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IT 업계의 살아 있는 성공 신화 마윈(영문명 잭 마, 55) 알리바바그룹 회장이 경영일선에서 물러난다.
제리 양 없는 야후, 스티브 잡스 없는 애플, 빌 게이츠 없는 마이크로소프트(MS). 그리고 마윈 없는 알리바바. 상상이나 할 수 있을까.
마 회장과 알리바바그룹의 예고된 이별에 중국 재계 안팎에서 우려의 소리가 나온다. 1999년 중국 남부 항저우의 아파트에서 구멍가게처럼 시작한 알리바바를 20년 만에 시가총액 약 5000억 달러(약 596조 원)의 공룡 기업으로 일궈낸 혁신의 아이콘의 부재에 시장은 벌써부터 지레 겁먹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마 회장은 알리바바 창사 20주년이자 자신의 55세 생일인 10일에 회사와 작별을 고했다. 회사는 창사 20주년과 그의 은퇴를 겸해 중국 저장성 항저우시 올림픽경기장에서 직원 수 만명이 지켜보는 가운데 거한 고별식을 열었다.
마 회장은 내년 7월 주주총회까지 이사직은 유지할 예정이지만, 세계적인 비즈니스 리더이자 카리스마 넘치는 존재감을 발휘해온 마 회장의 은퇴로 중국 재계의 간판 자리는 당분간 공백이 불가피할 것이라는 관측이다. WSJ는 “중국 재계에 마 회장을 대신할 사람은 없다”며 “그런 인물이 재등장하기까지 오랜 세월이 걸릴 것”으로 내다봤다.
마 회장의 전기 ‘알리바바, 마윈이 지은 집(Alibaba: The House That Jack Ma Built)’을 집필한 던컨 클라크는 “잭은 경영과 기술, 재무에 대한 전문 자격을 갖추지 않아 대니얼 장(현 알리바바 CEO) 같은 유능한 전문가를 항상 갈구해왔다”며 “그래서 은퇴를 아주 오랫동안 계획해왔다”고 말했다.
중국 기업의 특성 상 마 회장의 은퇴 시기가 유독 이른 건 사실이다. 클라크는 창업자 숭배와 경영의 대물림 문화가 강한 중국에서 50대 중반의 나이에 물러난다는 건 이례적이라고 말한다.
더구나 알리바바는 현재 최고의 전성기를 누리고 있다. 마 회장의 리더십 하에 알리바바는 시가총액 4460억 달러의 거대 기업으로 성장했고, 매년 11월11일 돌아오는 ‘독신자의날’ 하루 매출은 308억 달러까지 늘었다. 또 글로벌 마케팅그룹 WPP와 산하 리서치업체 칸타가 선정한 올해 ‘세계에서 가장 가치 있는 소매 브랜드(미국 제외)’로 선정되기도 했다.
알리바바 산하 금융사 앤트파이낸셜은 중국 2위 모바일 결제서비스 업체로 자리를 굳혔고, 클라우드 사업은 시작한 지 10년도 안 돼 세계 시장 점유율 3위로 부상했다.
여기다 올해 초에는 중국 정부의 ‘반도체 내제화 정책’에 부응해 자체 개발한 첫 반도체 칩을 발표하고, 현재도 인공지능(AI) 사업을 집중적으로 키우고 있다. 홍콩 영자지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 같은 언론사도 품었다.
투자자와 애널리스트들은 미중 무역 전쟁과 중국 경제 둔화 속에서 앞으로 이 거대한 기업이 어떻게 나아가야 할지, 징둥닷컴 등 중국 경쟁자들과의 싸움을 어떻게 이끌어 가야 할지 걱정이 앞선다고 입을 모은다.
그러나 교육자로서의 꿈을 이루기 위해 알리바바를 떠나는 마 회장의 앞길을 축복해줄 수밖에 없다. 마윈은 “영어교사로 일하면서 한 달에 고작 12달러를 벌었을 때가 더 행복했다”고 누차 말해왔기 때문이다.
섣부른 우려는 금물이라는 견해도 있다. 베이징대학의 제프리 토슨 교수는 “팀 쿡이 스티브 잡스로부터 바통을 이어받았을 때 애플의 혁신이 멈췄고, 스티브 발머가 빌 게이츠로부터 CEO 자리를 넘겨받았을 때 갈 길을 잃었다”며 “그러나 알리바바는 후임에게 성공적으로 경영권을 물려준 몇 안 되는 회사 중 하나”라고 평가했다. 알리바바는 마윈과 그의 뒤를 이을 후계자 장 CEO 콤비가 시너지를 내면서 번영해왔기 때문이다.
현재 47세인 장 CEO는 2015년 5월 마 회장의 후계자로 지명됐고, 독신자의날을 세계적인 쇼핑 축제로 키운 것도 그의 작품이었다. 마 회장이 떠나도 알리바바는 건재하다는 것이다.
마 회장은 지난해 주주 서한에서 “인간의 능력과 에너지는 육체적 한계가 있기 때문에 아무도 회장과 CEO를 영원히 할 수는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교육계로 돌아가고 싶다. 이게 내가 하고 싶은 일이고, 행복한 마음으로 잘 해내고 싶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