⑤STX중공업, 소액주주 희생 강요로 2월 회생종결…영업손실로 적자전환
고통의 무게는 제각각이다. 주식회사의 주주는 자신이 투자한 지분만큼의 유한책임을 진다. 다만 누구에겐 그 책임이 절망일 수 있다. 한 개인에게 전혀 적은 돈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소액’으로 분류되는 주주들 말이다. STX중공업은 회생절차 과정에서 두 번의 감자를 단행했다. 소액주주들은 자신의 주식이 부채를 탕감하고 지워지는 것을 거스르지 못했다. 이마저도 회사의 존립을 위해선 꼭 필요한 일이기 때문이다. STX중공업이 회생법원을 탈출한 배경에는 이러한 주주들의 이야기도 담겨있다.
“딸이 올해 태어났습니다. 너무, 너무 기쁩니다. 하지만 저는 아버지가 될 자격이 없습니다. 이대로 집으로 돌아가면 앞으로 가족 앞에서 당당하지 못할 것 같습니다….”
STX중공업 소액주주인 A 씨는 감정에 호소한 자신의 말이 ‘결과를 바꾸지 못한다’는 사실을 안다. 통한이 아닌, 후회의 눈물을 흘리며 재판장에게 마지막으로 읍소했다. 그에겐 다시는 없을 기회다. 한 30대 가장이, 그것도 한창 업무를 볼 시간인 오후 3시경 서울 서초구 회생법원 3별관 제1호 법정 한가운데 섰던 이유다.
2018년 11월 2일. 3주가량 연기된 STX중공업 관계인집회가 열렸다. 채권자, 담보권자, 주주 등 ‘관계인’이 모여 회생 법인에 대한 정리절차를 의결하는 날이다. 이들은 매각 주간사가 제출한 회생계획안을 받아들일지 말지를 투표로 결정한다. 1인 1표의 투표권을 인정하는 평등선거는 아니다. 지분율에 따라 투표권이 강해지는 구조다. 이러한 탓에 이 자리에는 많은 사람이 모이지 않는다. 채권단 관계자 일부만 자리를 채우곤 한다.
이례적으로 이날 전국 각지에서 STX중공업 소액주주들이 모였다. 충남 서산에서 자동차종합 검사소를 운영하는 김영식(가명) 씨는 서울까지 한달음에 올라왔다. 그는 달걀을 한 바구니에 담지 말라는 흔하디 흔한 조언을 믿지 않았다. STX중공업만, 그것도 ‘1만’ 주를 한 번에 담았다. 김 씨가 이 주식을 처음 사기로 했을 때, 더 떨어질 곳은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주식은 김 씨의 의지와는 별개로 점점 사라졌다.
김 씨는 이번 계획안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다. “어떻게 8대 1 감자가 있을 수 있나.” 김 씨가 말하는 감자는 ‘무상 감자(減資)’이다. 주주들이 아무런 보상도 받지 못하고 주식을 잃는 것을 의미한다. 기업이 자본금을 줄여 손실을 털어낼 때 쓴다. STX중공업은 2017년 1월 이미 한 차례 2대1 감자를 한 바 있다.
“답답하다. 하소연할 때도 없다.”
이번 계획안이 통과되면 그의 주식은 처음에 샀던 것보다 16분의 1 수준으로 떨어진다. 말주변이 없던 김 씨는 소액주주 대표에게 자신의 주주권을 위임했다. 굳이 관계인집회를 찾은 이유는 ‘혹시나’ 해서다. 재판장이 지금 이 상황을 뒤집어줄 것이라는 일말의 희망에 건 것이다.
선박, 플랜트용 엔진과 기자재를 생산하는 업체인 STX중공업은 회생법원 내에서 ‘중고참’급이다. 2016년 7월 22일부터 회생법원의 품 안에 있었다. STX중공업은 조선업 불황을 정통으로 맞으며 해체된 STX그룹에서 나왔다. 이후 줄곧 산업은행의 관리를 받았다. 법정관리에 오기 전, 채권금융기관과의 공동관리(자율협약)도 진행했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다.
2년이 넘는 시간 동안 인수 의사자가 없지는 않았다. 2017년 1월 회생계획안이 인가됐지만 그해 10월 1차 공개매각이 유찰됐다. 당시 재판부는 STX중공업 전체를 매각하기로 했는데, 본입찰에 참여한 기업이 사업부 일부만 인수를 희망했다. 인수금액도 한참 미치지 못해 우선협정대상자 선정도 불발됐다. 매물로서의 인기도 떨어지고 있었다.
매각 주간사는 STX중공업의 사업부를 분할해 매각하는 방안으로 계획안을 다시 꾸렸다. 엔진·기자재 부문은 파인트리파트너스(이하 파인트리)에, 플랜트부문은 글로벌세아 매각하는 안이다. 상대적으로 매각 단가가 저렴하고 사업성도 높게 평가된 플랜트부문은 일찍이 매각에 성공했다. 남은 플랜트 부문을 매각하는 과정이 남은 숙제였다. 이번 관계인집회는 2년이 넘는 대장정의 STX중공업 매각을 마무리 짓는 단계인 셈이다.
김 씨가 울분을 토한 8대 1 감자안은 여기서 등장한다. 파인트리는 STX중공업의 최대주주가 돼야 하는데, 기존 주주들이 있는 상황에선 상당한 비용이 수반된다. 기존 주주들은 투자에 대한 ‘책임’으로 지분율을 크게 감소 당하고, 파인트리는 제3자 배정을 통해 신주 인수권을 부여받는 식이다. 김 씨의 주식은 이렇게 사라졌다.
집회가 열리기 수 시간 전부터 소액주주 대표단은 분주했다. 앞서 관계인집회가 수차례 연기된 것도 이들의 반발이 컸기 때문이다. 회생계획안의 부당함을 설명하는 참고자료를 제작하고, 이런 의지를 재판부에 전달하고자 했다.
그중 하나로 주액주주들은 ‘주주조’의 투표권을 분리해달라고 지속해서 요구했다. STX중공업은 KDB산업은행이 34.5% 지분을 가진 최대 주주였다. 소액주주들은 제아무리 자신들이 반대의 목소리를 높여도, 산업은행이 계획안을 찬성하면 소용이 없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만약 산업은행과 주주조가 분리되면 소액주주들의 힘으로 이 계획안을 저지할 수 있다는 기대를 품은 것이다.
“의견이 있으신 분들은 손을 들어주십시오.”
하나 둘 손을 들었고, 차례로 재판장 가운데에 섰다. 김 씨가 차마 들지 못한 손을 다른 이들이 들었다. 그들은 이름과 나이, 성별, 직업, 사는 곳, 목소리의 높낮이, 흥분의 상태만 다를 뿐, 의견은 하나였다. 회생계획안이 자신들에게 너무 불리하고, 신주권이 배정된 파인트리에게 과도한 혜택이라고 주장이다. 재판부는 그들의 사정에 공감했다. 하지만 회생법원은 반성문을 제출하면 형을 깎아주는 곳이 아니다.
소액주주의 힘은 뭉쳐야 비로소 힘을 발휘한다. 그러나 그 힘은 발휘된 적이 없다. 소액 주주들도 그 사실을 너무도 잘 알았다. 이날 STX중공업의 매각에서도 이 명제는 틀리지 않았다. 회생담보권자는 97.3%, 회생채권자 91.8%, 주주조 86.2% 찬성. 수 많은 소액주주들이 반대에 표를 던졌지만 회생계획안은 압도적인 비율로 관계인집회를 무난히 통과했다. 회생법원 관계자는 “소액주주권이 보장될 수 없는 현실에 공감한다”고 말했다.
선고 이후 재판장은 공기마저 빠져나간 듯 고요했다. 소액주주들의 소란은 없었다. 그들도 이것이 마지막이었음을 알았다. STX중공업은 2월 13일 회생절차 종결결정을 받고 정상기업으로 복귀했다.
STX그룹과 흥망성쇠…수직계열화 구조의 '명암'
STX중공업의 주가 차트는 두 번의 변곡점이 있다. 그 점 위에는 ‘감자’라고 표시돼 있다. STX중공업은 지난해 145억 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했다. 매출은 2148억 원으로 13.8% 늘어난 반면 당기순손실은 1049억 원으로 적자 전환했다. 또 한 번의 변곡점이 오는 것일까.
STX중공업은 STX그룹과 흥망성쇠를 같이했다. 2013년 해체되기 전 STX그룹은 ‘조선기자재-선박 엔진-조선-해운’으로 이어지는 사업 포트폴리오를 구성했다. 그룹의 두 축인 조선과 해운은 각각 STX조선해양과 STX펜오션이 담당했다. 여기에 필요한 기자재와 엔진을 공급한 곳이 STX중공업이다.
(뉴시스)STX가 그룹으로 운영되던 시절은 문어발식 경영이 만연했다. IMF 이후 쏟아진 매물들을 사업과 연관성이 떨어져도 인수·합병을 시도했다. 그러나 STX그룹은 조선·해운에 사업 역량을 집중해 계열사 간의 시너지를 키웠다. 이러한 영향으로 STX중공업은 그룹이 잘 나갈 때 같이 잘 나갔다. 하지만 동시에 그룹이 무너지면서 법정관리로 향하고 말았다.
2000년대 초중반까지 STX그룹은 집중화 전략의 덕을 봤다. 조선·해운업 호황의 최대 수혜자로 불렸다. 선박 건조물량이 급증하면서 조선업은 물론, 해운업까지 호재를 맞았다. 2008년 STX그룹의 조선·해운사가 벌어들인 매출만 60조 원에 육박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도래하면서 기세가 꺾였다. 수주가 급격히 하락함과 동시에 유동성 위기가 찾아 왔다. 업계 특성상 현금을 확보하지 않았던 것이 부메랑이 됐다. 2013년 4월 STX그룹의 주계열사인 STX조선해양이 채권단 자율협약을 신청했고, 이후 그룹은 해체됐다. 수직계열화 구조가 위기엔 얼마나 취약한지를 몸소 보여준 사례다.
STX중공업은 2012년 말 기준으로 STX조선해양이 57.49%, STX가 35.10%, STX엔진이 7.17%, STX복지재단이 0.24%를 보유했다. 그룹에서 분리한 뒤에는 농협은행이 최대주주였고, 산업은행의 관리를 받았다. 2016년부터 법원에서 회생절차를 밟았다.
한편 STX중공업은 두 회사가 섞여 있다. 원래 ‘STX중공업’의 이름을 가졌던 회사는 2004년 2월에 설립됐다. 엔진사업설비와 플랜트사업이 목적이었다. STX그룹이 주력으로 하던 조선업의 시너지를 키우기 위해서다.
또 STX그룹이 탄생한 2001년, 그해 6월에 엔진부품 제작부문이 독립돼 STX엔파코가 설립된다. 기계부품 가공, 제작 및 판매가 주 사업목적으로, 주로 주력 계열사에 부품을 공급하는 회사였다. STX엔파코는 2010년 3월 STX메탈로 사명을 변경했다. STX메탈이 2013년 1월 STX중공업을 인수하면서 지금에 이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