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외 대기업 보조참가인 참가…변호사 49명 투입
4일 법원은 2년 10개월의 심리 끝에 다국적 통신업체 퀄컴이 시장지배적 지위를 남용해 불공정 거래 행위를 했다고 봤다. 공정거래위원회의 1조300억 원 과징금 처분이 정당하다고 판단했다.
이번 사건은 ‘세기의 재판'으로 불린다. 과징금 규모도 천문학적이지만, 공정위 측 보조참가인으로 화웨이와 인텔, LG전자, 대만 미디어텍 등 국내외 대기업이 대거 이름을 올렸다. 애초 삼성전자, 애플도 보조참가인으로 참여했으나 퀄컴과 라이선스 계약을 확대 체결하면서 철회했다. 변호인단도 화려하다. 퀄컴 측은 세종ㆍ화우ㆍ율촌 3개 소속 변호사 22명, 공정위 측은 태평양ㆍ광장ㆍ바른ㆍ지평 등 변호사 27명이 투입됐다.
퀄컴이 세계 휴대폰 시장에서 차지하는 지위를 반영한 듯 관련 업계의 시선도 이날 법정으로 쏠렸다. 1라운드는 퀄컴이 사실상 완패했다. 퀄컴 측이 상고할 가능성이 큰 만큼 이제 시선은 대법원에 쏠린다. 공정거래 사건은 다른 재판과 달리 서울고법이 1심 재판을 맡고, 대법원이 2심 재판을 맡는 2심제로 진행된다.
서울고법 행정7부(재판장 노태악 부장판사)는 4일 퀄컴테크놀로지 인코포레이티드 등이 공정위를 상대로 낸 시정명령 등 취소소송에서 피고 측에 손을 들어줬다.
공정위는 2016년 12월 퀄컴이 이동통신 관련 표준필수특허(SEP)의 독점적 지위를 남용했다며 1조300억 원의 과징금을 부과했다. 공정위는 △불공정 거래 관행 시정 △특허 이용 기업과 퀄컴 간 사업계약 재협상 이행 등 시정명령도 내렸다.
공정위는 퀄컴이 2만5000여 개의 특허권을 가지고 휴대폰 부품 시장에서 다른 업체의 기술 혁신을 고의로 방해한 것으로 판단했다. 삼성ㆍ인텔 등 칩셋사가 계약 체결을 요구하면 이를 거부하거나 판매처를 제한하는 등 실질적인 특허권 사용을 제한한 것으로 봤다.
퀄컴 측은 “공정위 처분은 사실관계나 법적 근거 측면에서 모두 부당하고, 절차상의 문제도 있다”며 2017년 2월 법원에 소송을 냈다.
재판에서는 △퀄컴의 시장지배적 사업자 지위 여부 △비차별적 특허 제공 프랜드(FRAND) 확약 위반 여부 △포괄적 라이선스로 휴대폰 제조사에 불이익 강제 위법 여부 등 크게 세 가지가 쟁점이 됐다.
재판부는 먼저 퀄컴이 이동통신 SEP 라이선스와 모뎀칩셋 상품에 있어 세계 시장에서의 시장지배적 사업자 지위를 갖춘 점과 휴대전화 제조사들에는 거래상 우위에 있었다는 점을 인정했다. 이런 지위를 남용해 칩셋과 휴대전화 제조사에 특허권 사용을 제한하고 불공정 계약을 맺도록 한 행위를 했다는 것이다.
재판부는 “거래상 우위를 남용해 휴대전화 제조사에 불이익한 거래를 강제하고, 부당하게 경쟁을 제한한 점도 인정된다”며 “이와 관련한 공정위의 시정명령은 적법하다”고 밝혔다.
다만 재판부는 휴대폰 제조사와의 라이선스 계약에서 포괄적 라이선스, 휴대폰 판매가격 기준 정률 실시료, 크로스 그랜트(해당 업체의 라이선스를 무상으로 사용하는 것) 조건 부가 행위에 대한 지위 남용이나 불공정 거래행위는 인정하지 않았다.
재판부는 퀄컴의 시장지배적 지위 남용과 관련한 상품시장은 표준필수특허(SEP) 시장 및 모뎀칩셋 시장에만 해당된다고 봤다. 또 크로스 그랜트 조건 자체가 휴대폰 제조사에 불이익하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결국 재판부는 공정위의 시정명령 10개 가운데 4개를 취소하고, 1조300억 원의 과징금 부과에 대해서는 공정위의 처분이 옳다고 봤다.
재판부는 “크로스 그랜트 조건 부가 등 행위에 대한 공정위 처분을 위법하다고 보더라도 다른 행위를 토대로 산정한 과징금은 위법성 판단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며 “공정위의 과징금 처분이 재량권을 일탈ㆍ남용한 위법이 없다”고 판시했다.
한편 공정위는 이번 판결 직후 “포괄적 라이선스 등과 관련한 일부 시정명령이 위법이라는 판결을 받았지만, 과징금 부과 처분은 모두 정당하다는 결론이 나왔다”며 “향후 진행될 상고심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