한꺼번에 많은 상품을 들고 가다가 상품을 바닥에 떨어뜨리기도 했다. 해당 라인을 책임지는 매니저는 “어차피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BAS 시스템이 직원들의 실수를 잡아주기 때문에, 물건을 바구니에 넣은 뒤 수량이 맞지 않거나 오류가 발생하면 경고음이 울린다”라고 설명했다.
◇발주부터 배송까지…빅데이터가 생명
“화면에 나오는 빨간 선이 오늘 배달할 지역의 경로입니다.”
새벽 1시. 모든 상품의 출고 준비가 완료될 시간에는 차량 배치가 가장 중요한 작업이다. 냉장창고 위층에 있는 사무실에서는 배송매니저들에게 차량을 배치하고, 최적의 경로를 알려주기 위한 작업에 한창이었다. 이전의 배송 데이터들이 가장 효율적인 경로를 알아내는 근거가 된다.
이날 기자가 맡은 배송 지역은 서울 송파구 장지동이었다. 이영민 마켓컬리 샛별배송팀 배송 조장은 프로그램을 통해 배송 리스트를 정리했고, PDA 단말기를 이용해 목적지까지 내비게이션을 작동했다. 이영민 조장은 "목적지인 송파○○○○ 아파트는 물류창고에서 가깝고 주문이 많아 경로를 보지 않아도 되지만, 아파트 단지가 아니거나 주문량이 많지 않은 곳은 PDA에 뜨는 최적 경로를 따라가는 것이 가장 빠른 길"이라고 설명했다.
빅데이터는 경로 파악 뿐 아니라 상품 발주에도 사용된다. 마켓컬리는 당일 재고가 예상 주문량보다 많으면 '전량 폐기'를 원칙으로 하는데, 마켓컬리 일일 폐기율은 1%가 되지 않는다. 과거 고객 주문 기록을 바탕으로 다음 날 수요를 예측하기 때문이다. 과거 품절, 폐기 기록 등을 활용해 수요를 파악하는데, 회원 수가 늘수록 축적된 정보량도 많아지고 있다.
◇신선식품 과대포장, 현실로 와 닿아
올빼미가 그려진 보라색 트럭을 타고 첫 배송지인 송파구 장지동 송파○○○○ 아파트에 도착한 시간은 새벽 1시 30분. 한꺼번에 박스 세 개를 옮기다 보니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르기가 쉽지 않았다. 무릎으로 박스 바닥을 받치고, 턱으로 박스가 윗부분을 고정해 엘리베이터에 겨우 탈 수 있었다.
세 개 박스 모두 포장재의 종류가 달랐다. 고객들의 주문 상품은 냉장, 냉동, 상온 세 가지로 분류되어 각각에 맞는 박스에 담긴다. 해당 고객 역시 신선식품과 상온식품을 동시에 주문했기 때문에 박스가 세 개로 나뉘었다. 특히 냉동식품의 경우 스티로폼 안에 아이스팩이 가득 들어있어 무게가 상당했다.
아파트 단지를 2곳을 더 돌며 배송을 한 뒤 시계를 보니 새벽 3시. 동행한 직원은 통상 배송 작업이 새벽 5시까지 이어진다고 말했다. 눈을 돌려 보니 아파트 단지 곳곳에 헬로네이처 등 신선식품을 배달하기 위한 새벽 배송 차량들이 눈에 띄었다.
이처럼 새벽 배송은 유통업계에 빠르게 확산하고 있는 트렌드지만, 일각에서 택배 쓰레기 문제를 지적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물품을 안전하게 배송하기 위한 완충재부터 신선식품 품질을 유지하기 위한 보냉재, 스티로폼 박스 사용량이 만만치 않다. 통상 신선식품은 일반 공산품 택배보다 더 많은 포장을 필요로 한다.
전문가들 역시 포장재 과잉 문제에 대해 유통업계가 더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홍수열 자원순환경제연구소장은 "택배 쓰레기를 줄이는 방법은 '포장재 개선'과 '포장재 재사용' 두 가지"라면서 "유럽 몇몇 국가는 포장재를 우체통에 넣으면 이를 해당 기업으로 반송시켜 재사용을 유도하고 있다"라고 사례를 설명했다.
◇온라인 통한 식품구매, 꾸준한 성장세
온라인 쇼핑이 일상에 들어오기 시작하면서, 온라인을 통한 식품 구매는 꾸준한 성장세를 보여 왔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온라인 식품거래액은 13조190억 원. 전년보다 28.2% 증가한 수치다. 이 중 농·축·수산물 거래액은 2010년 6813억 원에서 2017년 2조650억 원으로 3배 이상 늘었다.
유통가의 새벽배송은 이런 흐름을 타고, 매일 장보기가 쉽지 않은 워킹맘과 직장인들을 공략한 서비스다. 마켓컬리의 성공 이후, 수많은 온라인 푸드업체들이 속속 가세하면서 새벽배송은 이제 대중화된 서비스가 됐다.
아침마다 문을 열면 도착해 있는 신선식품. 1인 가구와 맞벌이 부부의 증가로 새벽배송의 인기는 더 높아지고 시장 규모도 더 커질 것은 분명해 보인다. 한층 더 치열해진 유통업계의 새벽 경쟁이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