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줄 새는 국민혈세 ‘연 2억’…정권 입김에 기관들 ‘좌지우지’
본지는 국내 금융공기업과 국책은행의 2010년부터 2019년까지 10년간 ‘연도별 임원추천위원회(이하 임추위) 구성현황’ 자료를 확보했다. 10년간의 데이터를 살펴본 결과 기관의 장과 비상임이사 그리고 인사 추천 권한을 가진 임추위 위원들은 대부분 집권 정부와 깊은 관련이 있는 사람들로 구성됐다. 임추위 위원들은 금융과 관련된 전문성이 전무했지만, 여당과 정치적 연결 고리가 있거나 집권 정부와 특정 이해관계에 얽혀 있는 사람들로 채워졌다. 이에 본지는 인사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임추위 위원들이 어떻게 금융공기업과 국책은행의 비상임이사로 취업할 수 있었는지 그 연결 고리를 짚었다.
20일 이투데이 취재 결과 금융공기업 내 임추위 위원 대부분이 기관과 관련된 전문성이나 경험이 없는 퇴직 관료로 구성된 것으로 드러났다. 퇴직 관료들은 공공기관 비상임이사 타이틀을 받고 1년에 2~3번의 회의를 개최한 뒤 연간 약 3000만 원의 정해진 보수를 받았다. 각 공공기관이 평균 7명의 비상임이사를 고용하고 있는 것을 감안하면, 한 개의 금융공기업에서만 연간 2억 원의 국민 혈세가 비상임이사 보수 명목으로 허공에 뿌려지는 셈이다.
금융공기업 기관장 역시 대통령비서실에서 비서관으로 근무했던 청와대 출신 혹은 기획재정부나 금융위원회에서 근무했던 행정고시 출신, 한국은행 출신들이 장악했다. 퇴직관료들로 구성된 임추위 위원들은 정부에서 찍어 내린 사장 후보에 찬성표를 몰아줌으로써 기관이 정부의 입김에 좌지우지되는 상황에 일조했다.
김종석 자유한국당 의원은 “이런 낙하산 인사는 기업 내 도덕적 해이를 불러일으킨다. 정부가 내려 보낸 인사는 기관의 장이 되더라도 주인의식과 책임감이 없기 때문에 해당 기관의 생산성도 역행하게 된다”면서 “자격이 안 되는 사람을 물의를 빚으면서까지 꽂는 이런 뿌리 깊은 관행이 반드시 고쳐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정권 입맛 따르는 임추위… 관피아 낙하산 반드시 포함됐다 = 정권이 바뀔 때마다 ‘코드 인사’ 논란의 중심에 섰던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는 청와대와 정치권에서 내리꽂는 ‘낙하산’ 인사가 활개를 쳤다.
이투데이가 김진태 자유한국당 의원실로부터 받은 ‘한국자산관리공사 연도별 임원추천위원회 구성현황’ 자료에 따르면 10년간 사장 후보 추천을 위한 임추위가 3번 열렸다. 이명박 정부 시절에는 임추위 위원으로 들어간 비상임이사 4명이 전부 관피아거나 정치권과 연결된 인물이었다. 이명박 전 대통령 측근이었던 이춘식 전 한나라당 의원의 동생 이강식, 정부 싱크탱크인 국가미래연구원 회원 변환철, 이재연 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전 중앙정보부 국내담당 처장 민병철이 장영철 사장을 추천했다.
박근혜 정부 시절에는 대통령 직속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소속 배장웅, 전 경기도 의왕시장 이형구가 홍영만 사장을 추천했다. 3년 뒤에는 전 국회사무처 입법처장 민동기와 전 여성가족부 차관 김교식이 문창용 사장을 추천했다. 문재인 정부가 집권한 뒤에는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상임위원 안태환과 임춘길이 문성유 사장을 추천했다.
“균형 있는 국민경제의 발전에 이바지”로 설립 목적을 정의하고 있는 신용보증기금도 사정은 같다. 박근혜 정부 시절 전 한국금융연구센터 이사장 윤동한, 전 금융위원회 상임위원 이상제, 전 충청북도의회 의장 이기동, 전 문화체육관광부 제2차관 김용환이 황록 사장을 추천인으로 선정했다. 문재인 정부 때에는 대통령 소속 지방자치발전위원회 위원 박동수, 민주평통자문회의 상임위원 임무성, 전 행정자치부 자체평가위원회 위원 서보욱, 전 문화체육관광부 제2차관 김용환이 윤대희 사장을 추천 명단에 올렸다.
최근 이명호 더불어민주당 수석전문위원이 신임 사장에 내정되면서 낙하산 논란이 불거진 한국예탁결제원도 정권의 명분 없는 보은 인사 논란이 지속되고 있다. 예탁원에서 사장 추천을 위한 임추위는 10년간 3번 열렸다. 박근혜 정부 시절 전 대통령실 민정수석비서관 정동기, 전 대한주택공사 과장 장옥수, 전 한국거래소 코스닥시장위원회 위원장 김재준이 유재훈 사장을 추천했다. 3년 뒤에는 전 금융위원회 증권선물위원회 비상임위원 조인호, 전 18대 국회의원 박대해, 한국거래소 경영지원본부 본부장보 권오현이 이병래 사장을 추천인으로 선정했다.
주택금융공사 역시 낙하산 인사 논란 속에 본래의 취지와 목적대로 운영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지속됐다. 박근혜 정부 시절 전 국회 보좌관 김기호, 민주국민당 조직국 부국장 이순홍이 김재천 사장을 추천했다. 문재인 정부 집권 이후에는 전 부산광역시 사회복지국 노인복지과장 하만철, 대통령자문노사정위원회 공익위원 김태기, 기획재정부 자체규제심의위원회 민간위원 김동주가 이정환 사장을 추천인 명단에 올렸다.
예금보험공사 역시 전문성이 결여된 낙하산 인사는 계속되고 있다. 이명박 정부 시절 전 금융위 금융발전심의회 위원 이기석이 김주현 사장을 추천했고, 박근혜 정부 시절 전 공정거래위원회 경쟁정책 평가위원 이상일과 금융정보분석원 기획행정실장 양돈선이 곽범국 사장을 추천했다. 문재인 정부 집권 후에는 전 대통령비서실 금융비서관 남상덕과 전 광주광역시 경제부시장 강계두가 위성백 사장을 추천했다.
◇금융공기업 사장은 보은인사… “법에 구체적 자격 명시해야” = 대부분 금융공기업 사장은 기획재정부 고위직을 거친 관피아들이 차지했다. 집권 정부와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던 퇴직한 고위공무원의 재취업 자리로 기관의 장을 내어주는 보은인사가 관행처럼 자리잡은 것이다.
김주현, 곽범국, 위성백 전 예금보험공사 사장 모두 기재부 출신이다. 장영철, 문창용, 문성유 전 한국자산관리공사 사장 역시 기재부 출신이고, 홍영만 전 사장은 대통령비서실 정책실 행정관 출신이다.
안택수 전 신용보증기금 사장은 한나라당 국회의원 출신, 윤대희 전 사장은 대통령비서실 경제정책수석비서관 출신이고, 유재훈, 이병래 전 예탁결제원 사장은 금융위 출신이다. 서종대 전 주택금융공사 사장은 국무총리실 세종시기획단 부단장 출신, 김재천 전 사장은 한국은행 출신, 이정환 전 사장은 기재부 국고국 국장 출신이다.
전문가들은 이런 낙하산 인사가 발생하는 근본적인 원인을 제도적 미흡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고동원 성균관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법에서 기관장과 비상임이사, 감사에 대한 전문성 요건을 좀 더 촘촘하게 규정해야 한다. 현재 법은 기관장의 조건을 명시하고 있는 부분이 거의 없을 뿐만 아니라 굉장히 추상적인 수준이다. 예를 들면 금융업 3년 이상 종사를 필요조건으로 명시하는 등 실무적 경험을 서술해주는 것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심재철 자유한국당 원내대표는 지난해 11월 국책은행의 감사 요건을 강화하는 ‘한국은행법 일부개정법률안’, ‘한국수출입은행법 일부개정법률안’, ‘중소기업은행법 일부개정법률안’, ‘한국산업은행법 일부개정법률안’ 등을 발의했고, 현재 소관위에 접수된 상태다.
해당 개정법률안의 제안 이유란에는 ‘국책은행의 업무를 상시 감사하는 감사직은 그 임무의 특성상 경제 등에 대한 전문성을 반드시 갖추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현행법에는 이러한 감사 임명 자격 요건에 대한 별도 규정이 없어, 비전문가를 낙하산식으로 임명할 경우, 이를 막을 수 있는 법적 근거가 없다’라고 명시돼 있다. 이어 감사 자격에 ‘경제, 재정, 금융, 법률 등 관련 분야에 10년 이상 종사한 사람’이라는 조건을 신설한다는 내용을 담았다.
고동원 교수는 비전문가가 기관에 내려올 경우 그 피해는 국민들이 보게 된다고 우려했다. 그는 “낙하산 사장은 금융 지식, 경험이 모자라 정부나 외부 입김에 끌려 다니게 되고, 전문성이 없는 비상임이사는 경영진을 견제하는 역할을 제대로 수행할 수도 없어서 기관 전체의 생산성이 무너지게 된다”면서 “결국 그 기관을 되살리기 위해 다시 국민의 세금이 투입되는 악순환이 반복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