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인 중심 오명 벗어날 '터닝포인트'…봉준호 "모든 것이 초현실적"
'기생충'은 9일(현지 시간) 미국 로스앤젤레스(LA) 돌비극장에서 열린 '제92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후보에 오른 6개 부문 중 감독·각본·국제영화상·작품상까지 4관왕 기록했다. 시상식 전부터 '기생충'은 한국 영화 최초로 아카데미 최고상인 작품상을 비롯해 감독상, 각본상, 편집상, 미술상, 국제 장편 영화상(구 외국어영화상) 등 총 6개 부문에 노미네이트 돼 기대를 모았다.
아카데미상은 영어권 영화를 중심으로 시상하는 미국 영화상이다. 그동안 '백인 전통의 상'이라는 오명을 받아왔으나 최근 3년간 다양성에 무게중심을 둔 변화가 있었다. 2017년에는 흑인 동성애자 소년을 주인공으로 한 '문라이트'가 작품상을 받았다. 2018년엔 멕시코 출신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의 '쎄이프 오브 워터:사랑의 모양'이, 2019년에는 흑인 천재 피아니스트와 백인 운전사의 우정을 다룬 '그린북'이 각각 작품상을 수상했다. '기생충'의 선전은 이러한 변화에 정점을 찍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봉준호 감독은 최우수 작품상 호명 후 배우 송강호, 이선균, 조여정, 박소담, 최우식, 이정은, 장혜진, 박명훈과 무대에 올랐다. 이 자리에는 봉 감독의 든든한 후원자이자 투자자인 이미경 CJ그룹 부회장, 제작사 곽신애 바른손이앤에이 대표가 함께 했다.
봉 감독은 이날 아카데미의 감사영상 인터뷰를 통해 "안 믿긴다. 깨어나면 이게 꿈일 거 같다는 생각이 든다. 모든 것이 초현실적"이라고 밝혔다. 곽 대표는 "이 선택은 영화의 진정한 가치와 힘을 믿는 사람만이 할 수 있는 것"이라며 "너무나 존경스럽고 감사하다"고 소감을 전했다.
'기생충'은 애초 작품상·감독상에 가장 유력한 후보라고 거론됐던 샘 멘데스 감독의 영화 '1917'도 제쳤다. '1917'은 할리우드에서 가장 영향력이 큰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이 세운 앰블린파트너스가 제작한 영화로, 앞서 골든글로브 작품상·감독상 2관왕, 영국 아카데미 시상식 7관왕에 올라 가장 막강한 후보였다.
올해 '기생충'의 각본상은 한국 영화뿐 아니라 아시아 최초 수상이어서 더 의미가 깊다. 국제영화상은 '기생충'이 지난해 칸영화제 황금종려상을 거머쥔 바 있어 기대가 높았다.
'기생충'은 계속해서 세계 영화사를 새로 써 왔다. '기생충'은 아카데미상 수상 전까지 해외 57개 영화제에 초청돼 55개 영화상을 받았다. 지난해 5월 열린 제72회 칸국제영화제에서 한국 영화 최초로 황금종려상을 수상하며 파란을 일으켰다. 지난해 6월 제66회 시드니영화제(2019년 6월)에서 최고상을 받았고, 9월과 10월에는 각각 제38회 밴쿠버국제영화제와 제11회 울란바토르국제영화제 등에서 관객상을 받았다. 또 지난해 12월 제4회 마카오국제영화제에서 올해의 아시아 블록버스터 영화상을 받았고, 지난 1월 제35회 산타바바라국제영화제에서는 감독상을 수상했다. 이 밖에 제49회 로테르담국제영화제에서 흑백 버전을 상영한 후 관객상을 받았다.
특히 아카데미 전초전으로 불리는 미국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서 외국어영화상을 받았고, 여러 지역 비평가협회상을 휩쓸었으며, 전미비평가위원회 상도 수상했다. 감독·프로듀서·배우·작가 등 미국 4대 조합 시상식에 후보로 올라 배우조합에서 최고상인 앙상블상을, 작가조합에서 각본상을 받았다. 영국 아카데미에서는 외국어영화상과 각본상을 수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