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확장재정으로 재정 악화에 대한 우려가 커지면서, ‘증세(增稅)’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국책연구기관에서 제기됐다. 한국조세재정연구원은 3일 내놓은 ‘2020년 예산안 및 2019∼2023년 국가재정운용계획 평가’ 보고서에서 “증세를 위한 정치적 합의가 이뤄져야 한다”고 밝혔다. 연구원은 “우리 조세부담률이 다른 나라에 비해 낮다”며 “국제통화기금(IMF) 및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재정확대 권고도 여기에 기반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소득주도성장특별위원회와 조세재정연구원이 지난달 23일 개최한 토론회에서도 증세의 불가피성이 강조됐다. 국가채무 증가 때문이다. 내년 예산안의 재정적자는 72조1000억 원으로 국내총생산(GDP)의 3.6% 수준이다. 국가채무는 내년 GDP 대비 40%를 넘고, 2023년 46% 이상으로 악화할 전망이다.
하지만 경기 침체 장기화로 세수는 쪼그라들고 있다. 기획재정부는 내년 국세수입을 올해(294조7919억 원)보다 0.9% 줄어든 292조391억 원으로 전망했다. 국세수입 감소는 2013년 이후 7년 만에 처음이다.
더욱이 정부의 재정운용계획이 우리 경제를 지나치게 낙관적으로 보고 지출을 늘린 것으로 지적됐다. 국회예산정책처의 ‘2020년도 예산 총괄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올해 국세와 기금운용수입 등 총수입은 471조 원으로 정부가 예상한 476조4000억 원보다 5조4000억 원 적다. 내년에는 총수입이 477조2000억 원으로 정부 전망치인 482조 원에 비해 4조8000억 원 줄어들 것으로 내다봤다. 정부는 올해 경상성장률(실질경제성장률+물가상승률)을 3.0%, 내년 3.8%로 잡은 반면, 예산정책처는 악화된 경제여건을 반영해 올해 2.1%, 내년 3.5%로 예측한 데 따른 것이다.
이 같은 수입과 지출 격차는 더 커질 가능성이 높다. 수출 감소와 투자·소비 부진이 지속되면서 우리 경제성장률은 올해 1%대로 추락하고, 내년 개선전망도 어둡다. 물가상승률 또한 3개월째 마이너스 또는 0%대로 디플레이션 우려까지 나온다. 재정악화 속도가 가팔라질 수밖에 없다. 정부로서는 증세밖에 길이 없다. 물론 내년 총선을 앞두고 세금을 늘리겠다는 얘기는 어렵다. 홍남기 경제부총리도 국회 답변에서 “증세는 고려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증세 없는 재정확대는 불가능하다. 최악의 경기흐름을 되돌리기 위한 재정의 역할 또한 크다. 문제는 확대일변도의 재정이 제대로 쓰이느냐 하는 점이다. 내년 정부예산안 513조5000억 원 가운데, 보건·복지·노동분야만 181조6000억 원으로 전체의 35.4%다. 넓은 범위의 복지지출로, 민간 활력을 살리고 성장을 견인하는 경기마중물로 보기 어려운 소모적 선심 예산이다. 증세를 말하기 앞서, 돈이 허투루 새는 것부터 막는 지출 구조조정이 급선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