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다 핀 그들의 '유토피아'…'국가 아방가르드의 유령'展

입력 2019-04-19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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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26일까지 아르코미술관

▲김수근이 꿈꾸었던 여의도와 현재의 여의도를 동시에 모형으로 보여주는 최춘웅 건축가의 '미래의 부검'.(사진제공=아르코미술관)

경부고속도로, 소양감댐 등 대형 국토개발 프로젝트가 펼쳐지는 동시에 한강개발, 세운상가, 엑스포 70 한국관…. 1960~70년대 경제발전과 함께 국가적으로 대규모 프로젝트들이 진행됐다. 대부분 국가기관인 한국종합기술개발공사(기공)에서 주도했는데, 건축가 김수근을 비롯해 2030 젊은 건축가들이 기공의 프로젝트에 동원됐다.

기공에서 추진했던 사업들은 '유토피아'로 표현된다. 그들이 꿈꾼 도시는 국가 권력에 의해 왜곡되거나 실현되지 못했다. 입법·사법·행정을 한 데로 모은 거대한 섬을 만든다는 의지가 담긴 김수근의 '여의도 마스터플랜' 역시 자본의 논리에 막혔다. 세운상가는 1970년대 강남 개발과 1980년대 용산전자상가의 부상으로 슬럼화됐다.

윤승중, 유걸, 故김석철, 김원 등 한국 현대 건축사의 주역들은 모두 기공 소속이었다. '국가 아방가르드의 유령'은 기공의 2대 사장 김수근과 그 팀이 수도한 네 프로젝트(세운상가, 구로 한국무역박람회, 여의도 마스터플랜, 엑스포70 한국관)에 초점을 맞췄다.

한강연안개발, 삼일고가, 경부고속도로, 포항제철, 중문/보문관광단지 등 현대 한국을 형성한 개발계획을 주도했던 기공은 1960년대 한국 건축사에서 주요한 역할을 했지만, 이에 대한 아카이빙이 제대로 이뤄지지 못했다.

한국 현대건축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건축가들의 유토피아를 엿볼 수 있는 전시인 '국가 아방가르드의 유령'이 서울 종로구 동숭동 아르코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다. 지난해 베니스 비엔날레 건축전의 한국관에서 선보인 작품들로 꾸려진 귀국 전시다. 전시팀은 이 점에 주목해 기공의 작업을 '유령'으로 설정하고 전시를 꾸렸다.

▲한국 최초의 주상복합으로 설계됐던 세운상가 인근 재개발 계획을 표현한 김성우 건축가의 '급진적 변화의 도시'.(사진제공=아르코미술관)

전시는 기공의 건축가들이 청사진을 그렸으나 실현되지 않은 프로젝트 기록을 담은 '부재하는 아카이브'와 기공의 유산들을 해석해 새로운 가능성을 모색한 '도래하는 아카이브' 두 축으로 이뤄졌다. 김경태, 김성우, 바리(BARE), 설계회사, 서현석, 정지돈, 최춘웅, 로랑 페레이라 등 8팀의 건축가·아티스트가 참여했다.

박성태 예술감독(정림건축문화재단 상임이사)과 정다영(국립현대미술관 학예사), 건축비평가인 박정현(도서출판 마티 편집장), 최춘웅(서울대 교수) 공동큐레이터가 기획했다. 전시는 시민사회(civil society)의 힘이 미약하고 시민 공간(civic space)이라는 개념이 부재하던 시절에 만들어진 도시와 건축 유산을 파헤침으로써 건축의 보편적 가치이자 당위적 요구로서 제시된 '자유공간'에 대한 오늘날 건축가들의 대답을 들려준다.

특히 전시팀은 억압적 국가와 탈체제를 지향하는 '아방가르드'의 공존과 병치를 통해 기공의 작업, 나아가 1960년대 한국이 갖는 역설적이고도 모순적인 성격을 드러내고자 했다. 1965년 설립된 기공은 국영 건축·토목기술회사로서 항만, 수도, 공장, 교량, 박람회 파빌리온 등 국가주의를 물리적으로 구현하는 작업을 도맡았다.

▲베니스 비엔날레 당시 기공의 건축부에 있었던 건축가 김원(건축환경연구소 광장 대표)이 엑스포70한국관 모형 위에 앉아 작품을 감상하고 있는 모습.(사진제공=강현석 설계회사 소장)

이번 아르코미술관 전시에선 지난해 베니스 전시회에서 출품되지 않았던 로랑 페레이라의 '밤섬, 변화의 씨앗'과 엑스포70 한국관을 24첩의 병풍으로 재해석한 설계회사의 '빌딩 스테이트'가 새롭게 소개된다. 5월 26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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