⑬스킨푸드, 우선협상자에 ‘파인트리파트너스’...마니아층 많지만 고객 확보 관건
먹지 말고 피부에 양보하라고 했지만, 물건이 없어서 피부에 양보는커녕 먹어보지도 못할 뻔했다. 회생절차에 들어가면서 폐업 얘기까지 나왔던 로드숍 화장품 브랜드 ‘스킨푸드(SKIN FOOD)’의 이야기다. 고집스럽게 다른 브랜드와 차별의 길을 걸으며 승승장구하는 듯했지만 결국 그 고집이 회사의 발목을 잡았다. 이제는 매장도 쉽게 찾아보기 어려워졌지만, 최근 고객들에게 재도약을 다짐했다. 탄생의 뿌리를 강조하며 태어난 스킨푸드, 이제는 주인을 바꿔 다시 시작점에 섰다.
“재고 없음.”
매장에 물건이 없는 경우는 대개 두 가지뿐이다. 인기가 많아서 물건이 다 팔렸거나, 아니면 곧 망할 회사이거나.
로드숍 화장품 브랜드인 스킨푸드의 난데없는 폐업설이 나돌기 시작한 것도 이때였다. 인기가 많다고 하기에는 지난해 중순부터 제품 대부분이 동났다. 매장에 제품 공급이 제대로 안 된 것이다. 고객은 제품이 없어서 황당하고, 가맹점 주인은 팔지 못해서 난감했다.
수개월 전부터 협력업체는 대금을 정산받지 못하기 시작했다. 가맹점 주는 물건을 팔 수 없어 매장문을 닫아야 했고, 간신히 버티던 곳도 고객들의 외면을 받았다. 그해 초기부터 부실 징후가 급격하게 드러났던 스킨푸드는 2018년 10월 8일, 서울회생법원의 문을 두드렸다.
◇‘1957년’ 전신인 피어리스 화장품의 시작 = 스킨푸드의 시작(?)은 1957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스킨푸드는 매장 간판뿐 아니라 제품마다 ‘SINCE 1957’을 크게 박았다. 다소 불필요해 보이지만 회사의 뿌리를 암시한다. 일각에선 조윤호 전 스킨푸드 대표의 아버지 가업이 시작된 시점을 상징한다고 하지만 이는 사실과 다르다.
스킨푸드의 전신인 피어리스는 1956년 한태경 씨가 일본 피아스와 기술 제휴해 세웠다. 조윤호 전 대표의 아버지인 조중민 전 피어리스 회장도 1957년 당시에는 피어리스와 관계가 없었다. 1975년께 대우그룹이 피어리스에 자금을 지원했을 당시 조중민 전 회장이 사장으로 취임하면서 주인이 바뀌었다. 당시 조 전 회장은 대우그룹 김우중 회장과의 친분으로 취임한 것으로 알려졌다.
조중민 회장이 이끌었던 피어리스는 1980년대 태평양, 한국화장품과 함께 ‘화장품 3인방’으로 통할 정도로 주가가 높았다. 하지만 1990년대 들어서 경쟁사들에 밀렸고, 1997년 IMF 외환위기 이후로 쇠락했다. 무너진 피어리스를 2004년 스킨푸드로 재탄생시킨 주인공이 지금은 대표 자리에서 물러난 조윤호 씨다. 스킨푸드의 ‘1957년’은 가업의 시작이 아니라 최초의 시작을 의미하는 셈이다.
스킨푸드가 뿌리를 강조한 데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사실상 피어리스가 만드는 화장품을 스킨푸드가 팔고 있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파산한 피어리스를 아이피어리스로 이름을 바꿔 주문자상표 부착생산(OEM) 업체로 탄생시켰다. 이를 스킨푸드에 납품하는 자회사로 등록한 것이다. 아이피어리스는 한국콜마와 코스맥스에 이은 국내 3위 OEM 업체로 거듭나기도 했다.
피어리스의 성공처럼 스킨푸드도 초반에는 승승장구했다. 회사 설립 후 5년 만인 2009년 말 기준으로 스킨푸드는 1525억 원의 매출과 205억 원의 영업이익을 기록했다. 이듬해부터 영업이익은 점차 줄어들기는 했어도 매출은 상승곡선을 그렸다. 하지만 그마저도 정체하면서 2013년부터는 꺾이기 시작했다. 쇠락도 성공만큼 빠르게 찾아온 것이다.
매출이 한창 정체했던 시기, 스킨푸드의 고집스러운 정책이 도마에 올랐다. 지금은 어디에서도 찾아보기 어려운 ‘노세일(No Sale)’ 정책이다. 이는 스킨푸드의 대표 마케팅이었다. 타 화장품 브랜드의 경우 수시로 할인을 하면서 고객을 유인했는데, 스킨푸드는 할인하는 대신 애초부터 저렴한 가격으로 승부를 보겠다는 의도였다. 초기에는 ‘가성비가 좋은’ 제품이라는 인식으로 상당히 두꺼운 마니아층을 형성하는 데 일조했다.
◇꿋꿋하게 노세일… 결국 노(No) 세일 = “이렇게 세일을 자주 할 거면 처음부터 그 가격에 팔면 되잖아. 괜히 처음 산 사람들만 손해보게….”
2013년 배우 이종석 씨가 스킨푸드의 광고모델로 있던 시기의 CF 문구 중 하나다. 영업이익이 줄고, 매출이 정체되던 2013년에도 스킨푸드는 이 전략을 고수하고 있었다. 점차 로드숍 브랜드 진출이 늘어나고 경쟁이 치열해지는 상황에서 할인하지 않고 경쟁에서 승리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고객들의 이탈이 커지면서 로드숍 브랜드 3위까지 닿았던 스킨푸드는 다른 경쟁사에 자리를 내주고 말았다.
2013년 30억 원 규모의 영업이익을 거뒀던 스킨푸드는 이것이 마지막 불꽃이었다. 2014년에 영업손실로 적자 전환하기에 이르렀다. 2015년 스킨푸드는 결국 노세일 정책을 폐기하고 세일 경쟁에 나섰다. 초기 천사 이미지가 들어있던 로고가 심플해지고 지금의 모습과 유사하게 변한 것도 이때다. 하지만 변화에도 스킨푸드는 적자 국면을 돌파하지 못했다. 적자 폭을 줄이는 데는 일정 부분 성공했지만, 재무제표에 음수를 기록한 2014년부터 현재까지 양수를 적지 못했다.
회생법원을 찾았던 2018년 10월 10일. 스킨푸드는 경영 악화로 일부 제품의 생산이 중단됐음을 밝혔다. 사실 수개월 전부터 이상 징후가 나타났고 매장에 제대로 물품 공급을 하지 못해온 터였다. 회생절차가 개시되고 11월 28일 생산을 재개했지만 문을 닫은 가맹점 주와 납품 대금을 받지 못한 협력업체의 불만이 상당히 쌓인 상황이었다. 500여 개가 넘었던 스킨푸드 매장은 이 시기에 급속도로 문을 닫았다.
조 전 대표는 법정관리인 지위를 유지하려 했지만 일주일 만에 김창권 전 한국제지 대표이사로 제3자 법정관리인이 선임되면서 대표직 지위를 잃었다. 신임 법정관리인 선임과 동시에 스킨푸드는 신규자금 지원을 통해 운전자금을 확보하면서 생존의 의지를 불태웠다.
회생법원은 2월부터 스킨푸드를 매각하는 방향으로 정하고 인수자를 물색했다. 4개월 후인 6월 12일, 사모펀드사인 파인트리파트너스가 스킨푸드의 우선 협상자로 선정됐다.
인수전에는 엘앤피코스메틱, 토니모리-캑터스PE 컨소시엄, 큐캐피탈파트너스도 참여했지만 파인트리파트너스가 가장 높은 금액을 제시하면서 우선협상자로 선정됐다. 스킨푸드와 OEM사인 아이피어리스에 대해 각각 1776억 원, 224억 원의 몸값이 책정됐다. 이 매각 안을 확정하는 관계인 집회는 8월 중으로 예정됐다.
현재 샛노란 간판의 스킨푸드는 매장을 찾기 힘들 정도로 사세가 줄었다. 강남, 서초 등에는 한 곳의 매장도 없고 그나마 명동 인근이나 대학교 근처에만 간간이 있는 상황이다. 서울을 통틀어 스킨푸드 매장은 총 17곳이다. 경인지역(28곳)과 나머지 지역(48곳)을 포함하면 전국에 스킨푸드 매장은 93개로 100곳이 채 되지 않는다.
2016년 590개까지 늘어났던 매장은 3년도 안 돼서 6분의 1 수준으로 줄었다. 스킨푸드는 이런 악조건의 상황에서 다시 고객을 확보해야 하는 숙제가 남았다. 사업 초기의 시점으로 돌아간 셈이다.
여전히 스킨푸드의 제품을 찾는 고객은 많다. 기업회생 절차에 들어선 후 스킨푸드가 사라질 것을 우려한 고객들이 난데없이 제품을 사재기했고, ‘망하기 전에 사야 할 제품’ 리스트가 SNS상에서 돌아다닐 정도로 제품에 대한 충성도는 높다. 스킨푸드는 5월 중 이러한 논란에 대해 사과문을 내걸고 이벤트를 진행했다. 스킨푸드 측은 “그동안 ‘피부에 양보하지 못한 죄’와 ‘금전적 부담을 안겨드린 죄’를 사죄한다”며 경영이 정상화됐음을 알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