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설실장
2017년 5월 10일 문 대통령 취임사의 울림은 컸다. 전임 대통령 탄핵에 따른 국민들의 상처를 치유하고, 목마른 공정의 가치를 세우겠다는 약속 때문이었다. 취임 일성은 “나라다운 나라,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나라를 만들겠다”였다. 문 대통령은 “차별없는 세상, 특권과 반칙 없는 세상, 상식이 이득 보는 세상”을 말했다. 또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할 것이며, 결과는 정의로울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리고 2년 반 적폐청산에 매달렸다. 정권의 가치가 지금 어떤 의미를 갖고 있는가? 약속은 얼마나 실천됐고, 과거 정권 때보다 무엇이 어떻게 좋아졌는가? 많은 사람들의 좌절과 실망이 넘친다. 소리 높여 외친 공정과 정의의 원칙, 그 상식이 지켜질 것이란 당연한 기대는 허망했다. ‘조국 사태’가 똑똑히 실감하게 해주었음에 더 무슨 말이 필요한가.
문제는 역시 경제다. 문 대통령은 가장 먼저 ‘일자리 정부’와 비정규직 제로(0)를 선언했다. 소득주도성장을 간판으로 삼고 최저임금 대폭 인상, 근로시간 단축, 법인세 인상 등을 밀어붙였다. 하지만 이념으로 시장을 제어하겠다는 방향부터 잘못됐다. 임금 올려 경제를 키우고, 분배와 복지로 성장한다는 설계는 꿈이었다. 많은 경제학자들이 “마차가 말을 끌 수 없다”고 비판했다. 200여 년 축적되고 실증된 경제학의 보편적 원론(原論)을 부정하는 엉터리라고 했다. 소득주도성장이 옳은 길이라면, 포퓰리즘으로 나라 말아먹은 베네수엘라가 선진국이 돼야 했고 가난한 나라는 없어야 한다.
성적표는 참담하다. 매년 30만∼40만 명씩 늘던 취업자가 작년 10만 명 아래로 줄었다. 올해 숫자로 늘지만, 세금 쏟아부어 억지로 만든 노인들의 알바성 일자리만 급증했다. 9월 고용통계에서 양질의 제조업 취업자가 18개월째 줄었다. 경제활동의 허리인 30∼40대 근로자도 24개월 연속 감소했다. 결과는 정부 의지와 거꾸로 간 비정규직의 유례없는 폭증(暴增)이다. 8월에 비정규직은 작년 같은 기간보다 86만7000명 늘고, 정규직은 35만3000명 줄었다. 정부는 통계 기준 변경 때문이라지만 핑계다. 분명한 사실은 민간기업 일자리가 만들어지지 않고, 고용의 질이 계속 악화하고 있다는 점이다.
취업난이 심각해지면서, 정부는 재정으로 단기 일자리 만들기에만 급급해 비정규직이 늘어나는 악순환이다. 최저임금 인상이 취약계층 일자리와 자영업 붕괴를 불러오고, 소득분배 악화로 빈부 격차는 더 벌어졌다. 경제 버팀목인 수출이 11개월째 줄었다. 투자와 생산, 소비 또한 바닥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올해 우리 경제성장률은 1%대 추락이 불가피하다. 과거 오일쇼크, 외환위기, 글로벌 금융위기 때 말고 가장 낮다. 대외 변수 탓만이 아니다. 한국 경제가 한 번도 겪어보지 않은 마이너스 물가까지 겹쳐, 최악의 디플레이션에 대한 우려마저 높아진다.
부동산 시장도 엉망이다. 정부가 “투기로 돈 버는 사람 없도록 하겠다”며 쏟아낸 부동산 대책만 십여 차례이고, 셀 수 없는 규제가 작동하고 있다. 반(反)시장의 강도 높은 민간아파트 분양가 상한제까지 되살렸다. 지금 집값이 잡혔고, 내집 마련이 조금이라도 쉬워졌는가? 전방위 폭격을 퍼부었는데 지난 2년 서울 강남 집값은 역대 가장 큰 폭으로 뛰었다. 정말 투기 때문인지 의문이다. 뭐가 문제인지 정부만 모르는 것 같다.
다른 것 다 잘해도, 경제가 망가지고 국민 살림살이가 더 힘들어지면 모든 것의 실패로 귀결된다. 우리 모두 성공한 정권을 열망한다. 그러나 지금 대통령과 정부가 무엇을 보는지 알기 어렵다. 남은 시간이 별로 없고 경제의 상식을 되찾아야 하는 길은 뻔한데, 마주한 진실을 외면하고 감추면서 거꾸로 간다. 국민 불안만 커진다. kunny5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