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인터뷰] 김정미 예탁원 증권등록본부장 “‘전자증권’ 준비 치열했던 2년…시장 안착 행복”

입력 2020-01-22 15: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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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증권도입 준비 때 부담 극심…지나고보니 봄인걸 알겠다”

▲김정미 한국예탁결제원 증권등록본부장이 17일 서울 여의도 예탁결제원 사옥에서 이투데이와 인터뷰를 갖고 있다. (신태현 기자 holjjak@)

“겨울에는 봄의 길들을 떠올릴 수 없었고, 봄에는 겨울의 길들이 믿어지지 않는다.”

지난 17일 이투데이와 만난 김정미 한국예탁결제원 증권등록본부장은 전자증권제도 시행 이후 소회를 묻는 질문에 김훈 작가의 글을 인용했다. 예탁결제원 전자증권추진본부장을 맡으면서 전자증권 시스템 구축을 책임졌던 김 본부장은 제도 시행 4개월 차인 현재 부담에서 벗어나 행복한 기분이라고 전했다.

◇전자증권제도 9월 16일 시행…치열했던 2년

2017년 11월부터 지난해 10월까지 TF를 이끌던 2년의 시간은 김 본부장에게 사투(死鬪)의 기억으로 남았다.

전자증권제도는 실물 증권 없이 권리가 전자적 등록으로 발행ㆍ유통ㆍ관리 및 행사되는 제도다. 정부는 자본시장 선진화를 위한 역점 사업 중 하나로 전자증권제도 도입을 추진했으며 예탁결제원은 도입을 위한 시스템 구축ㆍ운영을 맡았다. 전자증권제도는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36개국 중 독일, 오스트리아, 우리나라 등을 제외한 33개국에서 이미 시행되고 있었다.

1991년 예탁결제원의 첫 여성 대졸 사원으로 입사한 김 본부장은 2001년 최초의 여성 팀장, 2007년 최초의 여성 부서장이 됐다. 이후 2017년 증권 유관기관 역사상 첫 번째 여성 임원 승진과 함께 예탁결제원의 평생 숙원이던 전자증권제도 도입의 총대를 멨다.

전자증권 시스템은 한 치의 오차 없이 진행돼야 했기에 TF를 맡은 것은 큰 부담이었다. 예탁결제원과 시스템이 맞물리며 돌아가는 254개 기관, 1500여 개 개별 시스템에 대한 테스트도 필수적이었다. 제도 시행 후 10년간 실물증권과 전자증권 2개의 시스템이 유기적으로 돌아가야 하는 점도 매우 어려운 과제였다.

김 본부장은 “지나놓고 보니 여유 있게 얘기하지만 준비할 때는 부담과 스트레스에 힘들었다”며 “다른 차세대 시스템은 연기라도 가능하지만 전자제도시스템은 9월 16일 시행이 연기될 수 없었던 만큼 직원 모두 긴장 속에서 치열하게 일했다”고 말했다.

김 본부장은 법 시행령이 나오지 않은 상황에서 시스템 구축을 위해 254개 기관의 협력을 얻는 과정이 가장 어려웠다고 설명한다. 그는 “2016년 3월 전자증권제도 도입을 위한 법률 공포 이후 2019년 6월 시행령 제정까지 3년 3개월이 걸렸다”며 “시행령 이전까지 급할 게 없던 254개 금융기관의 협조를 끌어내는 데 무척 애를 먹었다”고 말했다.

핵심 과제는 제도 시행 이후 어떤 오류도 나타나지 않도록 하는 것이었다. 전자증권 시스템의 개발 기간이 19개월인데 테스트 기간만 9개월이 소요됐다. 그는 “수없이 통합테스트를 하고 마지막 두 달은 이행 테스트를 했다. 2017년 5월부터는 대내외 협의체를 구성했는데 이때부터 관계기관 대상으로 업무 설명회와 간담회를 연 것이 210여 회 이상이다. 지속적으로 예탁제도와 전자증권제도의 차이는 뭔지, 시스템 개발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 등을 설명했다”고 말했다.

김 본부장은 입사할 때부터 전자증권과 인연을 맺었다. 그는 “1991년 입사하고 조사부에 있을 당시 ‘실물증권의 무권화’가 화두여서 직접 조사하기도 했다”며 “입사 때부터 과제로 삼았던 것을 직접 현실화한다는 자부심과 ‘글로벌 스탠다드’에 맞게 전자증권제도를 마땅히 도입해야 한다는 소명의식이 힘든 시간을 견디게 했다”고 회고했다.

◇더딘 비상장사 전자증권 등록…“시간 지나면 해결될 일”

시행 4개월째를 맞은 전자증권제도는 시장에 안정적으로 정착 중이다. 예탁결제원에 따르면 제도 시행일인 지난해 9월 16일 기준으로 상장사와 비상장사의 미제출 실물주식 수량 비중은 각각 0.68%, 12.32%다. 이 수치들이 지난해 말일 기준으로 각각 0.5%, 10.48%로 감소했다. 예탁결제원은 미제출 실물주식 보유 주주 등을 대상으로 전자증권 등록을 위해 홍보 및 안내를 실시하고 있다.

비상장사 전자증권 등록이 비교적 더딘 점에 대해 김 본부장은 ‘시간 문제’라고 말한다. 그는 “전자증권제도는 ‘자본시장 실명제’라는 말이 있는 만큼 시장 투명성에 기여하기 때문에 주주들이 더 안전한 투자를 위해 회사에 전자등록을 요구할 것으로 보인다”며 “미제출된 비상장사 주식 수가 주주의 실물주권 훼손ㆍ분실 등 이유로 더 줄어들지 않는 시점이 온다면 비상장 실물주권을 전자등록 의무화하는 정책적 결단도 있을 수 있다”고 내다봤다. 전자증권제도는 비상장사에 대해 전자증권 전환에 따른 부담 등을 고려해 상장사와 달리 제도 참여를 의무화하지 않고 신청을 통해 참여하도록 시행하고 있다. 현재 국회에는 김용태 자유한국당 의원 발의로 비상장사 주식의 전자등록을 의무화하는 법안이 계류 중인 상태다.

◇예탁결제원, 새로운 도전 나설 때

전자증권 도입이라는 큰 산은 넘었지만 예탁결제원은 새로운 도전에 직면해 있다. 예탁결제 부문에 대해선 정부의 위임을 받아 독점사업을 벌일 수 있었지만 전자등록 부문에서만큼은 시장 경쟁자가 새로 나타날 수 있기 때문이다.

김 본부장은 “아직 전자등록기관은 예탁결제원뿐이지만 금융위와 법무부의 허가로 새로운 전자등록기관이 충분히 나타날 가능성은 있다”며 “이에 대비해 예탁결제원도 미래발전추진단 중심으로 신규 사업 비즈니스 마련에 힘쓰고 있다”고 말했다.

특히 “전자증권제도를 도입하면서 수수료를 많이 내렸기 때문에 당장 영업수익이 올해와 내년 안 좋아질 수 있다”며 “예탁결제원은 정부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기관이 아니기 때문에 수입원에 대해서 늘 고민할 수밖에 없는 부분”이라고 말했다.

◇‘첫 여성’ 타이틀…“다음에는 남자로 태어날래요”

전자증권제도 준비는 김 본부장이 TF를 이끌며 새로운 원칙을 시험해 본 시기이기도 했다. 첫째는 ‘화내지 말자’, 둘째가 ‘반대에 부딪히면 에둘러 가자’다. 국가적 프로젝트를 수행한다고 해서 조직과 동료와 불필요한 갈등을 일으켜선 안 된다는 생각이었다.

그는 “거의 수양하는 느낌으로 관리자 역할을 했다”며 “TF를 만들 때 현업 부서 인력을 많이 끌어오다 보니 도출되는 불만도 늘 고려해야 하는 문제였다”고 말했다.

김 본부장은 유재훈 전 사장 시절 직책자 강임(강등)을 당한 37명 중 1명이었다. 이때의 경험이 조직과 자신을 새롭게 돌아보는 계기였다고 한다. 그는 “원래 회사에서 별명이 ‘독사’였다”며 “일과 가정을 양립하기 위해 정해진 근무시간에 맡은 소임을 다하려고 온전히 집중하다 보니 주변 사람을 채근하고 말이 험하게 나가는 경우도 있었다”고 털어놨다.

그는 “부장에서 팀장으로 강등되는 일을 겪으면서 2년의 공백 시간이 생기자 나도 직장 생활을 해오며 남에게 상처를 준 적은 없는지 자신을 돌아보게 됐다”며 “일을 효율적으로 빨리 처리하는 것과 동료들을 챙기며 조직이 잘 굴러가도록 하는 것 사이에서 가치 판단을 새로 하게 된 계기였고, TF를 운영하며 세운 원칙도 이때의 경험에서 비롯됐다”고 말했다.

김 본부장에게 ‘첫 여성 팀장, 부장, 임원’이라는 타이틀에 대해 어떻게 평가하느냐고 묻자 그는 “다음에는 남자로 태어나고 싶다”고 농담했다.

그는 “일과 가정을 둘 다 챙겨야했던 선배로서 승진 욕심이 있는 후배 여직원들에게 남들보다 2배 열심히 하고 육아휴직은 반드시 가라는 조언을 하게 된다”며 “아직은 가정 있는 여성이 일에서 큰 성취를 얻기 힘든 것이 우리 현실”이라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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