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국대 국제통상학과 교수
뱅크오브아메리카/메릴린치(BoAM)의 최근 리포트는 2020년대 메가트렌드로 세계화의 쇠퇴, 경기침체, 통화정책의 한계, 고령화 진전과 신흥시장 중산층의 부상 등 인구통계학적 변화, 기후변화, 로봇 사용과 자동화의 확대, 중국의 발전에 따른 스플린터넷(splinternet) 격차의 해소, 주주를 넘어선 이해관계자 전체의 이익을 고려해야 하는 도덕적 자본주의, 똑똑한 모든 것과 우주 등 10가지를 꼽았다.
정치적으로는 미국의 유럽 등 동맹 무시와 고립주의 회귀, 동아시아에서 한-미-일 삼각동맹 요구와 이에 대응하는 북-중-러의 연합 등 새로운 판짜기가 진행되었다. 미국의 대외정책에서 동아시아 비중이 커진 배경에는 셰일혁명으로 인한 에너지 자립과 중동 중시 필요성의 감소가 큰 요인으로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정치적·경제적 트렌드가 우리에게 주는 도전은 대국 사이에 낀 소국 개방경제로서 이를 일방적으로 수용해야 하는 입장이라는 점에서 위중하다. 이러한 추세에 잘못 대응하면 1세기 전 당했던 망국의 치욕을 반복하게 될 우려가 크기 때문이다.
우선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각국 중앙은행의 양적완화 정책으로 인한 풍부한 유동성과 저금리는 세계적 부채 위기를 촉발할 가능성이 높으며, 1단계 합의까지 1년 반이 넘게 끌어온 미-중 간의 무역전쟁은 우리 수출에 직격탄을 날리는 결과를 초래하고 있다. 2018년 우리 대법원의 징용배상 판결은 수출규제라는 통상문제로 비화하여 일본과 전례 없는 경제적 갈등 상황을 연출하고 있고, 미국의 일방적 경제조치는 각자도생의 개별 국가주의로 동맹의 와해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작년 5월 한국개발연구원(KDI) 보고서는 2020년대 지속적 혁신을 통한 생산성 향상이 없는 한 우리 경제의 성장률이 1% 후반대에 머물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았다. 이에 덧붙여 혁신을 전제할 경우에도 2% 초중반 수준이 될 것이라고 예상하였다.
높은 성장률이 필요한 이유는 나눠 줄 파이가 크기 때문이고, 이는 ‘혁신’에 의해서만 가능하다는 점에서 성장과 혁신은 형제간이다. 그러나 우리 경제에서 혁신은 기존 이해관계 집단의 반발로 번번이 무산되고 있으며, ‘원칙규제, 예외허용’의 규제체제는 혁신을 포획하는 ‘덫’으로 작용하고 있는 현실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2020년대 우리 경제의 대응 방향은 다음과 같은 두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는 혁신 장려를 통한 요소생산성의 증대이며, 두 번째는 급속도로 진행되고 있는 고령화 대응이다.
1990년대 실질 국내총생산(GDP) 7%대의 성장을 기록하였던 우리 경제는 2010년대 3%로 떨어졌고 여기에 가장 크게 기여한 것이 총요소생산성(TFP: 2.0%→0.7%)과 물적 자본, 즉 투자의 하락이었다(3.8%→1.4%). 한편, 투입요소로서 노동은 1.0%에서 0.8%로 소폭 하향하였다.
그러나 2020년대에는 역사상 유례없이 진전되고 있는 고령화의 진행으로 노동의 성장 기여율은 더욱 낮아질 것이므로 유일하게 남아 있는 정책수단이 혁신의 장려를 통한 요소생산성 증대이다.
혁신은 자유로운 경제활동 보장으로부터 나온다. 계층 간 격차와 불공정은 사회적 신뢰를 저해하여 거래비용을 상승시킨다는 점에서 성장의 장애로 지적되어 왔다. 그러나 이들 경제학의 난제도 결국 자유로운 경제활동의 결과 성장의 과실로 발생한 것이므로, 공정성의 보장과 격차의 해소는 사후적 사회정책적 차원에서 해결해야 하는 것이 맞다. 사회정책은 장애자와 어쩔 수 없는 사정으로 경제활동에 참여하지 못하는 계층에 대한 경제적 지원이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우리 사회 고령화에 대한 대응은 전문인력 이민의 수용과 고령 인력에 대한 일자리별 비교우위에 따른 배분으로 해결 가능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