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江南)’. 글자 그대로 강의 남쪽을 일컫는 말입니다. 강이 있는 지역에서는 어디서나 쓸 수 있는 말이지만 한국에서는 서울의 ‘한강 남쪽’ 특정 지역을 일컫는 말입니다.
가장 좁게는 강남대로를 위시한 강남역 일대 번화가를 일컫기도 하지만, 부동산 시장에서 가장 흔하게 쓰이는 용례는 집값이 비싼 3개의 자치구를 의미하는 경우입니다.
'서초구', '강남구', '송파구'. 이른바 강남 3구입니다.
◇점점 넓어지는 ‘강남’의 의미
강남이란 단어는 이미 우리 사회에서 ‘기득권’, ‘부유층’을 상징하는 지명으로까지 자리매김했습니다. 이에 따라 하나의 특권이 된 ‘강남’이란 단어에 속하고 싶어하는 지역들도 늘어나게 됐죠.
일반적으로는 ‘강남 3구’를 말하던 ‘강남’이란 단어에 최초로 ‘강남 4구’라는 인식을 대중적으로 심어준 지역은 강동구였습니다. 지리적으로 서초-강남-송파에 연이어 위치한 입지 덕에 자연스럽게 가장 먼저 확장되는 ‘강남’의 의미에 합류할 수 있었습니다.
‘강남 4구’라는 조어의 확산에 고무된 것인지, ‘강남 5구’라는 단어를 밀고 있는(?) 동작구도 있습니다. 역시 강남 3구의 서쪽으로 인접해 있는 지리적 이점을 활용한 조어입니다.
강동구를 대표하는 고가 아파트 밀집지역은 고덕동, 동작구에서는 흑석동이 있습니다. 부동산 정보 애플리케이션 호갱노노에 따르면, 이들 행정동은 평균 아파트 매매가가 10억 원을 넘어섰습니다.
더 나아가면 ‘준강남’이라는 말도 있습니다. 보통 이 단어가 쓰이는 지역은 경기도의 부동산 라이벌로 일컬어지는 ‘과천’과 ‘분당’입니다. 이들 지역은 강남과의 교통 인접성이 ‘강남’이라는 이름을 붙이는 데 크게 기여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이들 지역의 10억을 넘나드는 아파트 매매가 시세 역시 한몫을 했습니다.
◇이들은 진짜 강남인가?
결론부터 말하자면 강남 4구, 5구, 준강남은 모두 실제 강남 3구와는 제법 격차가 큽니다.
KB국민은행에서 매월 조사하는 주택가격동향을 살펴보면 지난 8월 서울의 3.3㎡당 평균 아파트 가격은 3164만 원입니다.
하지만, 강남 3구는 서울 평균과는 격이 다른 가격대를 보여줍니다. 3.3㎡당 평균 아파트 가격은 가장 비싼 강남구의 경우 6115만 원, 서초구는 5289만 원, 송파구는 4026만 원으로 각각 조사됐습니다.
이에 비해, 강남 4구라는 강동구의 경우 3.3㎡당 2909만 원, 동작구는 3144만 원으로 오히려 서울 평균 단위면적당 매매가에도 못 미치는 모습입니다.
‘준강남’이라고 하는 두 지역을 살펴보면, 과천은 3.3㎡당 4515만 원으로 비교적 선방했다고 하더라도, 분당은 3129만 원으로 동작구와 비슷한 수준에 머물러 있습니다.
이런 현상이 발생하는 이유는 간단합니다. 서울엔 강남 3구 외에도 강동구나 동작구보다 집값이 높은 지역이 있기 때문입니다.
마포구, 용산구, 성동구를 줄인 이른바 ‘마‧용‧성’이라는 강북의 3대 부촌 명칭은 이런 맥락에서 등장했습니다. 실제로 마포구, 용산구, 성동구의 평균 아파트 가격은 3.3㎡당 약 3400만~4200만 원의 가격대로 동작구, 강동구를 한참 웃도는 시세를 형성하고 있습니다.
강북에 위치해 있어 강남과의 접점이 별로 없는 이들 지역도 역시 부촌이라는 인식이 퍼져감에 따라 새롭게 만들어진 단어인 셈이죠. 이젠 강북에서 집값이 높은 광진구까지 여기에 묶여 불리고자 ‘마‧용‧성‧광’이라는 조어까지 등장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강남 n구’, ‘준강남’ ‘마‧용‧성’과 같은 말들은 모두 집값에 미치는 영향이 큰 단어들입니다. 집값이 월등히 높은 지역에는 이같은 이명이 붙고, 그 이명이 다시 집값을 높이는 견인차 역할을 하는 식의 순환적인 집값 상승 효과가 일어나는 식입니다. 이같은 효과를 노리고 업계에서는 새로운 조어를 만들거나, ‘강남 n구는 이 곳’이라는 식의 홍보를 시도하는 일도 점차 늘어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