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에 IPO 준비 기업들도 비상이 걸렸다. 증권신고서를 제출하고 공모를 코앞에 둔 기업은 청약 일정을 연일 미루는가 하면, 상장 준비에 속도를 내던 기업들도 전략 수정에 돌입했다. 특히 이번 사태로 실적 하락이 불가피한 화장품, 유통업종 등 중국 소비주 기업들이 직격탄을 맞았다.
24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화장품 원료 제조기업 엔에프씨는 이번 달에만 수요예측 및 청약 일정을 두 번 미뤘다. 1월 중순 증권신고서를 처음 제출할 당시만 해도 이번 달 17~18일 청약을 진행할 예정이었지만 2월 초 기재정정 증권신고서를 제출하면서 27~28일로 연기했다. 그러나 또다시 일정을 뒤로 미루면서 현재는 3월 12일 청약을 앞두고 있다.
일정 연기 배경으로는 코로나19 여파에 따른 업황 침체가 꼽힌다. 엔에프씨는 최근 제출한 기재정정 증권신고서에서 사업위험 부분에 “최근 발생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의 확산에 따라 중국의 경제활동이 위축되고 있으며, 우리나라를 포함한 세계 경기도 부정적인 영향이 우려된다”며 “이러한 상황이 장기화되거나, 향후 유사한 상황이 발생하는 경우 당사의 사업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내용을 추가했다. 실제로 엔에프씨의 주 거래처는 한국콜마, 코스맥스 등으로 알려져 있는데, 이들 기업 모두 코로나19 여파로 수요 급감 등의 어려움을 겪고 있다.
피어 그룹 주가 하락도 부담 요인이다. 엔에프씨의 경우 공모가 산정을 위한 피어 그룹으로 한국콜마, 코스맥스, SK바이오랜드, 본느를 꼽았다. 이 중 SK바이오랜드를 뺀 나머지 기업은 현재 기준주가 산정 가격보다 현저히 주가가 내려간 상태다.
작년 실적 회복 신호탄을 쏘아 올리며 상장 작업에 속도를 낼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던 호텔롯데의 IPO 진행 여부도 불투명해졌다. 코로나19 사태로 가장 큰 타격을 받는 업종인 면세점 사업이 호텔롯데 매출 비중 중 80%를 넘게 차지하기 때문이다.
중국 현지 및 인바운드 관광객과 매출이 직접적인 연관 관계를 맺고 있는 만큼, 반등 시점을 예상하기도 힘들다. 상장 절차가 언제쯤 속도를 낼지 가늠하기 어려운 이유다. 박종대 하나금융투자 연구원은 주요 면세점들의 3개월 매출이 50~70% 감소한다고 가정하며 “이번 코로나 19사태에 따른 실적 부진 폭은 메르스 당시보다 더 커질 수밖에 없다”고 분석했다.
이들은 모두 IPO를 이전부터 추진했지만, 기업 악재와 사드 보복 사태 등의 영향으로 시기를 조율해왔다. 엔에프씨는 삼성증권과 2016년부터 상장 주관계약을 맺고 준비 작업을 해왔고, 호텔롯데의 경우 2016년 공모 절차를 밟았지만, 당시 경영권 분쟁과 검찰 조사 등을 이유로 철회 결정을 내린 바 있다. 최근 중국에서 한한령이 해제되면서 실적 공백을 메우는 등 상장을 위한 제반 작업에 돌입했지만, 코로나19라는 거대한 암초를 또다시 만나게 된 셈이다.
이들 기업 외에도 올해 하반기나 내년을 목표로 IPO를 준비하던 소비주 기업들에도 비상이 걸렸다. 증권사 IPO 부서 관계자는 “올해 실적을 기준으로 내년 상장을 준비하던 기업 중에서 실적에 타격이 큰 경우에는 계획을 전면 수정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상장을 예정 일정대로 진행하는 기업들도 애로사항이 없는 건 아니다. 수요예측 투심을 끌어모으기 위한 기관 대상 기업설명회(IR)가 속속들이 취소되고 있기 때문이다. 업계 관계자는 “코로나19 확산 초기에는 해외 IR 위주로 일정을 재고하는 수준이었다면, 확산세가 전국으로 번진 이후엔 국내 IR도 일정 조정이 불가피한 상황”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