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이 한국을 화이트리스트(백색국가)에서 제외하기로 2일 결정한 가운데, 수출 규제가 시행되는 28일 이전 부품·소재를 확보하기 위해 기업들이 안간힘을 쓰고 있다.
일본은 이번 조치에 대해 수출 규제가 아니라, 다른 용도로 쓰일 가능성이 있는 것에 대해 철저히 조사한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결국 수출허가 심사 기간을 의도적으로 지연시키거나, 허가가 나지 않는 사례가 발생할 가능성이 크다.
이미 앞선 규제 대상인 반도체 소재가 지난 한 달간 1건의 수출허가도 받지 못했다. 일본의 반도체 소재 수출규제가 반영된 지난 7월 한국의 대일 수입은 지난해 같은 달 대비 9.4% 감소했다.
이번 화이트리스트 제외로, 업종별로는 반도체·디스플레이와 함께 일본 의존도가 높은 공작기계, 정밀화학 및 미래 산업인 자동차 배터리 등에서 물량 확보에 어려움을 겪을 것으로 보인다.
기업들은 불확실성을 조금이라도 줄이기 위해 규제 시행 전 재고 쌓기에 전력을 기울이고 있다.
삼성전자를 중심으로 산업계는 적게는 3개월, 많게는 6개월 치의 일본산 부품 재고를 확보하기 위한 비상경영체제를 가동 중이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수출규제 직후인 지난달 7일 일본 출장길에 올라 수출규제 대상인 핵심 소재 3종 물량을 일부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전자는 협력사에도 공문을 보내 “90일치 이상의 일본 부품과 소재 재고를 확보해 달라”고 요청했다.
명노현 LS전선 사장도 최근 일본을 방문해 현지 업체들과 만나 소재 수급 상황에 대해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LS전선이 일본에서 수입하고 있는 17개 소재 중 9개 품목의 경우, 수입선 대체가 어렵다.
LS전선 관계자는 “일본의 수출 규제로 당사가 받을 피해는 여타의 다른 업종과 비교했을 때 크지는 않다”면서도 “공급선 다변화 등을 통해 핵심 소재 6개월 치를 확보할 계획”이라고 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국내 기업들은 지난달 실적발표 콘퍼런스콜에서 “소재 재고를 적극 확보하면서도 생산에 차질이 없도록 최선을 다하고 있다”면서도 “불확실성이 있어서 향후 방향에 대해 가늠하기 어렵다”고 밝힌 바 있다.
수개월 치 물량을 미리 확보할 경우, 산업 현장이 당장 ‘올스톱’ 되진 않겠지만 재고 물량 소진 이후가 진짜 문제다. 일본 정부 입맛에 따라 이르면 3개월 후부터 국내 기업들 생산이 차질을 빚을 가능성이 있다.
재계 관계자는 “사태가 장기화할 경우, 공급선 다변화 외에는 뚜렷한 해법이 없다”면서도 “일단 최대한 재고를 많이 확보해 급한 불을 끄고, 향후 대책을 마련할 시간을 버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