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산중공업 경영정상화 위해 매각 속도낼 수도
두산중공업이 자회사 두산건설을 결국 팔기로 했다. 국책은행인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의 1조 원 규모 긴급 지원에 앞서 그룹 차원에서의 고강도 자구책을 마련하는 차원이라는 게 업계의 시각이다.
하지만 국내외 경기 둔화 가능성에 현금 확보를 최우선으로 여기는 기업들이 늘고 있는 상황인 데다 부동산 시장 전망마저 어두워진 상황에서 매각이 매끄럽게 진행될 지는 미지수다.
투자업계와 건설업계에선 두산중공업 자금 경색의 일차적 원인이 경기 고양시 탄원동 '일산 두산위브더제니스'(주상복합단지)에서 촉발됐다고 보고 시각이 많다. 현 정부의 탈원전·석탄 정책으로 유동성 위기를 겪으며 휘청이고 있지만 악몽의 시장은 이미 2009년 시작됐다는 것이다.
당시 두산건설은 '일산 두산위브더제니스' 프로젝트를 진행했지만 시행사가 시중은행에서 PF(프로젝트 파이낸싱) 자금으로 대출받은 수천억원 중 수백억 원을 빼돌리는 등의 문제가 발생했다. 기존 시행사의 부도 처리로 시행사가 바뀌는 등 우여곡절 끝에 사업을 진행했지만 글로벌 금융위기로 부동산시장이 주저 앉으면서 미분양이 대거 발생했다. 안전할 것이라고 믿었던 수도권에서 발등을 찍힌 셈이다.
'일산위브더제니스'는 경기도 고양시 탄현동에 위치한 대규모 초고층 주상복합아파트다. 2700가구의 대단지로 2013년 완공됐다. 두산건설은 이 단지에서 미분양이 대거 발생하자 분양대금의 25% 수준을 입주금으로 납부하고 3년간 살아본 뒤 구입 여부를 결정하는 애프터리빙 제도까지 시행했다. 미분양 물량의 전세 전환, 공용관리비 등의 대납 등 다각적인 자구책을 마련했다. 그러나 두산건설이 일산 위브더제니스로 인해 입은 손실 처리한 규모는 1600억 원에 달했다.
밑 빠진 항아리에 물 붓듯 두산건설에 10여년간 쏟아진 그룹 내 자금 규모는 2조 원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일산 위브더제니스와 토목사업 등으로 계속된 실적 부진을 두산중공업을 비롯한 계열사들이 떠받쳐왔지만 상황은 크게 개선되지 않았다. 여기에 정부의 탈원전과 탈석탄화 정책이라는 악재를 만난 두산중공업은 두산건설을 떼어내야 하는 선택을 하기에 이르렀다.
업계에선 두산건설이 일산위브더제니스 프로젝트 이후 주택사업에 보수적으로 접근하면서 공격적인 수주에 나서지 못한 것도 실적 부진의 원인으로 작용했을 것으로 봤다.
한국신용평가에 따르면 두산건설의 지난해 별도기준 차입금 규모는 7257억 원이다. 지난해 유상증자로 차입금 규모가 일부 감소했지만 리스부채를 제외한 6581억 원의 차입금 중 1년 이내에 만기가 도래하는 유동성 차입금이 5851억 원으로 전체 차입금의 88.9%에 달한다고 밝혔다.
연대보증을 제공한 PF차입금은 지난해 말 기준 1527억 원으로 과중한 상태로 봤다. 한신평은 전날 두산건설의 제94회차 무보증 신주인수권부사채(BW) 신용등급을 기존 'BB-(안정적)'에서 'BB-(하향검토)'로 내렸다.
문제는 두산건설이 매물로 나온다고 해도 주인을 쉽게 찾을 수 있느냐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선언으로 국내외 경기가 출렁이면서 불확실성이 높아져 너도나도 현금 확보에 주력하고 있는 데다 주택시장에 대한 정부의 계속된 규제로 부동산 시장은 물론 건설사들의 앞날도 당장 밝지 않아서다.
다만 일각에선 두산중공업이 경영 정상화를 위해서라도 알짜 자산을 중심으로 두산건설 매각에 속도를 낼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