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효영 부국장 겸 유통바이오부장
불매운동 초기에 유니클로 일본 임원이나 지난주 화장품업체인 DHC의 임원이 한국은 냄비처럼 끓었다 금세 식는다며 한국 불매운동을 비하하는 발언을 해 불매운동 분위기에 기름을 끼얹는 역할까지 톡톡히 했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기업 국적 논란이 재연되고 있어 안타깝다. 지배구조상 일부 일본 지분이 섞여 있다는 사실만으로 다이소, 쿠팡, 세븐일레븐, 롯데까지 불매운동 대상 기업으로 거론되고 있어서다.
기업의 국적을 가르는 문제는 해묵은 논쟁거리이지만, 글로벌 시대에 국적을 따지는 것 자체가 무의미해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세금 감면 등을 이유로 본사를 해외로 옮기는 기업들이 늘고 있고 인수합병·투자유치 등을 통해 하시라도 최대주주가 바뀔 수 있다. 전문가들은 대체로 주주들의 국적, 지배구조, 본사의 소재지, 공장 소재지, 기업의 국가별 매출 분포, 납세 위치, 국가별 고용 분포 등의 요소를 기업 국적의 분류 기준으로 삼는다.
특히 이번 논란의 핵심에 자리 잡은 곳이 쿠팡과 롯데다.
쿠팡은 재일교포 기업인인 손정의 일본 소프트뱅크 회장이 이끄는 소프트뱅크비전펀드(SVF)가 투자했다는 점이 일본 기업이라는 빌미를 제공했다. 쿠팡은 일본 기업이라는 주장에 대해 입장문을 발표해 “한국에서 설립됐고 사업의 99% 이상을 국내에서 운영하고 있으며 직간접 고용 인원이 2만5000명, 연간 1조 원의 인건비를 지급한다”며 적극적인 해명에 나섰다. 심지어 손정의 회장은 일본에선 한국 기업인이라며 불매운동 대상에 오르기도 한다. 쿠팡 측은 “경계인으로 살아온 손 회장이 한국에서도, 일본에서도 치인다는 건 말이 안 된다”라는 입장이다.
쿠팡은 미국에 본사를 둔 쿠팡LLC가 100% 지분을 갖고 있으며 쿠팡LCC의 최대주주가 SVF다. 비상장사인 쿠팡의 정확한 지분율은 공개된 적이 없지만 업계에서는 소프트뱅크(일본계), 미국계, 한국계 등이 엇비슷하게 3등분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한다.
쿠팡보다 국적 논란이 더 억울하고 불편한 곳이 롯데다. 잊을 만하면 논란에 시달려온 롯데는 중국의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보복으로 피해를 본 대신 국가 안보에 도움이 되는 진정한 한국 기업으로 자리 잡았다 생각했는데 다시 원점으로 회귀한 분위기여서다. 롯데 역시 일본에서는 한국 기업으로 분류되며 일본 우익 사이에서 불매운동 조짐이 보이기도 한다. 한·중·일 3국 모두에서 3중고를 겪고 있는 셈이다. 롯데 측은 “사드 보복으로 어려움을 겪던 롯데와 불매운동 기류에 휩싸운 현재의 롯데는 지분구조나 그룹 상황이 크게 달라진 점이 없다”면서 “사드 배치도, 한일관계 악화 국면도 롯데가 직접적인 연관이 없는데 롯데를 바라보는 시각이 달라져 곤혹스럽다”고 밝혔다. 롯데 관계자는 “한국 직접 고용인원이 13만 명, 지난해 한국에 낸 법인세가 1조5800억 원이다. 한국에서 고용을 창출하고 세금을 내는데 어떻게 한국 기업이 아닌가”라고 반문했다.
불매운동이 장기화하고 광범위하게 확산하면서 급물살에 휩쓸리다 보면 조준한 기업뿐 아니라 잘못 조준한 기업까지 떠내려갈 수가 있다. 가뜩이나 일본의 무역보복 조치가 우리 경제를 어디로 끌고갈지 불확실성이 높아진 상황에서 우리 내부에서 기업들을 벼랑 끝으로 떠밀어선 안 될 일이다. 오죽하면 불매운동 후폭풍으로 회장이 전격 사퇴한 한국콜마의 10년 차 직원이 온라인 커뮤니티에 “일터를 지키고 싶다”고 호소했겠는가.
롯데나 쿠팡 등을 일본 기업으로 낙인찍는 이들도 롯데나 쿠팡이 이 나라를 정말로 떠나길 원하는 건 아닐 것이다. 그들이 창출한 수만 명의 일자리와 수조 원의 세금이 사라져도 좋다고 생각하진 않을 것이다. 앞만 보고 내달리던 반일(反日) 분위기에서 좌우를 살펴볼 시점이 됐다.
또한 이들 기업도 법률적으로, 경제적으로 한국 기업임에 분명하지만 정서는 그렇지 않을 수 있다는 점을 인정할 필요가 있다. 소비자들과 접점에 있는 기업들인 만큼 소비자 정서가 경영에 얼마나 중요한지 뼈저리게 느꼈을 터이다. 결국 이들 기업이 꾸준히 시간과 노력을 투자해 소통하며 풀어야 할 숙제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