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회생 보고서]범건축, 임직원-채권단 희생에 '모범회생' 기준이 되다

입력 2019-05-08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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⑧범건축종합건축사무소, 220억 빚 안고 회생법원행…1년 만에 조기졸업

‘실패를 넘어 도전으로’. 지난해 8월.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는 ‘실패박람회’가 열렸다. 법원의 회생절차를 거쳐 재기에 성공한 기업인들의 얘기를 듣는 자리였다.

지난해 회생절차를 ‘조기졸업’한 범건축종합건축사사무소도 이날 강단에 올랐다. 송기봉 해외산업본부 전무가 ‘기업회생신청을 주저 말아야 할 5가지 이유’를 주제로 이야기를 풀었다. 범건축은 정형식 회생법원장이 본지 ‘회생기업 보고서’ 시리즈에 추천한 기업이기도 하다. 회생절차의 모범사례로 꼽히는 범건축의 회생과 현재 상황을 짚어본다.

▲송기봉 범건축종합건축사사무소 전무가 지난해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열린 ‘회생콘서트’에서 ‘기업회생신청을 주저 말아야 할 5가지 이유’를 주제로 발표하고 있다.(사진제공=범건축)

◇ 잇따른 고객사 부실로 유동성 위기…220억 빚 안고 회생절차 = 인천국제공항 여객터미널, 여의도 IFC서울, 잠실 롯데월드타워, 이화여대 이화캠퍼스컴플렉스(ECC) 등. 범건축종합건축사사무소의 대표적인 포트폴리오다. 국내 1세대 건축가인 강기세 명예회장이 1984년 설립한 이후 비주거, 일반 건축물 사업에 집중하던 범건축은 2008년부터 경영기획실을 만드는 등 외형을 확장해왔다.

하지만 상황은 녹록지 않았다. 당시 범건축의 주력사업은 공공부문 턴키(설계·시공·운영 일괄 수주) 프로젝트였다. 설계비를 발주자가 아닌 시공사에게서 받아야 했지만, 시공사 파산으로 대금을 못 받는 경우가 반복됐다. 특히 2014~2015년 고객사였던 울트라건설의 부도와 경남기업의 법정관리는 범건축에 직격탄을 날렸다.

실적도 악화일로였다. 범건축의 매출액은 2015년 454억 원에서 2016년 224억 원으로 반토막났다. 영업이익도 2015년 40억 원에서 2016년 20억 원으로 줄었다. 2017년에는 87억 원의 순손실을 내기에 이른다. 당시 범건축의 빚은 220억 원에 달했다.

채권자들의 압류와 강제집행은 점차 거세졌다. 2017년 범건축은 회생법원의 문을 두드렸고, 법원은 7월 개시를 선언한다. 당시 범건축 대표였던 송기봉 전무는 “은행계좌는 물론이고 거래처의 매출채권까지 압류가 진행돼 회사가 완전히 마비되기 직전이었다”며 “개시 결정이 나면서 추심 행위들이 모두 차단돼 일시적이나마 여유가 생겼다”고 회고했다.

한시름 돌리려는 찰나, 이번에는 세금과 체불임금이 범건축의 발목을 잡았다. 범건축은 월급과 세금을 체불하면서 빚을 상환했다. 당장 눈앞 채권자들의 압박이 거셌기 때문이다. 하지만 회생절차에서 밀린 세금과 체불된 임금은 조정 대상이 아니다. 변제율 조정이 가능한 회생채권과 다른 지점이다. 당시 범건축의 체불임금만 50억 원에 달했다. 송 전무는 “청산으로 갈 수도 있었던 중대 고비였다”며 “진지한 설득과 호소를 통하여 임직원들이 전체의 30%에 달하는 체불임금 감축에 동의를 해줘 겨우 넘어갈 수 있었다”고 밝혔다.

◇ 인력·일감 확보, 채권단 설득…5% 변제율에도 회생 성공 = 본격 회생절차에 들어갔지만 범건축은 내부적으로도 재기를 위해 매진했다. 송 전무는 “회생 개시 결정이 났지만, 오히려 그때부터 내부적으로 남아 있는 회생 동력을 놓치지 않는 것이 중요했다”고 강조했다.

당장 사람과 일감을 확보하는 것이 최우선 과제였다. 직원들을 붙잡았다. 사람이 곧 자산인 설계사무소의 특성상 직원이 떠나면 회생에 성공하더라도 정상 경영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이미 2016년 6월 347명가량이던 직원은 회생절차에 들어가기 직전 150명으로 줄어든 상황이었다. 3분의 2가 넘는 직원들을 회사에 붙잡아둘 수 있었다. 일감을 확보하기 위해 건축주들을 일일히 방문해 설득했다. 어떻게든 설계를 끝까지 마무리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 결과 계약해지도 거의 발생하지 않았다.

그런 중에 법원은 인가 전 M&A를 통한 유동성 확보를 회생 방향으로 잡았다. 2017년 11월 대안회계법인을 매각주관사로 선정하고 본격적인 매각에 나섰다. 하지만 인수자는 나타나지 않고, 매각은 무산됐다. 곧바로 두 번째 M&A가 추진됐다. 몸값을 30억 원에서 10억 원으로 낮춘 채였다. 송 전무는 “1차 유찰 이후가 중요한 기로였다”며 “(법원에서) 한 번 더 해보자는 게 도움이 됐다”고 회상했다.

범건축은 몸집을 줄이는 데 총력을 다했다. 영업조직을 정리하고, 접대비도 크게 줄였다. 관리비만 1억1000만 원에 달했던 사무실도 축소했다. 채권단의 동의를 확보하는 것도 중요한 과제였다. 송 전무는 “채권단의 이해를 구하는 것이 참으로 어려운 과제였다”면서 “죄송한 말씀을 드리려 찾아가도 만나주지도 않는 곳이 많았다”고 말했다. 하지만 꾸준히 찾아가 설득을 한 끝에 동의를 받아낼 수 있었다.

이런 시도 끝에 범건축은 2018년 2월 신풍석재와 키움엠앤디가 조성한 S&K파트너스 컨소시엄과 최종 M&A 계약을 체결하고, 5월 관계인집회를 통해 회생계획안을 인가받았다. 변제율 4.9%. 한마디로 빌려준 100만 원 중 5만 원만 돌려받을 수 있는 조건에서도 75%가 넘는 채권자들의 동의를 구했다. 계획안이 인가되자 졸업은 일사천리였다. 범건축은 계획안 인가 두 달만이자, 회생절차에 들어간 지 1년 만인 6월 범건축은 조기졸업에 성공했다.

송 전무는 “회생 절차 초기에는 감당하기 어려운 비난과 원망이 돌아왔다”며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리려고 찾아가도 만나주지도 않았다. 배신감을 느낀다는 말을 들을 때 고통스러웠다”고 말했다. 이어 “하지만 점차 시간이 흐를수록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다”며 “어느 순간부터는 잘 마무리해서 회생 잘 하라는 격려가 비난 보다는 더 많아지더니, 순조로운 종결을 바라는 응원으로 돌아왔다”고 회고했다.

[인터뷰] “회생절차 망설였던 것 후회...6개월 빨랐다면 매각 안 됐다”

▲범건축종합건축사사무소 김기민(왼쪽) 대표, 송기봉 전무가 지난달 23일 서울 송파구 문정동 사무실에서 이투데이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고이란 기자 photoeran@)

“지금도 (빚에 대한) 부담은 안고 있죠. 여전히 어려워요.”

김기민 범건축 대표와 송기봉 전무를 송파구 본사에서 만났다. ‘회생절차 조기졸업’이라는 명예 뒤에도, ‘빚’의 그림자는 여전히 범건축에 드리워있었다.

김 대표는 “지금도 여전히 (빚에 대한) 부담이 있다”며 “(회생종결 직후) 일시적으로 변제했던 상거래 채권을 제외한 공익채무는 지금도 변제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정상기업으로 돌아왔지만 변제의 과중함 때문에 이에 대한 고단함이 있다”며 “회생기업들 대부분 비슷한 사정일 것”이라고 말했다.

송 대표는 “2018~2020년 3년간 갚아야 할 돈이 약 54억 원 정도”라며 “현재 27억 정도 갚은 상태”라고 말했다. 이어 “남은 부분은 내년까지 갚을 예정”이라면서도 “연 매출이 150억 정도 되니까 이익으로만 갚기엔 벅찬 상황”이라고 말했다. 그나마 인수합병(M&A) 과정에서 새로 생긴 주주의 도움으로 신규수주를 이어가고 있는 상황이다.

앞서 S&K파트너스는 범건축을 인수하면서 투자형 M&A 방식을 택했다. 범건축의 기존 경영권을 유지하면서 신규 자금을 투입하고 착수 가능한 프로젝트를 연결해주는 식이다.

김 대표는 “현재 범건축은 자본잠식 상태”라며 “자본으로 메우든지 신규 수주해서 이익을 통해서 변제하는 두 가지 방법 외에는 뚜렷한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그는 “현금흐름이 안정화되는 것이 우선”이라며 “신규 수주를 적극적으로 진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올해 범건축의 가장 큰 성과는 수원제일병원 설계를 수주한 것이다.

김 대표와 송 전무는 회생절차에 6개월만 빨리 들어갔어도 상황은 크게 달랐을 것이라고 회고했다.

송 전무는 “한 가지 후회는 회생법원의 굴레가 싫어서 그런지 몰라도 망설인 것”이라며 “6개월만 빨리 갔어도 좋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 대표도 “(일찍 회생절차에 들어갔다면) 공익변제 부담이 없었을 것이고, 매각 없이 회생을 마칠 수 있었을 것”이라고 아쉬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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