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기 전북대 중문과 교수
우리는 남에게 빌붙어서 온갖 더러운 일을 맡아 처리해 주고서 그 대가로 살아가는 사람을 비하하여 말할 때 흔히 ‘따까리’라고 한다. 국어사전은 ‘따까리’를 “자질구레한 심부름을 맡아 하는 사람을 속되게 이르는 말”이라고 풀이하고 있다. ‘따까리’는 ‘뒤치다꺼리’로부터 파생된 말이다. 남이 저질러놓은 부정한 일을 자원하여 뒤치다꺼리해주는 사람을, ‘뒤치다꺼리’에서 뒤의 세 글자만 취하여 ‘다꺼리’로 부르던 것이 ‘다’가 경음화하여 ‘따’로 변하고 ‘꺼’가 ‘까’로 음운 변화를 일으켜 ‘따까리’라는 말이 생겨나게 된 것이다. 물론 이 말은 함부로 사용해서는 안 되는 비속어이다.
남이 좋은 일을 하려다가 맞은 어려운 상황을 내 일처럼 여기며 성의를 다해 돌봐주는 것은 매우 좋은 일이다. 그러나 나쁜 짓을 하다가 엉뚱한 큰일을 저지른 사람을 뒤치다꺼리하기 위해 폭력배를 동원하거나 사기를 치는 등 부당한 방법을 사용하는 것은 매우 나쁜 짓이다. 따까리를 고용하여 그런 뒤치다꺼리를 시키는 사람도 나쁜 사람이지만, 자원하여 그런 뒤치다꺼리를 해주고 대가를 받아 생활하는 따까리는 더욱 나쁜 사람이다. 그런데 우리 사회에는 그런 따까리를 부리는 사람도 있고, 권세 있고 돈 있는 사람의 따까리로 사는 것을 오히려 자기에게 권세가 있고 돈이 있는 양 누리면서 사는 한심한 따까리도 있다.
우리 역사상 가장 더러운 따까리는 항일시대에 부와 권력을 쥔 일본 사람의 따까리가 되어 개처럼 살면서 동족을 해코지하고 독립지사들을 밀고한 대가로 호의호식한 사람들이다. 광복 후에 이승만이 그런 따까리들을 처단하지 않고 오히려 중용한 탓에 지금도 우리는 그 후유증을 앓고 있다. 그러나 이제는 자연스럽게 그런 따까리들을 응징할 때가 되었다. 누가 일제의 따까리였는지를 국민들이 거의 다 알고 있다. 눈여겨 두었다가 기회가 있을 때마다 조용히 솎아내면 된다. 지금이야말로 민주 국민의 역량을 보여줄 때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