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학저술인협회장
미국 하버드대의 조지 처치 박사는 대장균의 유전자 속에 사진과 동영상 파일을 저장한 뒤 이것을 다시 재생하는 데 성공했다고 발표했다. 처치 박사가 저장한 동영상은 19세기에 인류가 최초로 만든 동영상 중 하나인 ‘말을 타고 달리는 사람’이다.
어떤 정보를 저장하려고 할 때 제일 먼저 떠올리는 저장 매체는 하드디스크나 USB 같은 디지털 저장 장치이다. 이런 장치들은 모든 정보를 이진법인 0과 1로 바꿔서 저장한다. 예를 들어 우리 눈에는 말을 타고 달리는 사람의 동영상이 보이지만 디지털 저장 장치는 이 동영상의 색깔, 크기, 명암 등 모든 것을 0과 1로 코드화해서 ‘00101101011100…’ 같은 아주 긴 숫자로 저장한다.
학자들이 주목한 것은 대장균이나 인간의 세포도 정보를 저장할 수 있다는 점이다. DNA를 저장장치로 이용할 수 있다는 것은 DNA는 아데닌(A), 구아닌(G), 티민(T), 사이토신(C) 등 네 가지 화학물질이 순서대로 저장돼 있기 때문이다. DNA 두 가닥이 연결돼 이중나선을 이룰 때는 마치 지퍼의 이가 맞는 것처럼 A는 C, G는 T와만 각각 결합한다.
2012년 하버드대 연구진은 A와 C를 0으로, G와 T는 1로 설정하는 방식으로 책 한 권 분량의 정보를 DNA에 심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정보를 DNA에 심는 데 성공했지만 원상태로 복구하는 과정에서 오류가 발생했다. 이 문제는 DNA에서 수분을 뽑아내는 방식이 개발되면서 해결됐다. 수분이 없는 상태에서 DNA는 최대 수만 년까지 보존되기도 한다. 멸종된 지 수만 년이 지난 네안데르탈인과 데니소바인의 뼈 화석에서 DNA 정보를 뽑아내어 한국인에게 네안데르탈인과 데니소바인의 유전자가 각각 2% 정도 들어있다는 것을 발견한 것도 이 덕이다.
말을 타고 달리는 사람의 동영상은 사진 5장으로 이뤄져 있는데 처치 박사는 1과 0으로 구성된 동영상의 디지털 정보를 DNA 서열로 저장했다. 1·0은 A로, 0·1은 T로, 0·0은 C로, 1·1은 G로 바꾸자 원래의 동영상은 1000자가 넘는 DNA 서열로 바뀐다. 예를 들어 동영상 파일에서 ‘10011101’이라는 구간은 DNA 서열 ‘ATGT’로 바뀌는데 처치 박사는 이 순서대로 DNA를 합성해 ‘동영상 DNA’ 염기 서열을 세균의 몸속에 주입하는 데 성공한 것이다.
이를 위해 세균의 면역 시스템을 이용했다. 세균은 자신의 DNA에 자신을 한 번 공격했던 바이러스들의 DNA 서열을 저장해뒀다가 바이러스가 다시 침입하면 그 정보를 활용해 바이러스를 물리친다. 처치 박사는 이를 역이용하여 DNA로 바꾼 동영상을 세균에 위험이 되는 바이러스처럼 보이게 위장했다. 위협을 느낀 세균은 동영상 DNA를 바이러스로 오인하고 자기 몸속에 그 서열을 저장한 것이다.
학자들이 우려하는 것은 저장된 동영상이 완벽하게 재생되느냐이다. 대장균은 하루에도 수십 세대가 번식하므로 수십 세대가 지난 대장균 안에 기존의 동영상 DNA가 그대로 저장될 수 있느냐인데 처치 박사는 동영상이 원본의 90% 가까운 상태로 보존돼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원본의 100% 재생은 아니지만 대장균과 같은 생명체에 정보를 저장하고 재생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으로,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이들 문제는 해결될 것으로 추정된다. 자신의 모든 정보를 개인별 DNA에 저장시킬 수 있는 날도 머지않았다.
참고문헌 :
「[IF] 생명 정보 담는 DNA가… 이젠 당신의 사진도 저장합니다」, 박건형, 조선일보, 2016.04.30.
「USB 아닌 몸속 DNA에 파일 저장하는 시대 올까요」, 송준섭, 조선일보, 2017.08.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